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전편 : https://arca.live/b/yandere/9756004



용사(파논) 성녀(엘리사) 궁수(아르카) 암살자(아이샤) 마법사(이얀붕)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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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나고 요 며칠간 나는 황궁에서 검술 훈련을 받고 있었다.

총들은 제작이 완료되었지만 그래도 뭔가 준비해두고 싶었다.

근거리에서 싸울만한 것 중에 검술이 제일 무난해 보여 검술을 배우기로 했다.




"허허... 체력은 괜찮은데 이거 전투 센스가 꽝이구먼."




"검을 만져본 적이 거의 없어서요."




나날이 기본 실력은 늘어나는 것 같았지만 정말로 센스는 꽝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전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고 싶었다.




"얀붕아. 여기 물!"




"고마워! 아이샤."




아이샤는 개인적으로 훈련하는 시간 빼고는 항상 내가 훈련하는 걸 지켜봐 주고 있다.

진짜 고마울 따름이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 물을 마시면서 쉬고 있을 때 아이샤가 뭔가 바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아...아니 저 그게... 그... 머리를 이렇게~ 이렇게~ 해줘!"




아이샤는 나한테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했다.

언젠가 커플을 봤는데 남자가 여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진짜 너무 귀여웠다.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백 번이고 해주고 싶었다.




-쓰담 쓰담-




나는 적당한 속도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거 기분 좋아! 행복해지는 거 같아~"




다행이다.

요즘 아이샤는 좀 활발해진 것 같았다.

표현도 많아지고 말투도 조금 달라졌다.

좋은 현상이겠지.




다시 훈련 시간이 되어 훈련하고 있는데 어디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여자 마법사 둘이 이쪽을 보고 깔깔거렸다.




"정말... 저분이 진짜로 용사 일행인지 참~ 어찌 며칠째 훈련을 해도 제자리걸음 일까요~"

"마법에도 재능이 없다지요. 명색이 마법사인데 깔깔깔."




저들은 황궁 내 마법사들 중에서도 꽤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마법사들이었다.

기분 나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아이샤는 그녀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뭔가 초점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쪽을 쳐다보는 건 맞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얀붕이한테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얀붕이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재수 없는 년들... 얀붕이의 노력을 무시하다니. 벌레같은 년들.' 


'...죽여버려야겠다.'




그녀들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한 남자 황궁 마법사가 오자 도망치듯 가버렸다.




저 남자 마법사도 나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조금 음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들이 도망간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막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한테 해를 끼치진 않아서 이야기 정도는 몇 번 하긴 했다.

나한테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보기보단 좋을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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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샤가 잠깐 비련 본부에 갔다 온다 했다.

본부에서 여러 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뭐 또 하고 온다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맨날 어디 숨어서 따라오거나 옆에 딱 붙어서 다녔는데...

옆구리가 텅텅 비어있으니 은근 쓸쓸했다.

나에게 있어 이젠 너무 큰 존재가 되버린 걸까.




그렇게 마을 곳곳을 구경 차 둘러보던 중 수상한 남자가 접근해왔다.

나는 언제든 권총을 뽑을 수 있게 준비해뒀다.




"저에요 저! 황궁에서 봤었던 마법사라고요!"




그는 위협을 느꼈는지 황급히 후드를 벗었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요즘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어서."




"아. 그 매춘부 살인사건 말씀이십니까?"




"네 뭐 그렇죠. 살인사건이니 조금 걱정되는 게 많네요."




매춘부 살인사건.

누군가 매춘부들을 강제로 범한 뒤에 살해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은 평범한 남자, 여자들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

제국 쪽에서 직접 나서 소문을 수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말만 매춘부 살인사건이지 그냥 우연한 살인 사건 여러 개가 한 번에 묶인 것이다.

서로서로 다른 사건에, 연관성도 없다.

그냥 제일 크게 화두되는 것이 매춘부들의 죽음이라 그렇게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궁에서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보호 마법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얀붕님도 그 대상 중 한 명이시죠."




"오 그건 좋네요."




특별대우 서비스를 받다니 횡재했다.

나도 이제 조금 입지를 다져가는 걸까.




"아직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빠르게 마법만 걸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궁 마법사는 간단한 영창을 한 뒤에 나에게 마법을 걸었다.

뭔가 기분이 찝찝한데 뭐 괜찮겠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나는 뒤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걸 알았고

황급히 뒤돌아보려 했지만,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해버렸다.





"으...머리야."




얼마나 새게 후려친 것인지 머리통이 아직도 울린다.

여긴 어디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했는데 일어날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내 양팔과 다리가 의자 같은 것에 묶여있었다.




"드디어... 깨셨네요...?"




살기가 가득 담긴 말투로 아이샤가 나를 반겨주었다.




"아이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너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이것들은 다 뭐야."




"거짓말쟁이한테 더 이상 들을 말은 없을 것 같네요."

"쓰레기 같은 분이셨네요... 얀붕씨만은 믿었는데..."




이게 뭔 상황이야. 아이샤의 말투도 바뀌어버렸고, 몰래카메라인가? 혹시 오늘 무슨 날인 거 아니야?




아이샤는 갑자기 윗도리를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윗도리는 왜... 왜 벗는 거야?"




"왜라뇨? 얀붕씨는 저를 배신했어요! 정말로.... 나빠요!!!"

"지금 제 마음이 어떤지 아세요?! 괴물이라고 불렸을 때보다, 자해한걸 들켰을 때 보다 더 아프다고요!"

"어째서... 어째서... 용서할 수 없어요..."




"저기... 아이샤 무서우니까 연기라면 이제 그만해줘. 부탁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기요? 얀붕씨를 향한 제 마음이 그저 연기처럼 보였나요?"


"저는... 저는 정말로 진심이었어요."


"물론 가끔 이상한 곳으로 튀긴 했지만. 그건 모두 얀붕씨를 향한 제 마음을 표현한 것 뿐이었어요."




그녀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계속 손을 부들거렸다.




"그런데 얀붕씨는... 어떻게 저를 버리고 다른 여자들이랑 그 짓거리를 할 수가 있죠?"


"얀붕씨의 처음은 저여야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제가 받은 고통만큼... 얀붕씨도 받아줄 거죠?"


"아니요... 선택권은 없어요. 당신은 무조건 받아야만 해요..."




뭐지...

설마 나 매춘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찍힌거야?

그것도 아이샤한테?




아이샤는 자신의 수리검을 들고 조금씩 나한테 걸어왔다.

저걸로 나를 찌르려는 건가...

어떻게 하다 이 지경까지 온 거지...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걸로 나를 찌르려고?"




"아니요. 저는 얀붕씨를 엄청~엄청~엄청~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얀붕씨는 이러한 제 마음을 무참히 도려내 버렸죠."


"그러니까 저도 얀붕씨의 마음을 서서히 무너져내리게 할 거예요... 제 방식대로 말이죠...히힛."




그렇게 그녀는 수리검으로 왼쪽 손목에 감겨있던 붕대를 찢었다.

내가 예전에 자해하지 말라고 그려준 하트모양이 반으로 갈라졌다.




나는 차마 더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똑똑히 보셔야죠. 어디서 눈을 감고 계시는 거죠?"


"당신이 저에게 준 상처... 똑같이 느껴 보셔야죠."


"도망칠 수 없어요..."




아이샤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눈을 감게 하지 못하는 도구를 내 양쪽 눈에 쑤셔 박았다.




"아파...아파....흐윽...흑...너무 아파...살려줘..."




그녀는 보란 듯이 자신의 손목을 긋기 시작했다.

너무 깊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얇게도 아니다.

정말 아프기만 한 그 깊이, 그 강도로 그녀는 계속 손목을 그었다.




"으으으으윽! 그만! 그만! 아이샤 그만해! 제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아픈 수준을 넘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팔과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눈 뜨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에 눈물이 쏟아졌다.




"으윽...너무 아파요... 얀붕씨도 아픈가요? 당연히 아프겠죠. 상냥한 얀붕씨는 제가 상처 입는 모습 싫어하니까요."


"하지만...지금 느끼시는 아픔은 제가 느낀 것에 비해 절반도 안될거에요..."




그녀는 의자를 조정하여 나를 뒤로 눕혔다.

나의 아래쪽을 완전히 벗겨버린 뒤

자신의 타이츠를 내리고 내 위로 올라왔다.

손목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고, 점차 내 몸을 적셔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에요 얀붕씨. 제 처녀를 얀붕씨에게 주고 저는 자살할 꺼에요."


"물론 얀붕씨와 함께 말이죠... 저희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영원히 함께였어요."




-또르륵-




"흐....흐윽...왜.... 왜... 왜 저를 이런 저를 배신한 거에요..."


"얀붕씨는 이제 제 삶에 남은 전부였는데..."


"얀붕씨, 저... 아직 밑이 젖지도 않았어요. 처...처음인데 엄청 아프겠죠? 무서워요.... 무서워요...."




정신이 점점 아득해져 간다. 진짜로 이대로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 전에 해야할 말이 있었기에 나는 급하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내 마음을 전했다.




"아이샤... 이제까지 쭉 말 못해왔지만, 나는 정말로 너를 좋아했어."


"비록 이딴 상황에 이런 말 하는 게 변명하는 걸로 보이는 쓰레기 같지만, 지금은 꼭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정말 미안해... 너의 인생에 나타나서 미안해... 어쭙잖은 마음으로 너한테 호의를 베풀고 호감을 느껴서 미안해."


"너는 처음부터 진심이었는데, 나는 왜 이제와서야 그걸 깨달았을까."




눈은 너무나 아프고, 눈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울고 있었던 건지 이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다.




"으흑... 아이샤... 그러니까 나 같은 놈한테 그렇게 너의 모든 걸 내려 놓을려 하지마."


"이런건 조금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하길 바랐는데... 이젠 완전 물거품이 되버렸네."


"그러니 부탁이야. 제발 죽지 말아줘. 자살같은거 하지 말아줘. 차라리 나만 죽여... 나만..."




...




"정말로 미안해... 좋아했어... 그리고, 사랑했어... 아이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계속 일을 진행하든, 내 말을 듣고 나를 죽이든 나는 이제 더는 선택지가 없다.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다.

나는 평범한 소설의 파티에 하나씩 있는 그저 그런 쓰레기 엑스트라였던것이다.

이제 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꽤 긴 시간 동안 아랫도리에 느낌이 없었다.

나 아랫도리도 이미 어떻게 돼버린 건가.

결국, 정신이 나가버린건가.




"야...얀붕아...? 이게 다 뭐야... 왜 이렇게 피 칠갑이 된 거야..."


"나...나는 왜 이러고 있지... 아... 아.... 아... 아... 아윽아아악으악으아아아아!!!!!"




갑자기 아이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투가 바뀐 걸 눈치챘다.

나는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황급히 아이샤를 불렀다.




"아이샤 정신 차려. 아이샤!"




하지만 그녀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 이거 꿈일 거야... 그렇지? 내가 얀붕이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하다니..."


"분명 나쁜 악몽일 거야. 아아 맞아 악몽이야."


"이딴 악몽은 얼른 깨고 싶어. 일어나면 얀붕이가 아침밥을 만들고 있겠지?"


"내가 뒤에서 껴안으면 괜히 싫은 척 하면서도 상냥하게 잘 잤느냐고 물어봐 주겠지?"


"그럼 나는 악몽을 꿨으니 달래주라고 해야겠어... 응! 얼른 잠에서 깨야지."




그녀는 그냥 그렇게 중얼중얼하더니 바닥으로 내려가 떨어트렸던 수리검을 들었다.




'시발 미치겠네.'




"아이샤 제발! 그만둬!"


"부탁이야... 나를 두고 죽지 말아줘 미안해..."




이제는 소리를 지를 힘도 남지 않았다.

너무나 처절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야...얀붕이를 두고가? 내가? 절대 싫어!"


"얀붕아... 너 왜 그렇게 묶여 있어? 아... 내가...내가 그랬구나."


"이거... 꿈이 아니구나...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으...미...으으...으아아....으아아앙."




아이샤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상황은 벗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 '미안해미안해'를 반복했다.




"아이샤... 괜찮으니까. 일단 이거부터 풀어주지 않을래?"


"나 눈이 빠질 것 같아."




아이샤가 조금 진정된 듯 보여서 이것들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 구속구와 눈에 박혀있던 물건을 조심스럽게 해체해주었다.




"미안해... 많이 아팠지? 미안해... 정말..."




나는 얼른 하의를 챙겨입고 아이샤의 타이츠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제일 힘들었을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쓰담쓰담도 해주었다.




"이제 괜찮아..."




그렇게 그녀가 자책을 멈추기 전까지 계속 안은 상태로 머리만 쓰다듬었다.




어느 정도 아이샤가 진정이 되었고, 나는 그녀의 상처부터 다시 치료해주기로 했다.




"후... 이제 지쳤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내 24년 일생 중에 가장 끔찍하고 힘들었던 하루 같다.

아이샤의 옷을 다 입혀주고 너무 힘들어서 조금 앉아 쉬려 했는데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야...얀붕아 안돼 으흑. 나를 버리지마.버리지마.떠나가지마.흑... 미안해.미안해.미안해.가지마.가지마.가지마."


"가지마미안해잘못했어.가지마미안해잘못했어.흐흐흑...가지마미안해잘못했어. 뭐든 할 테니까.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나를 버리지 말아줘...흐흑..."




아이샤는 힘없이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진정된 거 아니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아까 지쳤다고 혼자 중얼거린 말을 오해한 듯했다.

결국, 나는 다시 아이샤를 달래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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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샤를 업고 빠르게 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이샤는 뒤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는 듯이 꽉 안고 있었다.




그리고 곰곰이 오늘의 일을 생각해봤다.

평소랑 다름없었던 하루였다.

그 마법사가 마법을 걸어준 것 빼고는 말이다.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새끼다.

그 새끼가 이 일을 벌인 거다.

평소에 여자 마법사들을 보는 시선부터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게 봤는데...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내일 황궁에 도착하면 찾아서 살아있는 채로 고문을 해주마.

손톱, 발톱을 하나하나씩 정성스레 뽑아버리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야겠다.

여유가 되면 피부 가죽을 회 치듯이 하나하나 벗겨낸 뒤 지혈하고 다시 벗겨내고 싶다.

나랑 아이샤가 받은 고통의 몇 배는 더 줄 거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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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모습도 꽤 참담했다.

내 방은 이미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일단 나는 아이샤를 침대에 눕혀두고 파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들도 똑같이 마법에 영향을 받을 즈음에 내가 매춘부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기억이 새겨졌다고 했다.

아르카는 그 즉시 나를 잡아야 한다고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단다.

내 방 문도 그녀가 부숴버렸다고.

엘리사는 신성력을 이용해 나를 찾아내려 했다고 한다.

파논이 보기에 수도에 있는 거의 모든 집을 뒤지려고 했다고...

내 기운을 찾는다나 뭐라나...




파논도 분노했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도 나를 찾아낼 순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샤에게 또 한 번 빚을 졌다.

사실 아직도 내가 있던 곳이 뭐 하는 곳인지를 모르겠다.




여차여차 내가 겪었던 일을 최대한 검열해서 대충 이해하게끔만 말해주고 아이샤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샤는 곤히 자고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이불을 다시 똑바로 잘 덮어주었다.

그렇게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침대에 기댄 채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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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고, 아이샤는 뒤척이다가 잠에서 깼다.

침대에 기대어 자는 얀붕이의 모습을 보고는 오늘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사실 오늘 얀붕이한테는 비련 본부에 갔다 온다 했지만, 어제 훈련할 때 얀붕이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마법사 년들을 죽이고 왔다.

강하다더니 생각보다 시시하게 죽어주었기에 일찍 그를 보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황궁 마법사가 그한테 마법을 거는 모습을 보았고, 그 뒤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몰래 그의 뒤를 따라가 칼의 뒤꽁무니로 그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이다.




'아아... 지금은 잘 때가 아니지.'




아이샤는 그대로 몸을 움직여 방을 빠져나갔다.




'얀붕아 조금만 기다려...'




그 마법사 놈은 아직 수도 내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빠르게 그 놈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지금 자신의 추적에서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사 놈이 숨어있는 여관을 발견했다.

아직 수도 밖으로 나가지 않아주었기에 너무 고마웠다.

나가지 못한 것인가. 상관없다.




"아주 꼭. 꼭. 숨어있었네?"




-우당탕-




"시...시발 너 누구야!"




아이샤는 몰래 그놈의 방으로 잠입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존재에 마법사는 매우 놀란 듯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온 거야?"


"너 같은 여자들은 내 마법 하나면 꼼짝 못한다는 걸 알고나 온거냐?"




"시발..."


"당연하지. 나와 얀붕이를 그렇게 만든 놈..."


"그리고 그 마법 과연 쓸 수나 있을까?"




'큭... 그 총잡이 놈을 따라다니던 암살자인가.'

'하지만 안일하군 암살자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암살자 주제에 모습을 드러낸 걸 후회하게 해주도록 하지."




"곧 뒤질 새끼가 말은 많네? 아니지 빨리 죽으면 안.돼."




마법사는 빠르게 마법을 시전해서 선제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슉-

-슥-




순식간이었다.

아이샤는 수리검으로 놈의 성대를, 검으로 놈의 팔을 노렸다.




-툭-




그는 마법을 전개하던, 자신의 잘려나간 팔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성대까지 잘려있었기 때문이다.




"끄...끄극...끅."




그는 어떻게든 도망쳐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아이샤는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머리를 지긋이 발로 밟고 있었다.

자신과 얀붕이한테 입힌 상처의 몇천 배를 갚아주기 전까지는 죽여주기도 싫었다.




"자~ 어디부터 시작할~까~?"




그렇게 그녀의 모진 고문이 시작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기에는 사람의 형체라고는 보기 힘든 덩어리만 남게 되었다.




아이샤는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피 같은 것들은 잘 닦았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

돌아오는 모습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얀붕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그녀는 침대에 기대 자는 얀붕이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의 옆에 누웠다.

침대는 원래 큰 사이즈이기에 둘이 눕기에도 충분했다.




정말 악몽 같은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는 얀붕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녀는 자고있는 그의 손을 몰래 꼭 잡은 채로 잠을 청했다.

역시나 그의 손은 따뜻했다.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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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일어나보니 나는 아이샤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언제 침대 위로 올라온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이샤는 아직 곤히 자고 있었다.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 배고파.'




어제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정신없이 잠들었으니 벌써 20시간이 넘게 공복이었다.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식당으로 가서 먹을걸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은 좀 든든하게 먹고 싶었기에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아이샤가 좋아하는 달걀 요리도 많이 만들었다.

만들다 보니 5명이 먹어도 넘칠 만큼 많이 만들어 버렸다.




슬슬 일행들을 부르러 갈까 생각하던 중에

숙소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끼익 쾅-




"얀붕아... 어디갔어... 어디야!"




-끼익 쾅-




"흐흑... 얀붕아... 진짜 가버린 건 아니겠지? 떠나버린 건 아니겠지?"

"얀붕아 미안해. 잘못했어. 제발..."




아이샤가 일어났나 보다.

옆에서 자던 내가 없어져서 불안해졌는지 온 방을 쥐잡듯이 뒤지고 있다.

그 소란에 파논과 엘리사, 아르카도 방에서 나왔다.




"아이샤. 나 여기 있어. 숙소 다 부서지겠다."




-다다다다다-




-와락-




아이샤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안겼다.

정말 이럴 때는 순수한 아이같단 말이지.




엘리사와 아르카도 나한테 와서 어제있던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엘리사도 자신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을 크게 보였지만, 아르카는 정말 면목이 없어 보였다.

나는 다 괜찮다고 해주고 밥이나 같이 먹으러 가자 했다.

뭐 나한테는 집적적으로 피해가 온 게 없으니까 말이다.

든든하게 먹고 어제 있었던 오해에 대해 황궁으로 해명하러 가야 했다.




그리고 그 자식 얼굴도 보러 가야 한다.




황궁에 도착해서 조사를 받을 때 놀라운 사실들을 들었다.

일단 그 마법사가 건 마법이 수도의 전체 사람들에게 암시를 거는 마법이었다고.

대신 그에 드는 마력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기에 딱 12시간만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12시간도 엄청 긴 시간이였다.

역시 황궁 마법사...




그리고




이미 그 마법사가 죽었다는 것.

사람의 형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잔인하게 죽어 있었다고 했다.

뭐 평소에 여기저기에서 원망을 많이 사서 용의자를 특정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증거조차 없다고 한다.

마법사는 도시를 탈출하려 했지만, 마법의 암시가 너무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는 문들이 다 봉쇄되었고,

암시가 풀리기 전까지 내가 잡히지 않았기에 도시 가장 외곽의 여관에 숨었으리라 추정한단다.




그리고 이건 별개이지만 나를 놀리던 마법사 두 명이 어제 숙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제일 최근에 만났던 사람 중 하나여서 조사를 받긴 했지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잘 설명하여 나와 아이샤는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

수사관 말로는 아마도 죽은 황궁 마법사의 짓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들은 나름대로 황궁 내에서 알아주는 마법사들이였다.

내 실력으론 턱도 없고, 내 옆에 찰싹 붙어다니는 아이샤는 당연히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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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끝난 뒤 우리는 그냥 숙소로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는 길 내내 아이샤는 말없이 팔에 붙어있었다.

웃지도 울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아이샤. 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




아이샤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의 가책이 큰 것일까.




"그러면 내 소원 한 가지만 들어줄래? 그러면 아이샤도 마음의 가책을 덜 수 있고 나도 기쁠 것 같아."




아이샤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면서 곰곰이 소원으로 뭐를 부탁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었다.

서로 마음도 확인한 차에 아이샤를 불안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싫다고 하면 하지 않을 거지만, 일단은 그걸 소원으로 말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