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어?"


 친구들과 오랜만에 한바탕 즐겁게 놀았다. 술기운인지, 아니면 피시방에서 스쿼드로 치킨을 많이 먹어서인지 모르겠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기분이었다.


 세상의 색채가 어두워졌기에 집에 돌아가려고 길거리로 나왔다. 고향같은 느낌, 익숙한 길거리에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리 걸어도 버스 정류장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어두워진 거 아니야? 슬슬 힘드네. 버스 정류장은 어디야?"


 한참을 걸은 것 같다. 온몸에 엄청난 압력이 느껴지는 거 같이 힘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택시 불렀으니까 가자."


 택시라는 말에 묘하게 편안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주위 풍경이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모순적인 이 느낌은 불쾌감마저 들었다.


 택시를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데, 친구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 택시 불렀다면서 어디가?"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은 아파트를 지나 수풀진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그들을 놓치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따라갔다


'어디로 간 거야?'


 직각으로 꺾인 길을 돌았더니 어느새 내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일직선으로 곧게 나있었기에 그들은 이 곳으로 갔을 것이라 생각해 나아갔다.


 얼마나 걸은 것일까. 시간 개념을 잊을 정도로 걸은 것 같다. 곧은 길만 걷다 처음으로 경사진 곳에 이르게 되었다.


 멀리서 허름해 보이고 거의 다 부숴져가는 빌라가 보였다. 나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빌라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고 있었다. 사람을 한동안 보지 못했던 내게 그 빌라는 종착지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침 지켜보고 있던 건물에 오른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하얀 형체라 사람인 줄 몰랐지만, 곧바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의 뒷모습은 굉장히 익숙했다. 분홍색 포니테일 머리, 하얀색 롱 코트, 그리고 흐릿하게 보이는 대검의 형상. 나는 속으로 소리치듯 생각했다.


'츠키시로 모나카잖아...'


 그녀를 육성으로 부르지는 못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 굳어버렸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제만 여기까지가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계단을 오르던 츠키시로가 뒤돌아보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츠키시로는 오르던 계단을 반대로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따라오라는 듯 제스처를 취해 나는 얌전히 츠키시로를 따라갔다.


"여긴 어쩐 일이야.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왔어?"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올라간 것 같다. 츠키시로와 한참 잡담을 하며 올라갔을까. 츠키시로는 갑자기 뒤로 돌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해. 너와 만난지도 오래 됐고, 네가 굉장히 익숙하지만, 네가 아닌 것 같아. 네 목소리가 원래 이랬었나?"


 츠키시로를 따라 허름한 건물 안의 한 방에 들어섰다. 츠키시로는 기둥에 기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넌 누구지?"


 이 말을 듣자마자 세상은 멈춘 것 같았다. 츠키시로가 서 있던 곳 왼쪽 책상 아래의 컴퓨터 본체 같이 생긴 물체에서 초록색의 세줄기 빛이 흘러나오더니 나를 비추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 나는 너무 외로웠어. 너를 찾아 여러 세계를 돌아다녔지."


"다른 세계에서는 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세계에는 네가 없었다. 난 네가 필요했어. 이 세계에선 네가 아니라 카야모리 루카 그녀가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었으니까."


"난 어느 세계든 네가 주인공이었으면 했어. □□□□."


 무슨 말인지 도저히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게 맞는지도 가늠이 안갔다.


"그렇다고 해서 츠키시로를 네 꼭두각시로 만들고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옳지 않아."


 그런데 나는 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정체모를 목소리에 대답하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구나.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데."


 세 줄기의 빛은 나를 비추다, 츠키시로의 이마를 향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츠키시로!"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몸은 자연스레 츠키시로에게 손을 뻗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지키려는 듯.


"넌 결국 여기 사람이 못되는구나."


 눈 앞에 하얀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섬광을 맞은 것 같았다. 눈 앞을 가로막던 빛은 사라지고 점차 주위의 물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던 방이 굉장히 깨끗해졌다는 걸 그 자리의 나는 느꼈을까,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한 느낌을 주었던 컴퓨터 본체와 츠키시로 모나카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츠키시로를 찾으려 했으리라. 욕실의 욕조 커튼 뒤, 베란다, 장롱, 그리고 그 이상한 빛을 내뿜던 컴퓨터 본체 같이 생긴 것이 있던 그 자리까지 샅샅이 뒤졌다.


"츠키시로.."


 그녀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몸을 휘감았다. 세 번 정도 집을 수색하고 난 후였을까.


 이 방을 들어오고 나서 닫혀있었던 밖과 통하는 문은 어느 새 열려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모든 걸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 문에 홀리듯 다가갔다. 밖은 해가 중천인듯 굉장히 밝았고 어딘지 모르겠는 도시의 전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선풍기 소리와 매미 소리, 그리고 손을 뻗으니 내 스마트폰이 어디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옆에서는 스토리가 훌륭해 재밌게 보았던 귀신를 퇴치하는 드라마의 대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잠을 자다 일어나 머리가 아팠지만 습관처럼 헤븐 번즈 레드 채널에 들어온 신고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평소였다면 분명 일상 속으로 돌아왔을텐데 오늘 따라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짐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방금 잠깐 잠들었는데 츠키시로 모나카랑 만나는 꿈꿨음.."

https://arca.live/b/heavenburnsred/83647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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