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싸구려 모텔 방에서는 담배냄새가 변질된 악취가 풍겼다. 

구멍난 침대 시트가 들썩였다. 


내 목에는 칼이 들어와 있었다.


"야, 너 뭐 하는...."


주영이었다. 단발머리에 유난히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녀가 등 뒤에서 내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잠깐, 잠시만, 대화로 해결하자."


주영이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대화?"


"아니, 왜 그래. 말로 해결하자니까?"


"무슨 말? 나는 옛저녁에 할 얘기 다 했다, 아니야?"


"그러니까 너의 말만 하지 말고 내 말도 들어보라고."


나는 능청스럽게 보이도록 연기했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씨발, 감각이 이상해서 다리께를 살펴보니 발목이 묶여있었다.


"그 씨팔년들하고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


주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몸파는 년이라고 무시하니?"


그녀가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나는 나대로 억울한 점이 있었다. 


"야. 너도 나가서 남자 만나잖아."


"그거야 네가 생활비를 안 대니까..."


솔직히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준 적은 없었다. 하릴없이 기둥서방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병신처럼 구속되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김주영, 멀쩡하게 생겨서 키스방에서 일하는 이 여자를 내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셈해보았지만 답은 확실히 떨어지지 않았다.


김주영은 나를 꽤 좋아했다. 이것이 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내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만남은 클럽에서였다. 나는 내 눈에 예쁜 여자들만 보이면 정신을 못차렸고, 그녀는 내 저돌적인 헛짓거리에 기분이 상한 척 즐기는 여자였다.

우리는 함께 밤을 보냈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얼마 뒤, 영화를 함께 보고 다시 밤을 보냈다. 그 뒤에는 함께 비싼 일식집에 갔고, 결국 함께 살게 되었다.


데이트 비용은 김주영이 9할 이상 지불했다. 나는 지갑을 가지고 나왔지만, 그건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한 용도였다. 지갑 속의 카드를 꺼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김주영은 그래도 괜찮다며 속없이 웃었다. 

몸파는 여자들을 처음 만나본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같이 살 정도의 관계로 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주영은 보통 여자들과 달랐다. 입에 걸레를 물지도 않았고, 행동이 거칠거나 충동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싹할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했다. 키스방에 다녀오고 나서 손님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도 TV에 나오는 변호사마냥 아무 감정 없이 조곤조곤 말했다.

나는 그것이 꺼림칙해서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너만 좋아해.'


생기 없는 눈으로 읊조리는 그녀가 부담스럽다고 느껴진 건, 두 달 전쯤이었다.

그때쯤 내 천성에 대해 깊이 깨달았다. 나는 어딘가에 매여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것이 가족이든, 가정이든, 사랑하는 여자친구든, 상관 없었다. 내게는 둥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밤거리로 나서서 새로운 여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일자리도 찾아보았다. 25살, 젊은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찾아봤다.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나에게 어떤 심한 말도, 욕도 하지 않았던 김주영.

다정하고 싸늘한 김주영.

하얗고, 키 작고, 마른 김주영.


나는 고개를 최대한 꺾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려 애썼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감동한 눈빛으로 칼을 치우지 않았다.


"기분 나빴으면 말하지."


농담처럼 던진 말은 허공을 메아리쳤다.


"말하면 네가 들었을까?"


칼이 내 목줄기를 찔러왔다. 아픔이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작고 여린 손목이 움직였다.


"여기서 같이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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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