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근 몇 주째 그녀와 만났을 때 밀고 있는 말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녀와 마주치는 날이 있다면 다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밥 안 먹어?"


"됐다니까."



"어디 가?"


"알 거 없잖아."


"가기 전에 이거 포션이라도…"


"엄마 노릇 하려고 하지 마."


"..펠리페…."


 오늘 아침도 그런 말을 남기며 집을 나왔다.


 그녀는 나의 스승이다. 수십 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마녀 셀레나를 처음 만난 건 벌써 3년이 넘은 일이다.

 오크의 침입으로 부모를 잃으며 가족은 공중분해됐고, 그나마 남은 혈육이라고는 내가 4살 때 입양 보내져 얼굴도 전혀 기억 못하는 여동생뿐이었다. 살 길이 없어 직군 가리지 않고 마을 곳곳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했고 16살이 되어서는 우연히 만난 마녀에게 몸을 의탁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다행히 소문과 달리 마녀 셀레나는 친절했다.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낡은 집 대신 그녀의 집에 자주 들르며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일을 도와주며 거의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Derit kool u, peels emos teg......"


*톡*


"와아! 진짜 쓰러졌어!"


"중요한 건 이렇게 머리 쪽에 손가락을 톡 닿는 거야. 기절 마법은 이 손가락이 포인트."


"마녀 누나 진짜 대단해!"


 마구잡이 일을 하며 잔근육이 늘어난 것 외에 먹고 살 방법이 없던 나는 그녀에게 마법을 배웠다. 매혹적인 그녀의 모습에 반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셀레나를 차차 알아가면서 그녀의 나이가 '누나'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상당하다는 것도, 히아신스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꽃 매우 중요하다. 그 꽃을 들고 그녀에게 고백했으니까.


 그렇게 행복하게 잘 될 줄만 알았던 사제지간에 금이 간 건 두어 달 전 어느 벽보를 보고 나서부터다.


"...왕실 마법사 대회?"


 마법 쪽에 발을 들이면서 사설 마법사와 공인 마법사는 대우부터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능력을 국가에서 인정받은 마법사가 더 고평가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도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고향에서는 나름 마법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본선에 입상하는 마법사는 출세의 길까지 넘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수도로 입양되었다던 내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지도.


 처음에는 셀레나도 나를 도와주었다. 그녀도 예전에는 지역 대회에서 시험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겨우 두어 달 남은 기간 동안 속성 코스로 시험관들이 좋아할 만한 마법들을 정해 훈련도 시켜주었다. 훈련이 매일 계속될수록 실력이 늘어가는 나를 보며 모성애가 느껴질 정도의 행복한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문제는 파티였다.

 마법사 대회는 개인 부문과 팀 부문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마법을 연마한 마법사들 사이에서 이제 갓 마법을 쓰기 시작한 내가 개인 부문에서 입상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조건 파티에 들어가야 했다.

 내가 사는 자그마한 마을을 뒤져보며 마법사 파티를 구해봤으나 마법사 대회를 준비하는 팀은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마법사 파티 단 하나뿐이었다.



"안 돼."


 그녀의 입에서 안 된다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이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사기꾼들은 아냐. 내가 만나봤어. 게다가 어차피--"


"그런 문제가 아니야."


 셀레나는 차분한 말씨로 타이르며 나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넌 내 연인이잖아?"'


"....응."


"여자 셋은 너무 위험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데.."


"없는 건 아냐."


"뭔데…?"


 온갖 얘기가 나왔다. 다른 마을에도 파티가 있지 않겠느냐, 다음 기회도 있지 않느냐, 연습만 하면 네 실력으로도 개인 부문에서 충분히 입상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굳이 대회에 나가야 돼?"


"어?"


"대회에 나가서 꼭 실력을 증명받아야 하는 건 아냐. 그냥 여기서.."


"...?"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같이 숲에서 놀고, 산에 오르고… 그런 건 대회도 상도 필요 없잖아. 나랑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된 거 아냐?"


"...스승님, 내가 스승님한테 내 여동생 얘기해준 거 잊었어?"


"알아. 하지만--"


"만약 그게 스승님 동생이었으면.. 안 찾아다녔을 거야?"


 그때 대화는 그렇게 끝났지만 셀레나의 행동은 180도 바뀌었다.


 그날 이후 셀레나는 마법 훈련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나도 알고 그녀도 알고 있었다. 파티원이 모인 대회 연습이 끝나고 그녀의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셀레나의 그 복잡한 표정은 꼭 집창촌에 납치당했다가 순결을 모조리 잃고 돌아온 자식을 보는 듯했고 얼마 뒤에는 아예 대놓고 잘못된 포션을 주거나 이상한 주문을 알려주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도움은커녕 방해까지 하는 그녀에게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나도 잘못한 게 없지 않으니 그저 계속 이해해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대회 전날까지도, 나는 그녀 집에서 마지막 설득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밥도 먹다 말고 가족 사정을 말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그리고 대회 당일.


 나는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대회장에서 문전박대당한 것도 아니다. 대회날이 되어 눈을 뜬 시간이 해가 이미 중천에 오른 때라는 걸 깨달은 순간 기회는 날아간 것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허겁지겁 짐을 챙겨 집을 뛰쳐나갔지만 그것도 몇 발자국 가지 못했고 이미 늦었다는 걸 체감하며 그대로 엎어져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펠리페!!"


 그런 나를 안아든 것은 뒤쫓아 달려나온 셀레나였다.


"끅...흑….흐아아아아앙…:"


"괜찮아, 괜찮아…."


 제대로 결속도 하지 않아 땅에 엎어짐과 동시에 사방팔방 튕겨나가버린 짐들을 뒤로 하고, 셀레나는 가방도 벗겨놓고 내 몸뚱아리만 가볍게 안아들고는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는 며칠 동안 혼이 나갔었던 것 같다. 파티원에게도 연락도 하지 않고 셀레나의 집에 계속 머무르며 나는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마음을 다잡아준 것 역시 그녀였다. 대회 전에는 걱정에 질투 비슷한 감정까지 그녀의 표정에 내보였던 그녀는 대회일이 지나가자마자 만면에 따뜻한 미소를 담으며 거의 나의 보호자 노릇을 자처했다.


"펠리페…"


"스승님…"


 기죽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 뭔가 사랑스러웠는지 아니면 그녀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나의 몸을 요구하는 날도 늘어났었다. 셀레나가 나를 위로해온 날이면 꼭 마지막에는 내 전신을 쓰다듬고서 키스와 함께 옷을 벗겼고 자연스레 그날 밤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위로해줄게."라고는 했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대회에 나가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연인을 보고서 도대체 어떻게 성욕이 오를 수 있는 건지 그때의 나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었고 몸을 섞을 때마다 절정에 이르기 직전이 되면 꼭 몸이 팔이나 마법으로 꽉 붙잡히며 "사랑해.. 사랑해.. 넌 내꺼야.. 영원히 내꺼야..♡ 응..?" 하는 말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마치 내가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때는 몰라도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느낀다.


 분명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기분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말하는 건 꼭 대회에서 떨어져서 잘 됐다는 뜻을 풍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녀가 나를 위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스승님, 이거 뭐야?"


"응?"


 약재를 보관하던 빈 창고에서 발견된 자그마한 약병.

 그리고 그 겉면에 붙은 [수면제] 라벨.


"이 수면제, 나한테 먹였어?"


"아…"


"..대답해, 이거 나한테 먹인 거냐고!"


"......"


 말없이 눈을 피하는 셀레나를 보며 나는 그녀의 짓임을 확신했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을…."


".......미안해."


"미안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


 그녀에게 악을 쓰며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나는 정..말.. 스승님을 믿었는데…"


"진짜 미안해.. 나중에 내가--"


"됐어, 이제 다 필요없어! 셀레나 같은 스승님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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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된 거다.


 셀레나의 집에 머무르고는 있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내 화를 풀기 위해 그녀가 자주 내 방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배운 봉인 마법으로 문을 막아버린다. 사실 문의 잠금장치만 쓰면 되지만 봉인 마법을 문에 걸어놓아 내가 그만큼 싫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다. 그녀도 얼마든지 마법을 풀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문에 보라색 아우라가 덮여있는 것을 보고 더 이야기하지 않고 돌아섰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나올 때에도,


"펠리페, 혹시 저번에 얘기했던 회복 마법 있잖아…"


"..."


"저기.. 펠리페..?"


"내가 알아서 해."


"..알았어…."


 그녀의 말은 거의 무시하며 대화를 피했다.


 오늘은 그나마 내가 자고 있느라 문에 신경쓰지 못하는 아침을 틈타 셀레나가 찾아왔다. 매일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오는 나에게 그녀는 아침밥이라도 같이 먹으려는 듯 식사를 들고 나를 깨웠지만,


"나가."


"아침...먹어야…"


"나가라고!"


 오히려 아침에 들곤 하는 그 짜증스러운 감정 때문에 더 화를 내며 그녀를 쫓아냈다.


"후우…."


 아침에는 어디 먼 곳에 나가는 것처럼 짐을 챙겨들고 나왔지만 사실 집 근처 언덕에 올라 홀로 마법을 연습하는 것이 전부다. 일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녀가 보기 싫은 것뿐이다.


 마법에 집중하면 정신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렇게 마법 주문을 외고 손에 아우라가 모일 때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오늘도 마법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며 벌써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Derit kool u, peels emos teg......"


*톡*


"...뭐야, 얘 왜 안 쓰러져?"


"거기에 손가락을 대면 안 되지."


"...!"


 셀레나였다.


"내가 가르쳐 줬잖아. 이렇게 머리 쪽에..."


*톡*


"..대야 한다고."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정말.. 마지막에 실수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


"..여기 안 봐줘?"


 이번에는 그녀가 내 시선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화나 있는 거야..?"


 대답 대신, 나는 몸을 일으켜 짐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잠깐만, 펠리페."


 그녀가 내 손을 잡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뿌리쳤다.


"펠리페."


 가방을 둘러메고 나는 몸을 틀어 언덕 아래로 걸어갔다.


"잠깐 얘기 좀 해."


 이번에는 그녀가 내 뒤에서 어깨와 허리를 붙잡는다.


"내 몸에 손 대지 마."


"...싫어."


"...놔."


"펠리페…"


"..."


 결국 내 손에 적대적 마법을 뜻하는 붉은 아우라가 모였고 작은 '팍' 소리와 함께 그녀가 뒤로 밀쳐졌다.


"아…."


 등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언덕을 내려갔기에 그녀가 어떻게 넘어졌는지는 모른다.

 혹시 다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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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나는 짐을 빼내 셀레나의 집을 나왔다.


 내가 언덕을 내려와 먼저 집에 들어간 덕에 그녀는 아직 집에 없었고 그 사이 나는 필요한 짐을 챙겨 집을 비울 수 있었다.


 원래 살던 곳은 허름하고 좁은 집이었지만 그녀를 더 마주칠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녀를 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펠리페!"


*쾅쾅쾅*


"펠리페! 안에 있지?"


*쾅쾅쾅쾅쾅쾅*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아다녔는지 셀레나는 몇 시간 만에 내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왜 도망간 거야..! 펠리페!!"


"...."


"제발.. 대답이라도... 해 줘… 제발… 흐읍…."


"......."


"나 무시하지.. 마아… 끅… 대답..흐극..이라도…"


 결국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펠리페… 제발 용서해줘… 난 너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흐읍.. 대체 왜.. 왜…."


 문을 등진 채로 나는 벽에 미끄러져 앉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연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나로서도 고통스러웠다.


".....흑… 끅… 흐윽… 너…"


"......"










"...........너 바람폈구나..?"










 감정에 흔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


 그 뒤로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더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나도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렸다.

 아침이 되어 다시 일어났을 때도 창문 너머로 살짝 바깥쪽을 엿보았지만 셀레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다시 내 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밖에서 그녀의 집을 지나칠 일이 있어도, 셀레나는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쯤이 지나자 이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심코 그녀의 집 방향으로 발을 트는 일이 잦아졌고 심지어는 오히려 내가 그녀의 집 밖에서 창문을 들여다볼 지경이 되었다.


 솔직히, 그녀가 다시 찾아오길 바랐던 마음도 은근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했던 말이 홧김에 했던 말이 아니라면, 정말로 내가 바람 피운 줄 알고 있다면.


 그리고 만약에…


'난 너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그녀가 지금 오지 않고 있는 게…


'......'



 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집에 돌아온 셀레나가 바람 피운 나를 원망하며 한없이 울고만 있고, 그러나 결국 밧줄을 묶어 그녀의 목에…


"그럴 리가..."


 그러나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다.


 화는 났을지언정 그녀가 정말 죽도록 미운 것도 아니었다. 만약 정말 그녀를 잃는다면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 보자.'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빌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오해만큼은, 이 상황만큼은 풀어야 한다.

 나는 문을 열고 셀레나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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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스승..님…?"


 정말 오랜만에 부르는 호칭이었다. 문앞에 다소곳이 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두 번 문을 두드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갈게…"


 잠금이 되어있지 않은 문을 열고 나는 그녀의 집 안에 들어갔다.


"......."


 집은 정말 고요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들어올 때마다 느껴지는 약초 향기는 조금 났지만 그와 함께 들려오는 책장 넘기는 소리나 약 끓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스승님..? 안에 있어…?"


 곧바로 향한 곳은 거실 너머 바로 있는 그녀의 방이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는 건 수면제 사건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방문부터가 뭔가 조금 낯설었다.


"스승님…? 셀레나…?"


 방문을 여는 오른손에 평소보다 더 힘이 실렸고 조금씩 열리는 문이 더 삐걱 소리를 냈다.


"......?!"


 문 너머 그녀의 방에는 멀쩡한 것이 없었다.


 탁자며 촛대며 방 안에 있는 가구들이 모조리 박살이 나 있었고 멀쩡한 건 책상과 침대 하나뿐이었다.

 모든 것들이 고철 조각이나 나무 조각이 되어 으스러진 가운데 이불까지 깔끔히 정리된 침대가 홀로 온전히 놓여있는 것이 뭔가 오싹했다.


 벽은 사방에 핏자국이나 움푹 패인 자국이 가득했다. 꼭 누군가 방 안에서 격하게 싸운 것만 같았다.


"이게.. 뭐야…"


 그렇게 말하며 걸어들어온 내 눈에 비친 것은 책상 위 핏자국이었다.


 그 위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잖아."


 소름이 끼쳤다. 핏자국이 그 위에 뿌려져 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이건 내가 찍은 기억도 없는 사진이었다.


 ...이건 내가 내 집에서 자고 있는 사진이었으니까.








"dEriT kOol U, pEEls EmOs teG...."







"...?!!"


 바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이 주문은…….




"잘 자."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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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글 재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