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ㅇ 한참 전에 올라오고 다시 찾아온 라엠인물사전임


오늘은 라엠의 (페이크)주인공의 핵심이자 제국의 심장, 혹은 천하에 용서할 수 없는 반동봉건전제주의자이자 천황폐하의 원수ㅡ원숭이좆대갈(Kocks/Korean+cocks)두목 강명황제에 대해 소개하겠음.


내가 서사를 부여한 라엠의 인물들이 그렇겠지만, 이 양반도 실존인물. 물론 원역사에서는 기록이 아주 희미한 경은군 이재성의 차남 '이우용'이라는 인물로, 황제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음. 하지만 라엠월드에서는 경은군이 헌종 다음 왕으로 즉위해서 방계황족 찌그래기에서 왕자님으로 신분이 급상승했지. 원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라엠월드에서의 강명제 이진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진은 1899년 대한제국의 제 2대 황제 '고종 광황제 이천', 원역사에서 모범황족(독립협회 후원&의병 지원 등) 경은군 이재성의 차남으로 태어났음. 1881년생 황태자 형(당연히 실존인물, 원역사 이름 이춘용, 라엠이름 택𡊾=土+宅)이 있고, 아빠인 황제는 ㅈㄴ 바쁘고 사실상 제국과 결혼한 철인이기에 많이 늦둥이인 채로 형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게 됨. 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황제로부터 진𡋤 이라는 이름과 태화太和라는 자字를 부여받았음.



최근에 다시 쓴 국민정신 읽어보면 알겠지만, 우리 강명제 이진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예술 쪽에 관심이 깊었음. 황실에서도 선비의 육예(六藝)라고 해서 나쁘게 보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고, 아들이 없는 황태자에게 혹시라도 황위계승 분쟁이 생길 수 있어서 의도적으로 계승에 배제하려고 강명제의 '취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음. 


그래서 이진은 하고싶은데로 피아노랑 그림 그리기를 마음것 하면서 지내게 됨. 엄마인 황제의 후궁 이씨가 황태자가 아들 없이 딸만 낳자 'HOXY...?' 하면서 제왕교육 시켜보려고도 하지만, 권위가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대한제국 황실, 친가족 빼고는 냉철하기 그지 없는 황태자의 성격, 결정적으로 이진 자신이 제위에 관심이 없었음. 확고한 후계자가 형인데다가, 형이랑은 사이도 좋고, 놀고 먹을 수 있는게 황족인데 왜 굳이 귀찮게 황제가 되려고 함?


그렇게 이진은 아무것도 안하고(진짜로 우리처럼 집에서 배 벅벅 긁으면서 지도보고 노는건 아님) 놀고 먹다가 애비가 1910년에 죽고, 형이 즉위하자 '성친왕(成親王)' 작위를 받게 됨. 원래라면 성친왕가가 이진의 후손으로 이어져서 세습친왕가의 시조로 남았을 것인데, 그게 안됐음. 



바로 형이 3040이 가까워지는데 아들이 없던 것이지. 


황실전범상으로 가장 가까운 혈통이자 큰 계승자인 이진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아버지 같은 형한테 찍힐까봐 이진은 바들바들 떨면서 지내게 됨. 마치 경종과 영조처럼 말임. 하지만 인성파탄이 난 숙종가문의 아들들인 경종과 영조가 아닌, 위-대한 대한제국의 황제 가문의 아들들인 융희제랑 이진의 사이는 사실 부자지간에 가까운지라 숙청이니 뭐니 하는 일은 없었음. 경솔하게 성친왕을 황태제로 임명하라고 한 미친 놈들 몇이 파직당하고 귀양가고, 심한 경우에 '자살'한 것 빼면.


아무튼 우리 이진은 황제의 중력을 지배하는 능력을 눈 앞에서 봤으니, 납작 엎드려서 혹시라도 있을 자살 '당하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음. 물론 형이 30대 후반이 됐을 때도 아들이 없자 1917년 드디어 황태제로 임명되어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음. 대신 공부의 위협 때문에 반쯤 죽게 됐음.


그렇게 공부하다가, 형이 커담+술을 땡기다가 1920년 몸져눕게 되면서 황태제 겸 대리청정을 하게 되면서 진짜 정치에 뛰어들게 됨. 만 21세의 나이로. 그래도 형이 살아있을 때는 눈치가 보이니까 자기 마음대로는 안하고, 형이 하던 그대로 하면서 이어가게 됨. 그런데 2년 뒤인 1922년에 형이 만 41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으니까 덜컥 황제가 되어버렸음. 



연호는 사서삼경 중 '삼경'의 하나 《역경易經》 『화뢰서합火雷噬嗑』 편 剛柔分,動而明,雷電合而章。(강유분 동이명 뇌전합이장 / 강함과 부드러움이 나뉘고, 움직임이 밝고, 우뢰와 번개가 합하여 빛나니) 에서 따와 강명(剛明)이 됐음.


엄마는 좋아했지만, 이진 본인은 솔직히 좀 쫄렸음. '이거 좆된거 아닌가요? 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거 어떻게 함?' 딱 이 상황. 솔직히 제왕교육 그까짓거 3년 했다지만, 만 18세 고3 수험생한테 덧셈 뺄셈 처음 가르친지 3년 된 상태인데 이걸 잘할 수 있겠음?



라엠 한국 군주계의 대상혁급인 초대 황제 이화녹스랑 이진 애비 이천이었다면 능수능란하게 펜타킬 따고 적 서렌치게 할거였는데, 우리 진붕이는 그게 안됐지. 결국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어버버대면서 뭘 하고 싶어도 못하고(관동대지진 수습 + 시베리아 출병 마무리), 맞으면서 배울 수 밖에 없었음. 강명황제의 초반기에 황권이 좀 약해졌던 이유가 짬이 딸려서 그런거지. 


그래도 한 8년정도 짬 먹으니까 나름 뭐 하고싶은거 잘 할 수 있게 됐고(브나로드 운동 + 근우회 해산 명령), 내각도 잘 하면 해산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치 짬도 찼음. 그래도 의회주의 나름 존중하고(과로사 하기 싫음) 장막 뒤에서 '예술적으로' 국민들 존경받으면서 국정을 조종하고 싶어한 강명제에게 시련이 다가오게 됨. 바로 을축대홍수+강명금융공황+대공황의 쇼크로 대한제국 경제가 박살이 나기 시작한거임. 


본격적으로 암흑의 30년대가 오자 개판이 된 대한제국 꼬라지는 강명제가 수습하기도 어렵게 되면서, 진붕이는 게임이 말리자 팀탓하고 튀는 잼민이처럼 문민정부에게 다 맡기고 자신은 나몰라라 피아노 치고, 재즈 배우고 정치는 가끔씩 돌보면서 슬슬 나라 꼴에서 손 떼기 시작함. 사실 나같아도 그럴 것 같음.


아무튼 회피기동의 군주인 원역사 천황이라면 만점을 받겠지만, 수 백년간 쌓아온 권위와 대한제국 선포 이후 '군림하며 통치하는 군주' 한국 황제로서는 빵점인 행보를 보이면서 강명제는 30년대를 보내기 시작함. 이 상황 속에서 진황도-당산전투(서만주사건) 등 험악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민주정권의 권위가 황제의 방관 아래 뭉탱이로 깎여나가게 됨. 


황제에게 대안을 요구하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 없는 권위주의 사회이니까, 대신 욕한게 정부였음. 처음에는 황제 대신으로 욕했는데, 점점 민간정부가 경제도 몬하고 잘하는게 없어서 이게 다 문민관료 때문이다~! 하면서 나라는 개판으로 굴러가게 됐음.



그러다가 터진게 1936년 빨갱이들의 황제 저격. 조선공산당 김립이 일본 쪽발이 공산주의자(로 위장한 일본유신회 쁘락치)를 이용해서 1월 17일 한성 탑골공원을 지나던 강명제의 가마에 폭탄을 던짐. 진붕이 입장에서는 다행이게도, 윤봉길이 이걸 끌어안고 자폭하면서 목숨은 건지게 됨. 근데 자기 제국은 목숨을 건지기는 커녕 돌아버리게 됨. 안중근이 쓴 '동양평화론'에 매료된 황도파 또라이들이 쿠데타 일으키고, 이걸 이강이 진압하면서 민주당 정권과 의회주의는 자폭을 하고. 


이쯤 되니까 강명제는 위기를 느끼는거임. 어? 군 애들이랑 대한당 애들이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네? 이러니까 뒤에서 황국협회와 반 이강파 대한당(이승만 등)을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음. 하지만 이 황제 수족들이 비리사건과 익문사 요원의 발각으로 펑 하고 터지니까 황제의 실제적인 권력은 이강을 대놓고 짤라버리는 초강수 빼고는 암중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음. 30년대 초반에 방관한 여파가 이렇게 돌아왔음. 


1937년 한중전쟁 발발하면서 정부는 군에게 장악됐고, 강명제는 에라 모르겠다 니들이 하고싶은데로 해라, 대신 황실 직계만 건들지 말고. 이런 마인드로 방관함.



결과는 1945년 한국 역사상 가장 핫했던 8월달로 돌아왔고, 황실은 유지는 됐지만 강명제의 '예술적인' 밀실정치는 다시는 할 수 없게 됐음. 정치적으로는 전쟁이랑 눈물의 옥음방송으로 박살이 났고, 사적으로는 우리 푸른 눈의 영의정께서는 진붕이가 가지고 있던 후궁제도까지 폐지시키면서 궁녀들을 계약직 프리랜서들로 만들어버림. 


진붕는 1948년에 대한국 헌법을 통과시키면서 대한국의 군주이자 통합의 상징인 황제가 되었고, 그 이후에는 후궁이랑 떡칠 수도 없으니까 뭐 하는거 없이 정원 꾸미거나 아들 손주들 교육하면서 지내게 됨.


찐따같이 울면서 지내던 1964년 진붕이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1964년 한성올림픽 개회사가 그거였음. 물론 주변국에서는 '저새끼 언제 뒤짐?'하면서 저주 퍼붓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황제폐하 틀딱이신데 그냥 얌전히 누워계세요~' 라는 마인드가 장착되어있어서 뭐 엄청난 영향력은 내비칠 수 없었음. 


그러다가 황태자에게 대리청정 시키고, 1967년 칭제건원 100주년이 되는 해 1월 4일에 한성부 창덕궁 흥복헌에서 아들 둘과 딸 셋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함. 


한국에서는 그래도 45년동안 재위한 황제가 죽으니 추모의 행렬이 있었고, 일본&남북중국에서는 저 씹새끼 잘뒤졌다! 하면서 축배를 들었음. 대부분 상점에서는 휴업하고 조선왕 이진의 사망을 축하합니다! 플랜카드를 걸어놓을 정도. 


이렇게 욕 쳐먹어도 한국에서는 황태자였던 장남 이휼이 황제로 즉위한 후에 이진의 묘호+존호+시호를 간지나고 좋은 것으로 올려줌. 아빠니까. 


그렇게 이진의 최종 칭호는 성조 대인현덕성리광절승온무선 경장평문효헌소열강황제(成祖 戴仁玄德盛理光節勝溫武宣 敬章平文孝獻昭烈康皇帝)로 결정되면서 이진의 저승으로의 피아노 순회공연이 막을 올리게 됨.


세 줄 요약:

이진은 권력욕이 나름 있었다.

그런데 나라 꼴 어질어질해지자 손 놓고 띵가띵가 놀았다.

손 놓아서 어버버하다가 팔다리까지 야매의사 미제의 절제수술 받았다.


== 강명시대 연표 ==

- 강명황제 즉위년/융희 12년(1922): 융희황제 이택 천붕. 황태제 이진, 연호를 강명으로 하고 즉위. 워싱턴해군군축조약 체결.


- 강명 원년(1923): 삼남소작쟁의 발발. 관동대지진으로 구주로 향하는 피난민들이 행정망을 마비시킴. 시베리아 출병이 종결, 연해주가 제국으로 편입. 고조태황제 대에 칙임관으로 제수된 백작 김영철 전 예조판서 사망. 영원군 이해연 탄생.


- 강명 2년(1924): 규슈의 구주고등학당이 구주제국대학으로 승격. 한국의 사격선수 조희창 탄생. 오세창 총리, 건강문제로 사퇴. 조민희 취임. 동양평화론 저자 안중근이 진급에 성공.


- 강명 3년(1925): 조민희 총리 사퇴. 윤치호 총리 취임. 브나로드 운동의 본격화. 조선공산당 창당. 을축년 대홍수 발발. 자작 송병준 전 농상공부대신 사망. 


- 강명 4년(1926): 대한방송협회 수립. 백작 이완용 전 총리 사망. 영화 아리랑 개봉. 행정구역 개편 및 도시 명칭 재편성(경-서울황성, 부-광역시급, 목과 군이 군으로 통합.)


- 강명 5년(1927): 심양 및 남만주에 라디오회선 전격개통. 강명금융공황 발발. 윤치호 연임 거절, 조중응 취임. 황성한성부, 역대 최저 온도 기록. 의친왕 이율 탄생.


- 강명 6년(1928): 대북제국대학 설립. 원자 이휼이 황태자에 책봉. 군 원수계급 확립. 대원수(황제)-부원수(황태자)-도원수(일반 장군). 


- 강명 7년(1929): 세계대공황. 원산 총파업 발발, 강경진압. 일본유신회, 우가키 가즈시게의 주도로 비밀리에 재수립. 고종광황제조 사헌관 송호곤 사망.


- 강명 8년(1930): 우셔봉기 발발. 강명황제가 법률 거부권 실시. 조중응 내각 조기붕괴. 이진호가 총리에 취임.


- 강명 9년(1931): 이진호 연임 성공. 브나로드 운동과 근우회, 공산주의테러집단으로 낙인찍혀 해체. 만보산 사건 발발. 


- 강명 10년(1932): 신성(신빈)에서 조선공산당 대규모 체포. 수괴 박헌영, 10년형 선고. 독립 70주년 행사 개최. 황성, 서경, 성경 3경제도 확립. 제2차 이진호 내각, 강명황제의 내각불신임으로 붕괴. 민주당 당수 김희선이 내각 구성.


- 강명 11년(1933): 황제 즉위 10주년 행진이 한성부에서 개행. 진황도-당산전투 혹은 서만주사건 발발. 주시경의 대한국문회가 대한어학회로 개편.


- 강명 12년(1934): 초현실주의 오감도 연재. 자작 권중현 전 법부대신 사망. 솔빈일본유학생살인사건의 범인이 11년만에 연일군에서 체포. 


- 강명 13년(1935): 대한당의 선거 대패로 제2차 김희선 내각 구성. 춘향전 개봉.


- 강명 14년(1936): 강명황제 암살시도. 2.26 사건. 김희선 내각 붕괴. 이동녕 거국내각 수립. 조기선거 실시, 대한당과 신한청년당 대승. 민주당 대패. 신한청년당 이강과 대한당 박중양이 연립정권 수립. 환도의 밤, 연립정권 나 대한당 세력이 박중양의 자살(암살)로 와해 및 신청당에 흡수. 일본유신의 도쿠가와 패배, 한국으로 망명. 방공협정 조인.


- 강명 15년(1937): 런던해군군축조약 탈퇴. 대동아전쟁 발발. 베이징, 난징 대학살 발발. 황국협회의 비리 및 익문사 요원의 발각으로 강명황제의 권력장악 시도가 실패로 끝남. 


- 강명 16년(1938): 장건상 담화 발표. 중화민국과 대한제국의 전쟁 격화. 조선공산당 후신 경성콤그룹, 정부에게 해산.


- 강명 17년(1939): 조소앙, 이강의 허수아비 후임으로 대한당 총리로 취임. 2차세계대전 발발.


- 강명 18년(1940): 조소앙 사퇴, 이강 취임. 삼국동맹조약 공식 조인. 구주병합조약, 구주통감부 해체 후 한국의 구주도(道) 수립. 일본유격군이 구주에서 설립.


- 강명 19년(1941): 프랑스 항복 후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진주. 미국의 한국 금수조치. 진주만 공습 발발. 태평양 전쟁 개막, 남방도련작전 실시. 한일전쟁 발발, 일본군 유격전 개시. 홍콩 함락. 교토공방전 시작.


- 강명 20년(1942): 필리핀 공화국의 수도 마닐라가 한국군에게 함락. 싱가포르 함락. 미드웨이 해전, 한국군 억제. 과달카날 전역 시작. 대한어학회에 윤동주 가입. 교토공방전, 일본군의 승리로 종결.


- 강명 21년(1943): 과달카날 전역 종결. 제3차 이강내각 출범. '해군특별지원병령' 제정. 도호쿠 전역 참호전 개시. 미국아시아원정군 일본 본토 입성.


- 강명 22년(1944): 교토공방전 완전종결. 히로시마까지 한국군 후퇴. 사이판 함락, 이승만 전 외무대신, 현 주미한인협의회장이 미 정부와 접촉. 레이태만 해전 발발. 안평-의주 지진 발생.


- 강명 23년(1945): 한성 대공습. 황도 함락, 대만 함락. 유구왕국(류큐) 항복, 쇼 왕가, 간신히 한국으로 피신. 일본의 "진무작전" 개시, 히로시마 탈환. 무타구치 장군, 일본제국 본군과 합류 성공. 유럽전선 종결. 의주, 군산 핵폭격. 만주-연해주-몽골작전 개시. 이강 자살. 한국 항복. 2차세계대전 종전. 이시영 총리 취임.


- 강명 24년(1946): 대한제국 황실 궁가, 직계&익평궁 제외 전부 폐지. 만주 등 식민지 행정구역, 대한제국에서 분리. 쇼와천황, 일본통일 선언. 규슈•홋카이도재건위원회 수립.


- 강명 25년(1947): 만주공동위원회 수립. 중국 내 불안 가속화, 북만주로의 이민행렬. 이시영 총리 사퇴, 청풍군 이해승 총리임명.


- 강명 26년(1948): 대한국헌법 제정. 강명황제, 권력 완전 소실. 한국의 A급 전범들 교수형. 이승만, 대한당 총리로 임명.


- 강명 27년(1949): 국민당 유격대의 북중국 침투 성공. 옌시산, 북중국 내에서 권력 공고화. 만주의 한•중 분리 제의가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 옌시산, 농지개혁 발표. 


- 강명 28년(1950): 에치슨라인 발표. 4월, 중국 내전 발발. 만주건국위원회 출범. 7월, 옌시산이 공식적으로 UN에 구제요청. 북중국 공군의 폭격으로 남중국 쑨리런 급사. 한국에 공장 재가동 시작.


- 강명 29년(1951): 티베트, 독립선포. 한미안전보장조약 체결. 북중국군, 국민당의 허점을 파고들어 대대적인 반격 실시. 대한당과 신민당 합당. 안창호 사망. 이승만 총리 사임. 이위종 총리 취임. 만주민국 건국.


- 강명 30년(1952): 경무예비대, 전투경찰로 재편.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대한국 국권 회복. 미군정 종식. 일본의 강력한 주장 하에 공식적으로 전세계 외교문서에 "대일본제국(大日本帝国, Empire of Japan)"과 "천황(天皇, Emperor)"칭호 사용 시작. 이승만 총리가 정식으로 취임.


- 강명 31년(1953): 중국내전이 현 국경으로 휴전에 돌입. 옌시산, 군벌 숙청 성공. 


- 강명 32년(1954): 이승만-고노에 회담. KBS, 한국 최초로 TV방송 시작. 한성에서 2차 한일회담 발생. 황적박탈된 황족 중 일부가 광화문에서 시위.


- 강명 33년(1955): 조선공산당이 당명을 대한공산당으로 교체. 제주도 반환. 미일상호방위조약 체결. 조만식이 여운형의 지원으로 사회당 창설. 전국적인 약진.


- 강명 34년(1956): 이승만 연임. 대한당, 민주당과의 합당. 강명황제 암살예고 사건 발생, 실패. 노태우, 수영 동메달을 기적적으로 획득.


- 강명 35년(1957): 김창숙, 상주군에 서원 건립. 조봉암이 대한민주당에 입당. 


- 강명 36년(1958): 한일문화재반환조약 체결. 황실 비고가 개방되다. 황태자 이휼, 대리청정 시작. 


- 강명 37년(1959): 규슈 조광조 서원, 히로히토의 지시로 파괴. 류큐 쇼씨 왕가, 나하로의 입국이 막힌 채 한국 국적 취득. 


- 강명 38년(1960): 이승만 퇴임. 김병로 법무대신 취임. 행정기관 명칭 대개편. 


- 강명 39년(1961): 한글 로마자 표기법 개정. 


- 강명 40년(1962): 김병로 사퇴, 김규식 취임. 한국적십자사에 일본인이 테러. 위안부 피해자, 히로히토에게 전상서 작성. 히로히토 격분. 


- 강명 41년(1963): 부산부가 남경으로 승격. 3경제도의 부활. 로보트 태권V 방영 시작. 


- 강명 42년(1964): 황태손 이헌 출생. 한성부 확장계획 실행. 한성올림픽 개최. 김규식 퇴임, 허헌 취임.


- 강명 43년(1965): 이강의 장남 이건, 동아일보 인터뷰에 응함. 극우파에게 암살기도. 


- 강명 44년(1966): RSB 개국. 한성대학 전대협 투쟁 발발. 한일 양국이 대사관 설치에 동의함. 만주민국 김필순 전 대통령 사망.


- 강명 45년(1967): 1월 4일 강명제 사망. 황태자 이휼, 연호을 헌문으로 개원하고 즉위. 한일수교조약이 체결, 한국이 일본에 피해보상금의 형태로 달러 증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