".....귀여워......."


 눈을 떠보니 그녀의 방 천장이었다.

 등이 폭신했다. 사방이 부서진 잔해 투성이인 방 안에 멀쩡히 남아있던 그 침대 위에 눕혀진 듯했다.

 왼쪽을 보면 그 잔해들과 함께..

"......."

 말없이 서 있는 그녀가 보인다.

"...읏."

 그녀를 보고 앉으려 몸을 틀자 사지를 묶은 4개의 사슬이 짤그랑 소리들을 내며 나를 막았다. 

"...뭐 하는 짓이야."

"..."

"스ㅅ.. 셀레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챙이 넓은 마녀 모자에 빛이 가려져 표정도 알 수가 없고 그저 평소 짓던 평온한 미소만 입가에 보일 뿐이다.

 그 모습에 답답해진 나는 목소리를 높인다.

"셀레나,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런 짓 하면 더 싫어하면 싫어했지... 아니, 왜 그렇게 자기밖에 생각 못해? 빨리 이거 풀어!"

"..."

 대답이 없다. 그녀 입가에서 미소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

"내 말 안 들려? 정신 나간 짓 하지 말고 빨리 이거 풀라고!!"

 방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고서야 그녀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셀레나의 오른손이 올라오며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마법이.. 붉은 색…

"컥…!!"

 숨이 막혔다.
 목 주위에 무언가가 둘러싸여 숨구멍을 조여들어온다.

"끄흑...꺽…"

 시선에 살기가 느껴진다. 정말로 죽일 것만 같다..

"왜? 더 저항 안해? 예전처럼 어른스러운 척하면서 손 대지 말라고 튕겨야지?"

"칵….카학….끅...ㄲ…."

"해봐. 어서. 저항해보라고."

 꼭 내 목을 움켜쥔 듯한 셀레나의 손이 왼쪽으로 비틀어진다.

"끅!!!"

 시야가 어두워지며 몸이 발버둥을 치지만 단단한 사슬이 그것마저도 막고 있었다.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 그녀의 손에 아우라가 사라지며 숨이 풀렸다.

"크흑! 콜록 콜록… 꺽,, 흐으…."

 숨을 거칠게 들이키면서도 그녀가 또 목을 조일까 두려워진다.
 매섭던 시선이 조금 누그러져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사슬의 차가운 감각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차분해졌지만 아직 서늘한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있지, 펠리페가 어른 행세 할 때마다 되게 귀여웠거든? 자그마한 요 어린것이 큰일이라도 생기면 꼭 자기가 책임지려는 것처럼 나서는 게."

"근데 이건 너무 나갔잖아. 안 그래? 왜 먼저 다른년하고 바람 피워 놓고서는 나한테 화를 내냐고. 어린년들이 그렇게 좋아? 나보다 예뻐? 나보다 잘해줬어? 왜 자기 스승님을, 자기 연인을 배신하냔 말이야."

"그러니까 스승님이 화 안 나게 생겼어? 나 화낼 만 하지? 그치?"

".........."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네 스승님이니까, 딱 한번 기회를 줄게. 지금이라도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면… 그러면 나도 용서해줄게. 바람 피운 것도, 날 여태까지 무시해오고 튕기고 화냈던 것도… 다 없었던 일로 하고. 예전처럼 사랑스러운 내 제자로 돌아오는 거야."

 제자를 바라보는 그 자애로운 미소가 조금씩 피어나온다.
 그녀가 내 뺨을 만진다.

"자, 잘못했습니다 해봐. 진심인지 아닌지는 스승님이 판단해줄게."

".........."

 나는 그녀를 노려보는 눈을 풀지 않았다.

 배신한 사람이 누군데.
 나한테 수면제를 먹인 사람이 누군데.

 적반하장이었다. 배신이라느니 화낼 만 하다느니 하는 말은 내가 해야 맞다. 그녀의 그 뻔뻔한 모습에 나는 그동안 내가 너무 몰아붙였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도대체 혼자 집에서 무슨 망상을 했는지 답답할 뿐이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피웠다고 인정하라는 말을 내가 따를 리가 없다.

 내 입이 열리는 걸 기다리면서 그녀의 미소가 점점 희미해진다. 얼굴이 굳어지며 나를 보는 눈빛마저도 다시 매서워진 그때, 셀레나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 맘대로 해."

 그녀의 오른손이 다시 보인다. 붉은 아우라는 없지만 대신…

"내가 말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채찍이 올라온다..

*짝!*

"끄윽!"

*짝!*

"읍..!"

"잘못했다고 말해."

*짝!*

"한마디 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짝!*

"아직도 네 잘못을 모르겠어?"

*짝!* *짝!*

 회초리 같이 생긴 채찍이라 그녀는 가볍게 휘두르면서도 채찍에 인챈트가 걸린 듯 맞을 때마다 살이 욱신거렸다.
 채찍이 살을 때려도 나는 최대한 아프지 않은 척 하려 신음소리를 참았지만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채찍을 고쳐쥐며,

"펠리페가 어른스러운 척하는 것도 좋은데, 나는 네가 힘들고 아파서 낑낑거리는 목소리도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마법으로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파서 우는 소리도 좀 들려줘."

*짝!*

"하으윽!"

*짝!*

"아악!!"

 때리는 부위가 달라졌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몸을 섞었던 셀레나는 내 몸의 약점과 성감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이제 그녀는 그 부위만을 노려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성감대가 건드려지며 고통어린 목소리와 함께 원치 않는 야릇한 신음소리가 섞여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며 셀레나의 표정에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자애로운 미소가 아니었다.

*짝!*

"나도 이렇게 하는 거 싫어."

*짝!*

"계속 오기 부릴 거야?"

*짝!*
*짝!*

 신음소리만 낼 뿐 입을 꾹 닫고 있자 그녀도 잠시 채찍질을 멈췄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면, 대신에 사랑한다고만 해줘. 예전처럼 귀여운 목소리로 스승님 사랑합니다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예쁜 목소리 나 정말 듣고싶은데. 애교도 좀 섞고. 어때?"

".........년..."

"응? 뭐라고?"

"........미친..년..."

"......."

 간신히 말을 꺼내고 힘이 빠져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그녀의 손이 보였다.
 채찍이 손에 꽉 쥐여져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번 해 보자 이거지?"

 그녀가 들고 있던 채찍을 던져버리고는 책상에서 또다른 채찍을 집어들었다.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

"네가 자초한 거야."

 몸이 마법으로 둘러싸이며 강제로 몸이 뒤집혀졌고 등과 엉덩이가 그녀에게 노출됐다. 내 사지를 묶은 사슬들도 덩달아 풀렸지만 내가 더 몸부림치는 걸 보고 싶어 일부러 풀어버린 것 같았다.

 채찍 끝자락에 붙은 쇳조각 다발이 털뭉치처럼 일렁이며 내 등으로 날아왔다.

*휙*

"흐아아아아악!!!"

 채찍이 으레 내는 짝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귓속으로는 수많은 쇳조각이 날아와 내 살을 갉아먹는 소리들과 나의 고통스러운 비명만이 들려올 뿐이다.

"아직 안 늦었으니까, 어서 말해."

*휙*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아!!...끅,..:"

"네가 스승님을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휙*

"흐으윽, 씨..발, 아파, 너무 아파… 아프다고오으아아아악!!"

"지금 아픈 건 다 네가 스스로 만든 거야."

*휙*

"흐이익, 으흑… 제발.. 그..만…"

"잘못했다고 빌면 다 끝나. 어서. 잘못했다고 말해."

"..아파... 아파... 너무 아파..."

"....말해."

"으흐..으.. 끅… 흐으.."

"빨리 말하라고!!"

*휙*
*휙*
*휙*
*휙*

 연달아 채찍을 휘두르자 이제는 비명마저도 더 나오지 않았다. 꼭 등가죽이 통째로 뒤집혀버리는 것 같았다.

 있는 힘을 다해 이제 묶여 있지 않은 양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마법이라도 써서 저 채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법 쓸 생각 하지 마!!"

 하지만 왼손에 조금씩 생겨나던 보라색 아우라가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덮어씌워지며 침대에 꽉 눌려버렸다.

"펠리페가 쓰는 마법 따위 내가 못 막을 것 같아? 네가 마법을 누구한테 배웠는데."

 마녀 앞에서 마법을 쓰는 게 멍청한 짓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건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오히려 그 얕은 술수는 셀레나의 화만 돋구는 꼴이 되어버렸고 두어 번 이어진 채찍질에는 힘이 더 실려 있었다.

"하아.. 하아.. 꼭 내가.. 이런짓.. 하게 만들어야겠어? 빨리.. 하아.. 빨리 잘못했다고 하면 끝나잖아. 네가 바람피워놓고, 네가 날 무시해놓고 왜 고집부리냐고!"

"......."

 나는 그저 간신히 꺽꺽대는 숨소리밖에 더 내지 못했다.
 그걸 보는 셀레나는 답답한 듯 눕혀져 있는 내 머리에 시선을 맞추었다.

"....너.. 그 정도로 내가 싫어? 딴년이 그렇게 좋아? 아니지? 나 아직 좋아하지? 맞지?"

 대답하지 않았다.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채찍질을 맞아 놓고서도, 내 눈에 보이는 셀레나는 내가 기억하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반했던, 내가 존경하던 셀레나.
 그녀가 너무도 싫다. 그녀가 휘두른 채찍에 몸이 뜯겨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러나...

"끅.."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파…"

"..뭐라고?"

"..아파… 흐끅.. 스..승니임… 나 너무 아파.. 흐읍.. 너무 아프단 말야…끅.. 나..이대로..죽는 거야..? 응..? 흐극.. 나 무서워.."

"........펠..리페…"

 그제서야 그녀도 내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그녀가 경악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펠리페..!!"

 그녀의 마법에 다시 몸이 일으켜졌다. 아까 몸을 거칠게 뒤집을 때와 달리 많이 부드러웠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그녀에게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펠리페… 너무 심했지..? 스승님이 다 잘못했어.."

"후으윽… 우..으… 흐끅.."

"아파? 많이 아파? 자, 괜찮아, 괜찮아.. 앉아 봐, 회복시켜줄게…"

 눈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쓸어주며 그녀가 나를 침대에 앉혔다.

"스승님이 정말 미안해. 잘못한 거 나도 다 알아."

"...."

"내가 너무 심했어, 그치? 다 잘못했으니까......"

 ..이상했다.
 나를 앉혀두고 그렇게 사과를 건네는 셀레나의 두 손에는 말하는 것과 다르게 아우라가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

 그녀가 잠시 침묵하며 나를 주시했다.
 눈매가 뭔가 날카로웠다.

"...미안하다고."

"......?"

 아까의 그 무서운 눈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꼭 나를 위협하는 것만 같아 나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무엇을 또 말하게 하려는 걸까. 나는 그대로 위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도 날 이대로 두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결국 마법을 써온다. 아우라가 생겨나는데…











...붉은 빛.










".....크헉!!!"

 목이 졸리며 숨이 컥 막혔다.

"미안하다고,내가미안하다고하잖아!스승님말안들어?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스승님이미안하다고했으면너도따라서미안하다고해야될거아냐!!바람피워서!한눈팔아서!딴년한테몸팔아서!!!!빨리미안하다고안해?!이래도?!이래도?!!"

 등 쪽 상처가 마법에 휩싸인다.
 꼭 상처들을 칼로 후벼파는 것만 같다.

 죽는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대체 왜..

 내가 왜...

"....컥….꺽… 사..사려...살…"

 간신히 목구멍에서 말이 조금씩 새어나오자 그녀가 목을 조르던 마법을 풀었지만,

"뭐!? 사 뭐!? 확실히 말하라고!! 확실히말하란말야바람피워서화내게해서미안하다고!!앞으로는스승님만사랑하고딴년한테한눈안팔거라고빨리말해!!!못해!?등가죽다벗겨지고싶어?!!"

 정말 이대로 죽을 것 같았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힉..끅..!!..살려..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제가자못..잘못해쓰니까!! 콜록.. 하윽.. 제가 다 나빠서...제잘못이에요...제발...제발 그만해주세요..!!!!"

 죽기 직전 내뱉는 비명소리처럼 입에서 말이 쥐어짜여져 나오자 드디어 그녀가 내 몸에서 손을 뗐다.
 고통이 사라진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녀가 회복 마법을 썼는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걸 멈춘 것만으로도 회복됐다고 느끼는 건지 몸이 확 가벼워진 것처럼 아픈 느낌이 사라졌고 몸을 감쌌던 붉은 아우라도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정말이지..?"

"진짜로...제가 다 잘못했어요.... 히끅..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오… 바람피워서, 한눈팔아서, 흐윽, 딴년한테 몸팔아서 죄송해요… 힉, 그뒤에 스승님 무시한것도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정말 스승님만 사랑할게요오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비굴했다. 꼭 황제가 찾아오기라도 한 듯 침대 위에 엎드려 없는 잘못을 인정하며 나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다. 만약 누가 내 앞에서 이런 짓을 했다면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얼른 일어나라고 손을 잡아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만족감을 넘어 행복감이 솟는 듯했다.

"아아… 펠리페에에……."

 그녀의 마법이 다시 내 몸뚱이를 붕 띄웠다. 그대로 그녀에게 끌어당겨진 내 상체는 그녀의 품에 쏙 안겨들었다.

"그래.. 바로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스승님 말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치?"

"흑..히끅…"

"착하지, 착하지이… 자, 스승님이 안 아프게 해줄게?"

 아무리 다쳤어도 인간의 몸뚱아리 다루는 일쯤이야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녀에게는 별 것 아니었다. 녹색 회복마법이 내 몸을 감싼 지 몇 초 되지 않아 통증이 싹 사라졌고 그녀도 그걸 확인시켜주려는 듯 이번에는 등을 쓰다듬어주며 나를 안았다.
 그런데 그녀가 쓰다듬어주는 감각이 뭔가 이상했다.

"옳지, 자국 생겼다."

 등에 흉터가 가득 남겨진 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이건 왜…."

"사실 있잖아, 스승님도 예전에 마녀사냥 당하면서 채찍으로 많이 맞았었어. 지금은 마법으로 흉터는 다 없앴지만.. 등에 맞은 건 못 지웠거든. 너도 몇 번 봤잖아?"

"그래서, 펠리페한테도 그렇게 채찍 맞은 자국을 만들어준 거지! 그러니까 평생 함께할 연인이랑 똑같은 상처가 생긴 거야! 멋지지 않아?"

"우..으…."



".........싫어?"



"아..아아, 아니! 아니야..! 정말 좋아! 스승님이랑 똑같은 흉터가 생겨서 너무 좋아!"

"그렇지? 아유, 이쁜 것♡"

 그녀가 등을 토닥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칼로 상처를 벌려놓는 듯 고통스러웠던 등이 이제는 흉터만 느껴질 뿐 감각이 편안해지자 오히려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 것마냥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럼 우리는 이제 평생의 반쪽이니까.. 그치? 평생의 반려자 맞지?"

"..으..응.."

"후후, 평생의 반려자끼리… 마법사라면 꼭 해야 할 일이 있지."

 몹시 흥분한 말투였다.
 대충 옷을 주워입은 뒤 셀레나의 따라오라는 손짓에 내가 마지못해 쫓아들어간 곳은 그녀가 연구실로 쓰던 서재였다.

"스승님이 꼭 가르쳐주고 싶었던 마법이 있어."

 이어서 그녀가 가져온 건 책 한 권과 물약 한 병.
 물약은 평범해보이는 보라색 물약이었지만 책은 꽤 오래되어 보였다.

"무슨..마법..?"

"서로를 완전히 이어주는 마법이야. 그러니까 자…."

 책을 훑어보며 주문을 찾아낸 그녀가 물약의 마개를 열며 주문을 읽었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물약에 닿으며 주문이 끝나자 물약은 붉은 빛으로 변했다.

"일단 마셔 봐. 마시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스승님 믿지?"

 이제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붉은 빛 마법이 걸려있는 물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지만 이내 그녀의 눈치를 보며 병을 집어들었다. 들이키는 내내 꼭 술을 마시는 듯 목이 탔다.

"다 마셨어? 그럼 이제…"

 그녀가 또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주문이 길어지며 몸 속이 서서히 끓는 듯 뭔가 이상한 느낌이 덮쳐왔다.

"음...으.. 으윽… 욱.. 끄흑!"

 심장 쪽에 격통이 전해지며 내가 책상을 붙들고 쓰러졌지만 셀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계속 읽어나갔다.

"이..거.. 뭐야..! 아흑! 으으으.. 으아악!!"

 두 손으로 심장 쪽을 붙들었지만 당연히 소용이 없었다.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나는 그저 주문이 빨리 끝나기만 간절히 기다렸고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서야 주문이 끝나며 고통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흐윽.. 하아.. 하아.. 다.. 끝났..어?"

"응. 다 됐어. 자, 일어나봐."

 그녀가 내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윗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자..잠깐! 스승님! 뭐 하는--"

"잠자코 있어."

"...."

 몸이 굳으며 그녀가 내 윗옷을 모두 벗겨나갔고 맨살이 드러났다.
 방금 전 아파했던 그 심장 부분에 특이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전쟁 때 말고는 처음 써보는 마법인데, 잘 들어갔네."

 그녀가 손을 들어 무늬가 새겨진 곳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무슨 마법인데..?"

"일종의 계약 마법같은 건데, 이렇게 무늬가 새겨지면 서로 믿고 따르는 사이가 되는 거야. 몸도 주고 마음도 주는 그런 사이지. 어때? 로맨틱하지? 그치?♡"

"그런 마법도 있었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말했잖아? 서로 믿고 따르는--"

"아니.. 무늬가 새겨진 사람이 어떻게 되는 마법인지 책에 안 쓰여 있어?"

"아, 그건…"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이 뭔가 불길하다..

"그건?"

"그러니까…"

"....?"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마법이야."

"........"

 속았구나.

"..그건 노예 마법이잖아!"

"아니야, 달라. 평생의 반려자는 노예가 아니잖아? 어차피 마법 이름이야 쓰는 사람이 붙이기 나름이지. 어차피 펠리페는 이제 스승님 말만 잘 들으면 충분하니까…."

"그런 게.. 그런 마법이 어딨어…! 어떻게 또 나를--"

"그만."

"...."

 순간 입이 틀어막혔다. 아니, 스스로 목소리 내는 일을 멈춰버렸다.

 ...이런 마법이구나.

"그래. 잘했어."

"으…."

 가슴에 새겨진 노예 각인을 그녀가 만족스럽게 쳐다보고는 나와 다시 눈을 맞췄다.
 나의 몸을 요구해올 때 보이던 그 눈빛이 가까워지며 자연스레 입술이 포개어졌다.

"그렇게 죽일 듯한 눈빛 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이제 펠리페는 스승님 말을 거역 못하니까."

"....."

"그냥 놔두면서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건 이제 질렸어. 그저 착하게 대해주면 나한테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다 봐주고 있었는데, 이젠 안 참을 거야."

"..앞으로 이렇게, 펠리페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등을 더듬거리는 그녀의 손이 갓 만들어진 흉터를 쓸어내렸다.

"이제 넌 내꺼야. 평생. 그러니까 다른 연놈들한테 알랑댈 생각도 하지 마. 그리고 건방지게 스승님을 무시하는 짓도 하지 말고. 딴년한테 조금이라도 한눈 팔았다간 마법으로 그 눈 다 뽑아버릴 테니까."

"...그렇게 말.."

"명령이야."

"...!"

 심장이 덜컥였다.

"대답?"

".......알..았...어…"

"잘 안 들려. 다시 말해."

"..알았어..! 나 다른 여자한테 한눈 안 팔고 스승님 것이 될게…"

"후후… 착하네..."

 그녀가 다시 입술을 훔치며 내 몸을 더듬었다. 아랫쪽에서는 그녀의 오른손이 내 가랑이를 만져대며 물건을 일으켜세우고 있었다.
 마치 전희를 하듯 그녀의 살결이 내 몸을 감쌌다.

"......저기, 펠리페."

"....응.."

"사랑한다고 해줘."

"..사랑해."

".....한번만 더."

"사랑...끅!"

 그녀가 내 귀를 깨물었다.

"나한테 속삭여줘."

"사..랑.."

"다시, 똑바로 말해."

"사랑, 해…"

"하아아아……♡ 사랑해, 나도 사랑해, 펠리페.. 정말 사랑해… 스승님이 평생 사랑해줄게…♡♡♡♡"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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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니 구멍투성이잖아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