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https://arca.live/b/histor25385328036y/100094741


삼국지-영웅들의 시대


48) 서로 찻잔을 비우며


그 자부심이 강하던 주유가 스스로 대도독을 내려놓겠다는 무슨 바를 뜻했는지 노숙도 잘 알았다.


"공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농담을 해도 정도가 있지, 근은 우리의 영원한 대도독이고, 영원한 전우요!"


그럼에도 주유는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했다.


"아니요. 강동을 지탱하고,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것은 언제나 생각해보면 자경이였소.


조조에게 꿇리지 않을만은 패기, 관우마저 감동시킬 수 있는 의, 유비와 맞먹는 인복, 그리고 제갈량마저 감탄시킬 수 있는 지혜까지..


이 모든것을 갖춘것은 역시나 당신뿐이오."


주유가 어떤 각오로 이런 말을 했는지, 노숙도 더 이상 외면하기는 불 가능했다.


"...공근.."


주유의 뜨거운 눈물이 이슬처럼 떨어지고, 입술과 손은 갈수록 떨려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틀렸소...난... 더 이상 강동을 지킬 수 없소..."


노숙은 당장 엎드려 병상의 주유에게 큰절을 올리며 외쳤다.


"신 부도독 노숙! 대도독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편 주유의 제안을 그만이 생각하고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주유를 이을 대도독으로 노숙이 되야만 한다는것은 육손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유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것은 나도 의원의 말을 들어 알고 있네.


이미 수년전부터 마음속에 은밀히 숨겨놓은 불안감들이 마음을 옥죄 어 결국 터트릴일을 터트렸다고 하더군, 하루아침에 생긴 병도 아니니 정말 안타깝네.


하지만 대도독을 교체해야한다는건 그렇다쳐도 왜 하필 노숙이지?"


손권의 질문에 육손은 바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합당하신 지적입니다, 주공. 부도독의 존재감은 강동의 장수들 중에서 따라올 자가 없고, 능력 또한 그에 걸맞게 출중합니다.


허나, 그것만 놓고본다면 여몽 장군도 마찬가지겠죠."


"잘 아는군! 게다가, 여몽이 주유를 이어 대도독이 된다면 5년 안에 형남 4군을 탈환할 수 있을정도일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여몽같은 장수라네, 아주 뜨거운 불같은 장수!"


그러나 육손은 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말 그럴까요?"


"뭐라?"


육손은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불층한 말을 할것임을 자신도 알았지 만 충언을 하는데 있어선 몸을 사리지 않았다.


"지금 불같은 성정의 여몽 장군이 대도독이 된다면, 일이 커질것입니다. 저희 강동은 지금 세 방향에서 적과 싸우고 있죠.


하나는 합비, 하나는 형주, 마지막 하나는 강동 안입니다."


손권은 침묵하며 육손의 말을 별 다른 반응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강동 안은 여러 호족들, 합비는 장료와 장제, 형주는 양양의 조인과 하후돈, 그리고 강릉의 유비가 있습니다.


소장이 여몽 장군에게 걱정되는 바는 그 불같은 성정 때문에 정말로 형주를 공격하려 시도하는것입니다. 아군의 세력은 현재 유비와 조조만 못한데, 만약 세 방향 모두 전쟁이 터진다면 어찌할까요?


과연 유비를 상대하며, 기회를 틈타 남하할 조인까지 신경쓸 수 있을까요?"


손권은 눈을 감으며 매우 골치아파했다.


"또 조조란 말이냐! 조조 때문에 뭘 할 수 있다는거냐!"


"형주를 온전히, 조인마저도 물리치고 차지할 수 있는 때는 합비와 지역의 호족들의 경계가 충분히 풀릴 때입니다.


이 두쪽에서 소식이 모두 조용하다면 그땐 형주를 노려볼만합니다. 단,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여몽 장군이 주 대도독에 대한 감정 때문에 이 사실을 망각한다는것이 소장은 걱정되는것입니다."


"하.."


다음 날의 동이 틀때, 주유는 무리하면서라도 노숙의 부축을 받으며 곧 이도에서 올 여몽을 마중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스승님! 스승님!!!"


"자명...!"


막 배에서 내린 그가 어린 아이처럼 달려나가자, 주유는 힘겹게 두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저 여몽이 왔습니다, 제가 왔다고요!!"


이젠 눈물 범벅이 다 된 그를 토닥여줬다.


"안다, 알아 이놈아..허허..."


여몽에게도 노숙이 주유의 후임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그도 마찬가지로 반발부터 했다.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스승님께서 살아계신데 어째서 대도독의 자릴 다른 이에게 넘겨주시려는 겁니까!'


주유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또 듬직한 그의 두 어깨를 잡아주며 말 다.


"여몽아... 언젠간, 언젠간 해야만 할 일이였단다... 그저 조금 더 빨리 이루어졌을뿐이야... 대도독이 자경이라면, 부도독은 어김없이 너다.


이제부터 네가 자경이 했던 일을 이어받아야해. 네가 이제부터 스승으 로 모셔야할 자는...자경이다."


"스승님!!! 말도 안됩니다! 스승님!!!!"


하지만 그도 얼마못가 주유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스승과의 이별도 각오하게 됐다.


"그러고보니 육손은?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간것이지?"


"주공께 간언할게 있다고 하더군, 무엇을 간언하려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주유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을 내렸다.


"아마 주공께 자넬 대도독으로 임명해달라는 청이겠지. 분명하네, 냉정하지만 항상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육손이라면 반드시 그럴걸세."


다시 오로 돌아갈 생각이 들자, 주유는 한가지 생각이 들어 노숙에게 청했다.


"노자경, 내 친구여. 마지막 부탁을 하겠네, 들어줄 수 있겠는가?"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을 아내로 맞아들인 유비는 생각보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나 무예가 손씨의 딸인만큼 검술이 출중했기에 둘 사이의 대련은 거의 늘상 있는 일이였다.


오늘도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유봉이 같이 서 있는 장포에게 물어봤다.


"벌써 몇합째시지?"


"정확히 이제 30합입니다 형님."

-장비의 아들 장포-


손상향이 아무리 여자라도 젊은 여걸이였는데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유비는 그녀를 상대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부인, 내 천하를 누비다 보니 이런저런 여자도 다 만나게 됐지만 부인 같은 여중호걸은 처음이구려!"


"이걸 받고도 웃음이 나오나 보자구요!" 

-손상향-


손권의 여동생이자 유비의 현 아내 손상향마저 결투가 계속될때 미방이 중간에 난입하려하자 유봉과 장포의 저지를 받는다.


"미방님, 어쩌신일입니까?"


"유봉, 긴히 주공에게 전해드려야할 소식이네. 강동의 주유가 강릉성으로 오려고 하네!"


이야길 들은 2명은 미방과 같이 움직여 이 소식을 유비에게 전했다.


"미방, 강동의 병력은 어느정도이지? 왜 아무런 통보도 없이 찾아왔단 말이냐!"


"주공, 안심하십쇼. 긴박한 사안이긴하나 위험하진 않습니다. 주유는 고작 일백만을 데려온듯하니 아무래도, 교섭을 위한 호위병인것 같습 니다!"


아무리 주유라도 고작 일백으로 강릉성을 공략할 순 없었기에 유비는 한숨 놓았다.


"...그건 다행이구나. 적어도 우리와는 당장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공명을 불러봐라!"


"군사께서 절 주공께 보내셨습니다, 군사도 정예병 일백과 조운 장군을 대동하여 급히 주유를 만나러 갔습니다!"


제갈량이 미리 선수를 쳤다니 유비로서도 안심이였지만 그렇다고 주유를 가만히 놔둘 수도 없었다.


"미방, 운장과 익덕을 불러라. 유봉은 기병 5백기를 뽑아 출전 준비를 마치게 하고 장포는 황충과 마량에게 성을 지키라 전해라!"


한편 먼저 나가 병든 주유를 다시 직접 맞이한 제갈량은 적벽때와는 너무 다르게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주 도독.."


"공명 선생! 적벽 이후로 오랜만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쇠락에 제갈량은 아무말도 없이 말에서 내렸다.


"군사! 위험합니다!"


조운이 말리려 했으나 그는 듣지도 않았다. "자룡 장군, 공근은 절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한번 마지막으로 얼굴이 나 보고 싶어 온거겠죠."


그렇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강동군, 그리고 주유 앞으로 갔다.


그곳에선 익숙한 얼굴이였던 노숙과 여몽도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인형마냥 가만히 있기만 했다.


주유도 마찬가지로 말에서 조심스레 내리고 공명에게 다가갔다.


"몸도 좋지 않으신것 같은 분이, 어쩌자고 저같은 범부를 만나려 오셨습니까?"


"...우리 공명 선생에겐 전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서 그랬소. 여봐라! 어서 자리를 마련하고, 선생에게 좋은 차나 한잔 타드려라!"


순식간에 마련된 회포에 제갈량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을 받게 되었다.


"대도독, 저에 대한 미련이 있으신거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십쇼. 남은 여생은 가족들과 보내는것이..."


"가족들에겐, 사랑하다, 미안하다, 잘있어라. 같은 말들을 충분히 남기고 왔소, 그대와는... 정말로 할 얘기가 적지 않지."


"저를 원망하시는 않으십니까?"


주유는 담백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조금 끄떡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강릉과 이름을 뺏은 선생을 증오했소, 하지만 동시에 내게 중요한 가르침을 줬단걸 깨달았지...


첫째는 내가 정녕 바랬던것은, 명예도 부도 다른 무엇도 아닌 나와의 같은 눈높이에 있어줄 지기와 그의 마음을 원했던것이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내가 정녕 원했던 것이지."


제갈량과 주유의 첫잔이 서로 비어졌다.


제갈량한텐 이것이 무슨 맛이라 표현하기엔 무어라 특이한 향이였지만 그딴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둘째는... 세상일은 나 혼자 다 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내게 새겨줬소, 내가 아둔했기에 이제서야 그걸 깨달았지만, 덕분에 여한없이 웃으면서 떠날 수 있겠소.


고맙소 제갈선생, 곧 죽을 몸뚱이에게 후회라는걸 남기지 해주지 않으니 말이요."


똑같이 눈물을 흘리던 제갈량도 말했다.


"...만약, 어쩌면...정말로 어쩌면 우린 어쩌면 좋은 지기가 될 수도 있었겠죠.."


두번째로 잔이 차로 채워진다.


"그래도! 마지막이라도, 함께 차를 마십시다! 웃으면서, 모든 근심과 걱 정을 내려놓으면서 마십시다!


모두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두 사람은 같은 날 태어나진 않았지만 같은 날 차를 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주유가 세번째 잔을 채우려 하자 제갈량이 그의 창백해진 손을 붙잡고 말했다.


"이 마지막 잔은... 저승에서 다시 만날때 채웁시다.."


"..좋소! 과연 공명이 날 따라올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입으며 어디에 있고 무얼 했는지 내게 꼭 알려주시오!


드넓은 하늘을 향해 헤엄치는 와룡이 어떻게 됐는지, 이 주공근과 비 견되던 천재가 어찌되었는지! 저승에서 마지막 찻잔을 비우며 알아봅시다!"


이후 주유는 말없이 만족스러운 표정만을 짓고 눈을 감더니 고개를 비틀거리며 나지막이 말을 남겼다.


"하늘은...왜... 공명에게 시간을 주고도... 내게...시간을 주지 않았을까...."


그나마 있던 주유의 미동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여태까지 억지로 쥐 죽은듯이 있던 강동의 병사들과 노숙 그리고 여몽까지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대도독!!!"

"공근!!" 

"스승님!!"


제갈량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찻잔 하나를 소매로 넣고, 곡소리 나던 진영에서 일어섰다.


"공근...편히 쉬시오..짧은 순간이였지만.... 마음속에는 피눈물이 나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