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얀데레 선택글





평화로이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밤.

나는 '오늘은 제발 빌런들이 찾아오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빌며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냈다.




ㅡ  딸랑




" 어서오세요 "



들어온 그녀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주류코너로 직진해

소주 두 병, 맥주 세 캔을 챙겨와 카운터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 탁




다른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류코너에서 5병이나 그녀를 보고선,


내 알바짬밥 36개월 직감이 외쳤다.




' 민짜다. '




후드티로 가린 얼굴 속 살짝 보이는 앳 된 얼굴,


다른건 신경도 쓰지않고 오직 목표는 오직 정해져 있다는 듯 주류코너로 달려가 다급히 꺼내온 술 5개 그리고,


당당히 올려두고선 안절부절 못하며 땅을 쳐다보는 저 몸가짐까지.


그녀를 잠시 쳐다보고 있노라니, 내 머리 속 직감이 다시 한 번 메아리쳤다.


' 이 친구는 민짜가 아닐 수가 없다. '




" 저기,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



" 안 가져왔는데요... "




신분증 달라는 말에 당당히 없다고 하는 그녀.

너무나 당당한 그녀의 기백의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금 멘탈을 붙잡고 그녀에게 말했다.




" 신분증이 없으면 판매가 안돼서요. 다시 가져다 둬 주세요. "



" ....네 "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는 그녀를 보고선,

' 아닌가 성인인가... 급식이 저렇게 잘 들어줄리가 없는데... "

싶었을 그 때.




ㅡ  딸랑.




내 귀에 들린건 편의점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닌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구에게 쫒기는 듯


다급히 뛰어가는 소리였다.



" 야!!! "



나는 바로 계산대를 뛰어넘어 도망친 그녀를 쫒아갔다.











.....











5분정도 뛰었을까


그녀를 쫒아 달리다 보니 알바하는 곳에서 꽤나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공원까지 와 있었다.



" 하아...하아악... 뭔 여자애가 저렇게 빨라... 하악..."




가면 갈수록 지치기는 커녕 더 빨라지는 듯 한 그녀를,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내가 잡기엔 무리가 있었다.




" 지금 밥 한끼 먹을 돈도 아까운데...편갤에 올려봐서 이거 개념 못가면 오늘 잠 못잔다 "





편갤에 들어가 내 피 같은 돈 15000원을 빵꾸 메꾸는데 쓰게 한 그녀에게 술발장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필력을 뽐내고 있을 때 아까 들은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스쳐갔다.





" 아니 니는 술 마실때 술만 쳐마시냐? 진짜 사오란건만 딱 사오네 "



" ...아닙니다아..."



" 너 씨발 내가 말꼬리 늘리지 말라했지 "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공원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아니나다를까, 그토록 찾던 술발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죄송합니다 "



" 좆같냐? 니는 지금 메달 따고 우승도 해봤는데 꼴에 내가 선배라고 나대니까 마냥 좆밥같지? 우습지? 말을 해봐 새끼야 "



" 아닙니다. "




풀숲에 숨어 훔쳐보는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지만,


앞에 덩치 큰 여자가 그녀의 가슴팍을 툭툭 치며 말하는 걸로 봤을 때, 상황이 좋게 흘러가는거 같아보이진 않았다.


아니, 조금은 심각해보였다.




" 왜? 좆같잖아 니, 아까 체육관에서도 표정 좆창났더만 "



" ...아닙니다.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이딴식으로 할 거... 뭐야? 야! "




슬금슬금 덩치의 뒤로 걸어들어가,

나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본진으로 뛰었다.

손목을 잡자마자 선배로 보이는 그 덩치 큰 여자가 뒤쫒아왔으나

역시 생긴거마냥 그렇게 빨라보이진 않아, 금세 따돌릴 수 있었다.




" 야!!! 너 씨발 안오면 뒤져??!! "




덩치의 울음소리가 들렸으나,


처음엔 당황하던 내 옆의 그녀도 별 저항없이 뒤따라왔다.

오히려, 나를 앞서나갈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










무사히 본진으로 돌아와

그녀를 카운터 안 의자에 앉힌 뒤,

그녀에게 질문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 이름이 뭐야 "



" ...도여름 "




묵묵부답에 답답한 상황이 연출 될 줄 알았으나,

의외로 즉답이 나와 다행이었다.

답답한 상황은 어느 누구라도 반기지 않을테니.




" 그래 여름아, 왜 그랬어? 하면 안되는건 알고 있잖아? "



" 못사면, 그 선배한테 맞아요. "



" 그 사람이 선배야? 어디 학교 다니는데 "



" ...옆에 여고요... MMA해요..."



" 운동해? 그래서 그렇게 빨랐구나? "




실없는 말을 던지곤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체육계 똥군기가 심하단건 어렴풋이 알았으나,

새벽 1시까지 이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건의 전말도 알았고, 그녀에게 악의가 있지도 않으니, 그녀의 후드를 내리고 볼살을 꼬집었다.



" 그래... 여름아. 앞으론 그러지 말고... 후드 내리고 다녀, 예쁜얼굴 다 가리네 "



" .....저 예뻐요...? "




왜인지 조금 얼굴이 붉어진 듯 한 여름인,

아까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어왔다.


본인이 이쁘단걸 자각을 못하는건지,

한 번 더 듣고 싶다는건지.

말 뿐이라면 못 해줄것도 없기에 다시 한 번 대답해주었다.




" 어 이뻐.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 "



" ...내일 또 올게요오... "



" ...? "




또 오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선


ㅡ  딸랑.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 돈 받아야 되는데 "











...












그 후로 여름인 내 타임에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카운터로 들어와,

매일같이 내 옆에 꼭 붙어있었다.


나야 외로운 기분이 덜해서 좋다지만, 여름인 학생이기에 2시 전엔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처음엔 와서 가만히 있다가 돌아가더니,

날이 갈수록 붙어있는 시간이 늘고, 도통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도, 3시가 넘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인 내 옆에 앉아있었다.




" 오빠, 오빤 여자친구 있어요? "



" 갑자기? 처음 봤을땐 되게 경계하는거 같더니만 이젠 애인 유무까지 묻네 "



" 아니 빨리요...! 없죠?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은요? "



" 뭔데 니 맘대로 내 여자친구가 없다고 가정하냐? 있으면 어쩌려고 "




그러자, 내 허리를 감싸던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딜 보고 있는지,

마치 깊은 해구처럼 생기없는 검정색으로 채워졌다.




" 아! 야...! 야 아파 이새끼야!! 놓으라고!! 야!! "



" 있...어요...? 누...누군데요...? "



" 없어, 없으니까 빨리 놔. 뭐 여자애 악력이 이렇게 쎄... "



" 없죠...? 놀랐잖아요... 괜히 그런말 하셔서... "




본인이 운동하고 있단걸 모르는건지, 원래 급발진하는 성격인건지.

덕분에 내 갈비뼈만 부러져나가는 듯 했다.

내가 여친있는게 그렇게 화 낼 일인가...




" 하...씨팔 존나 아프네...



" ㅈ...죄송해요... "



" 됐고, 그럼 너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



" 네! 있어요! "



" 오... 진짜? 너네 학교? "




오랜만에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이 생겨,

방금 있던 옆구리 통증도 잊고 그녀에게 코치코치 캐물어보기 시작했다.




" 아닌데... 비밀이에요 "



" 야 뭐야,, 나 아까 니 때문에 갈비 부러질뻔 한 거도 있고 차피 알지도 못할텐데 그냥 알려줘라..."



" 음.... 그럼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러면 알려드릴게요 "




' 진짜 쩨쩨하다. '


물론 직접 말하진 못하고 입안에서 투덜이며,

여름이에겐 긍정의 의사를 내비췄다.




" 알았단거죠? "



" 말도 안되는거 아니면 다 들어줄테니까 빨리 "



" 그럼 말할게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가 알지도 못 할 사람일거

왜 이리 시간을 끄는지




"" 저 오빠 좋아해요. ""











" ....뭐?"




사람이 너무 당황하게 된다면, 말문이 턱 막힌다고 했던가.

그녀의 말을 듣고서 목에 무언가 걸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오빠 좋아한다고요 "



" 그게... 뭔말이야...? "




'내가 지금 잘못들은건가?'

그녀에게 다시 되물었다.





" 오빠 좋아한다고요... 그러니까아...




저랑 사귀어주세요... 이게 소원이에요..."





" ...... "



'농담인가?'

'농담이라기엔 너무 진지해보이는데?'

'내가 받아주면 어떻게 되는거지?'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여러가지 생각이 섞이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 오빠도 좋죠? 저 예쁘다고 해주셨으니까아... 저도 오빠 좋아해... "



" ...미안. 안 될 것 같아. "



" ....네? "




다시금 아까처럼 그녀의 눈빛이 없어지고,

검은색 색소를 채워 넣은 듯 초점이 없어진듯 보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깊어보이는 해구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 왜... 왜 그러는데요... 저 예쁘다면서요... "



" 넌 예쁘니까, 더 좋은사람 만나야지 "



" 그게 뭔 말이에요... 오빠보다 좋은 사람이 어딨어요... "



" 너가 어려서 잘 모르니까 그러는거야. 너 또래애들 중에 잘생기고 성격 좋은 놈들 많잖아 "




조용히 타이르면 실수인걸 인정하고 진정 될 줄 알았다.

그게 가장 큰 실수인듯 했다.




" 아니에요... 아니라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어디 정착해서 살았던 적이 없고,


고등학생 되어서도 메달은 많았지만 그럴수록 주위에 사람들은 없어져만 갔는데...


나도... 나도 생각해봤다고...


그냥 스쳐가는 감정인지,


근데 방금 있잖아요... 방금 오빠한테 여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때 알았어요... 오빠 아니면 안돼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사귀어주세요... "




그녀가 오열하듯 앙망한 말에도,

내 결정에는 번복이 없었다.



" 미안,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



" 오빠 제발.....


그렇게 말하면...."





" 나가줬으면 좋겠 "








ㅡ  우드득.











이러는수밖에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