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턴 박물관의 티거 131호차. 기동 가능한 유일한 티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운용한 중전차, 6호 전차 티거. 강력한 스펙과 베테랑 전차병들의 시너지로 많은 무용담을 남긴 전차다. 티거는 그 활약상과 더불어 많은 에이스들을 배출했는데 여러 에이스 중 단연 1위를 꼽자면 이번 글에서 다룰 쿠르트 크니스펠 기갑상사다.



쿠르트 크니스펠(1921~1945). 컬러로 복원된 사진이다.


크니스펠 상사는 공식 168기, 비공식 196기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티거 에이스다. 그는 탄약수, 포수, 전차장 보직을 모두 거치며 전차 에이스로서의 자질을 드러냈고 무려 3km 밖에서 소련의 T-34를 격파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인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괴물 같은 기록을 보유했음에도 그는 격파 기록에 별 관심이 없었고 다른 전차병들과 공적 다툼이 벌어질 때면 기꺼이 한 발 물러서 공적을 양보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양보를 하면서도 격파 수 1위를 달성한 것. 동료들이 불만을 표할 때는 웃으면서 동료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또 하나 크니스펠 상사가 대단한 점은 그가 잔혹한 동부전선에서 싸웠음에도 어떤 전쟁범죄에도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독일군으로서 전쟁에 뛰어든 인물이었고 공산주의를 싫어했으나 당시 독일의 인종주의와 나치즘도 싫어했다. 한 번은 소련군 포로를 학대하려던 아인자츠그루펜에 맞서 포로를 보호하고 해당 부대의 장교를 폭행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아인자츠그루펜은 '인간 쓰레기'라는 말도 아까운 미치광이 집단이었으나 일부 고위층의 비호와 당시 독일에 만연한 인종주의 등으로 인해 존속하던 부대였는데 그런 부대의 장교를 적군 포로를 보호하고자 폭행한 것이다.


이런 일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고 이 때문에 그는 뛰어난 전공과 엄청난 실력에도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에 잘 동원되지 않았으며 진급도 매우 더뎠다. 그나마 뛰어난 실력과 전공 덕분에 계속 일선에 있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뛰어난 전차 에이스였던 그도 독일의 패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44~1945년, 독일의 패망은 가시화되었고 독일군은 패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크니스펠 상사는 독일 본토를 향해 쇄도하는 소련군에 맞서 전선을 지켰으나 1945년 4월의 어느 날, 그의 운도 다하고 말았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중상을 입은 크니스펠 상사는 야전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으나 1945년 4월 28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23세. 그리고 그가 죽고 불과 10일 후, 소련군은 베를린에 깃발을 꽂았고 나치 독일은 패망을 맞이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2013년 4월 19일, 체코 정부에 의해 브루보베츠의 어느 교회 인근에서 15구의 독일군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의 유해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인식표를 통해 그의 신원을 확인했고 그렇게 크니스펠 상사는 브르노의 군인 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크니스펠 상사의 인식표


크니스펠 상사는 오토 카리우스, 미하엘 비트만 등 다른 전차 에이스들에 비하면 유명세가 조금 약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에 잘 동원되지 않았으며 격파 수와 별개로 다른 에이스들이 보유한 활극과도 같은 전투 기록이 별로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광폭함으로 점철된 독소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성과 명예를 잃지 않았으며, 공적을 다른 전우들에게 양보하기도 하고 옆의 동료들을 다독일줄 아는 인물이었다. 혹자는 전쟁터에서 그런 덕목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쳐 돌아가는 전쟁터이기에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나 행위, 명예 등의 이상적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1944년, 티거 2를 수령하는 503 중전차 대대와 크니스펠 상사(맨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