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해골로

뒹구리라 마음에 찬 바람

살 에이는 몸이로다

- 1684년, 여행을 떠나며 -


죽지도 않은 

나그네 길의 끝이여

가을 저물녘


말 위에서 잠 깨보니

꿈결인 듯 먼 달 아래

차 끓는 연기런가


겨울날 햇빛

말 위에 얼어 있네

나의 그림자


산길 넘어가다가

무엇일까 그윽하다

작은 제비꽃


한 해 저무네

머리에는 삿갓 쓰고

짚신 신은 채


잔나비 울음 듣는 이

버려진 아이에게

가을 바람 부네


달구경 하는 사람들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로다


봄이 가고 있다

새들은 울고

물고기 눈엔 눈물이


여름에 입던 내 옷

그속에 아직 다 못 잡은

이가 있다


새벽 핀 꽃들

나는 내가 볼 예정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네


장맛비 내리자

물가에 서 있는

물새 다리가 짧아지네


초가을 비가 내리네

내 이름은

'방랑자'


방랑에 병이 드니

꿈은 온통 마른 들판을

헤매고 다니네

-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