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주방에 들어오니, 문득 예전일이 생각났다.


"아, 그나저나 멜브리아."


"응?"


"예전에 납치했었을때 말야.."


"...그거 말하지 말랬지!"


"아얏."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꼬리로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때 그녀가 내게 행한 모든 일은 그녀의 마음속에 큰 짐이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이젠 괜찮다, 상관없다 누누히 말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1년간의 행적이 너무나도 미안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별일 아니었다는듯이 넘겨주면서, 그녀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니, 괜찮다고 맨날 말하잖아...."


"......그래도."


그녀의 꼬리가 축 쳐지고 풀죽은 강아지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죄가 사라지는건 아닌걸."


1년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듯, 그녀는 내게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있다.


"......너한테 찾아갔었던 그날...나는 알았어.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한건지..."


그리고는, 이미 들었던 내용을 또 말하며 내게 사과하려한다.


나 참.


"...그래서, 언제나 미안ㅎ.."


"야."


나는 멜브리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턱 잡고 올려 키스했다.


"읍...?!"


눈을 감고, 그녀의 혀와 입술의 감촉을 느꼈다. 입술은 절세미녀의 그것처럼 부드러웠지만, 혀는 용의 그것처럼 까슬거렸다.


"......"


말없이 입을 떼고, 그녀를 바라봤다. 빨개진 얼굴과 촉촉하게 젖어있는 사파이어같은 푸른 눈동자가 눈에 띈다.


"...아무리 그래도, 죄는 죄인걸. 그 이야기...되도록 꺼내지는 말아주라."


애써 고개를 홱 돌리며 그녀가 말했다.


"멜브리아...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는데,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


이럴때 그녀는 내 말을 전혀 들어주질 않는다. 우직하게 생각을 관철하는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 고집스럽다.


...강압적인 방법만큼은 하기 싫었는데 말이지.


나는 하는수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멜로리네"


"...읏!"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대의 구원자이자, 그대의 반려, 제롬 핏츠버그가 그대의 진명을 걸고 언약을 맹세하나니."


내 몸 안쪽에서 마력이 끓어올랐다.


"이제 그만 잊어! 나는 괜찮으니까! 또 미안해하면, 일주일간 나랑 접촉 금지야."


"제롬....!"


 "그대, 진명을 불린 드래곤, 멜로리네여. 내 언약에 맹세하라."


진명을 불린 사람은, 진명을 아는 자가 말한 언약을 반드시 지켜야한다.


세상에 내려오며 받은, 진정한 이름이니까.


"하...하지만...!"


그녀가 나름 저항해보려하지만, 발언권은 주지 않을거다.


"맹세하라."


"...큭....매...맹세...하겠다..."


그녀는 마지못해 나와의 언약을 수락했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던 마력이 점점 가라앉아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녀를 몰랐기에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나를 가둠으로써 상처를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잘못을 인지하고, 레티에라의 광장에서 서로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짐이 남아있었다.


그래선 안된다. 우리는 부부로써 서로의 연이 맺어져있다.


과거에 너무 얽매여있다간, 다가올 미래에 대비할수없다. 강압적이더라도, 그녀의 마음 속 짐을 내려놓게 해야한다.


"...멜브리아?"


"...우으읏..."


그녀가 울먹거리고있다. 나때문에 저렇게 된거같아서 마음이 좀 아파진다.


"....나좀 봐봐 멜브리아."


"...제롬....왜...?"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나를 바라보는 멜브리아.


"...우리가 서로의 잘못을 인지했었을때, 나는 너에게 사과했었어. 기억나지?"


"......응."


"너도 내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해서, 레티에라로 날아왔던거고 말야. 맞지?"


".......응."


".....우리는 그날 서로에게 했었던 잘못을 사과했었지. 맞지?"


".....그치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우리는 레티에라 분수대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힘들면 서로를 지탱해주고, 위기가 닥쳐왔을때 함께 있어줄 부부가 되었어. 맞지?"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네가 했었던 그 잘못을 전부 이해하고, 또 용서했어. 그러니까 이제 과거의 짐은 내려놓고, 앞만 바라보자."


"...제롬..."


"...너에게 언약을 걸어둔건, 그런 이유에서야."


동굴로 돌아왔었던 첫날밤, 그녀는 내게 자신의 진명을 알려줬었다.


진정한 부부로써 자신의 모든것을 드러내겠다는 징표라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진명을 불리게되면, 진명을 아는 사람이 하는 말 모두를 들어줘야만 한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녀의 진명을 들었을때, 나도 자신의 진명을 기억해내어 그녀에게 말해주었었다.


아마 마법적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서로의 진명을 아는 우리는, 서로 치명적인 약점을 서로가 가지고 있는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서로에게 언약을 거는 일은 부부사이에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대로 계속 같이 살아가게 되면, 그때의 그 짐이 자꾸만 너를 무겁게만 할것같았어."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다.


"언약의 댓가는 꼭 치를게. 그러니까, 그 짐을 덜어줘."


".........."


나는 주방을 둘러보았다. 이성이 녹아있었던, 아이같았던 그녀와 지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1년동안 있었던 일들 모두, 이제 내게는 전부 추억이야. 너랑 이렇게 맺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신경쓰이지 않아?"


그녀가 팔을 올려 나를 껴안았다.


"전혀."


".....무섭다고 생각되지도 않아?"


그녀의 꼬리가 내 허리를 휘감았다.


"물론이지. 마누라가 왜 무섭겠어."


"......정말이지?"


이럴땐 정말 애같고 귀엽다니까.


"응. 나는 너랑 있었던 모든 일들을 추억하고싶어."


".....사랑해."


"나도."


왕궁의 주방처럼 넓은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앉아있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이성이 녹아있을적의 행적 거의 대부분을 기억하고있었다 한다.


너무 강한 집착과 미련에 나를 가두고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추했다고 생각했다한다.


나를 향한 사랑과는 별개로, 자신을 혐오하고있었던거다. 그래서 그녀는 내게 너무나도 큰 감사를 느꼈다고 한다.

















 "...일주일. 일주일동안 옛날얘기 하게해주면, 언약의 댓가는 달게 받을게."


"...약속한거다?"


"알았어... 근데, 뭐 이상한거 시킬거는 아니지?"


"궁금해?"


".........."


뭘 시키려는거야.


그녀는 검은 날개에 손을 쑥 집어넣고 뒤적거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이건...."


목줄이잖아?


"...언약의 댓가는 이거야."


목줄을 차는거?


"...이걸 목에 차는거?"


"응."


그녀가 홍조를 띄우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이걸 차고 일주일간, 너를 자유롭게 이용하는거지."


"....자유롭게..라면?"


"말 그대로, 자유롭게. 뭘 하든지, 너는 다 들어주는거야."


"...어.......어?"


"...용과의 언약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돼, 제롬."


꼬리를 살랑거리며 목줄을 만지는 멜브리아.


"언약을 걸면, 항상 그것보다 더 큰 반동이 오는것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는걸 잊지 마. 알았지?"


그녀가 나를 보며 윙크해보였다.


"...제발..이상한건 시키지 말아주라..."


"헤헤헤...내 진명을 가볍게 불러버린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턱 끝을 만졌다.


"기대하라구?"


아.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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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가 꼴리는 사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