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화는 각 도시마다 내용이 다르고 창세신화도 다른데 흔히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에피소드는 호루스랑 세트가 지배자가 되겠다고 아웅다웅하는 부분이다.


근데 이 에피소드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호루스랑 세트가 막상막하라 10년간 해결이 안되니 신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앓았는데, 목축의 신인 바가 지혜의 여신인 네이트에게 조언을 구하자고 의견을 냈고 신들은 동의했다.


<지혜의 여신이자 사이스(Sais)의 수호신으로 숭배받았던 네이트.>


요청을 받은 네이트는 오시리스의 친아들인 호루스가 장성했으니 그에게 왕좌가 돌아가는 게 합당하다고 했고, 대신 세트가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니 많은 재물과 라의 두 딸인 아나트와 아스타르테(이 둘은 이집트 인근 가나안에서 숭배하던 여신이었지만 이집트에서도 숭배되었다)를 시집보내면 상심할 세트를 달랠 것이니 충분할 거라고 했다.


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조언에 찬성했지만, 오시리스 일가를 싫어하던 라는 자기 딸을 둘이나 시집보내야 한다는 거에 기분이 나빠서 파토를 내버렸다. 그러자 열이 잔뜩 받은 신들이 라에게 막말을 쏟아냈는데, '야이 10년간 해결을 못했는데 이걸 깽판치냐 잡놈아.', '네가 신왕이면 신왕이지, 같은 신들 존나 꼽주네.' 등등. 그 중에서 라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린 게 있었다.


'팍 그냥 네 사원 텅텅 비어버려라.'


이게 라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린 이유는 이집트 신들이 자신의 권능을 유지하려면 인간에게 공물을 받고 그 이름이 계속 불려져야 하기 때문. 즉, 사원 텅텅 비라는 악담은 '너 이 새끼 아무도 안 찾는 퇴물잡신이나 되라.'는 뜻이라 그렇다.


신의 권능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물을 바치고 숭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외로 인간적인 부분이고, 현실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숭배받지 않는 신은 결국엔 잊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