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직후 독일로 찾아간 미국의 한 교수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나치당원 3명에게 각각 설명해주었습니다.


근데 이들의 반응은 예상외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였죠.


직접 들어봅시다.



"그런 발상은 독일인의 발상이 아니에요. 그건 지금 시민이 곧 지배자라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이 나라에는 수백만명의 시민이 있으므로 결국 무정부 상태가 초래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지배라곤 있을 수 없을 거예요. 



국가에는 한 명의 수반이 필요한 거예요. 100만 명, 또는 5,000만 명, 또는 1억 명의 수반까지는 아니라구요. 만약 당신이 말한 '주권자 시민' 가운데 한 명이 어떤 법률을 싫어한다고 치면, 당신은 그 사람이 그 법률을 위반하도록 허락할 건가요? 



그렇지 않다고 치면 당신이 말한 '주권자 시민'은 단지 신화에 불과할 뿐이고, 당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진짜 지배자에 의해 지배될 뿐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이론은 그렇다는 걸 시인하지 않는 거죠."


-은행원 요한 케슬러

"우리는 미국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단지 지금에 와서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중에는 친척이 거기로 이민 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죠.



 오늘날의 독일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군주제 아니면 무정부상태다(Monarchie oder Anarchie). 둘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정부 상태'는 곧 폭도의 지배란 말이죠. 



우리는 당신네 미국의 도시를 갱단이 지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갱단과 공모하는 부정직한 정치인들이 있어서 국민의 돈을 착복하는 대신에, 국민에게는 허술한 서비스며 상태 나쁜 도로나 제공하고, 상태 좋은 도로나 상태 좋은 하수도를 제공할 때는 항상 요금을 부과한다는 이야기였죠. 



이곳 독일에 사는 우리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황제 시절에도 그랬고, 히틀러 시절에도 그랬죠. 당신네 현실이야말로 '무정부 상태'의 일종입니다. 어쩌면 폭도의 지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뭔가이겠지요."


-경찰관 빌리 호프마이스터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오로지 한 가지 종류의 독재정치만 있다고, 즉 우리가 이곳에서 겪은 종류만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네도 어쩌면 당신네 국민 중에서도 최고의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 의해서, 또는 다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독재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당신네 미국에 있는 법률, 그러니까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은 어떻습니까? 그것도 다수의 독재가 아니었나요?"


-수금원 한스 지몬(그는 미국 금주법이 폐지된 사실을 몰랐음)



이걸 정리한 교수, 밀턴 마이어 본인은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미국이나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도 이걸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대통령에 대입해서 의견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치 독일과 같은 독재국가에선 "당신이 총통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불가능하다고요.


국가 차원에서 탄압하는 게 아닌, 국민들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즉, 자신이 국가 수반의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말도 안 되는 공상, 헛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거죠.

바이마르 공화국의 투표용지


물론 짧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이 있긴 했지만, 그 때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워낙 정치가 혼란해서 국민들의 투표로 이뤄진 확고한 민주정권이 아닌, 불안한 연정과 대통령 비상대권으로 이뤄진 불안한 정권만 있었을 뿐입니다.


당장 바이마르의 두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모두 사실상 옛 독일 제국의 유산을 떠안을 사람으로 '선택' 된 거지, 진정한 민주주의의 대표자라고 하긴 힘든 점이 많았죠.



이렇게 기껏 시도해 본 민주주의가 혼란과 파행으로 끝나자 독일 국민들은 이걸 체험해 볼 생각도 없이 다시 나치에게 권력을 몰아줬고, 그 결과가 '수권법' 과 나치 독일입니다.


그러기에 저렇게 민주주의를 이해 못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난장판이었을 뿐이니깐요.


이는 앞서 말한 수금원 지몬 씨의 이 발언으로 요약됩니다.


우리에게는 '강철의 손(강력한 지배)'이 필요합니다. 우리 독일인은 원래 그렇습니다.



출처: 밀턴 마이어 지음, 박중서 옮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갈라파고스, 2014.



블로그 출처: 무수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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