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모른다. 나로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늘 불쾌하다. 열심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연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렇게 말해야 한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본 뒤에 자기의 무지를 한탄하면서 그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학자들의 거역할 수 없는 의무가 되는 그런 순간도 있다."

마르크 블로크 저, 역사를 위한 변명, 한길사, 91 p.


아날학파 1세대 학자, 마르크 블로크


 대학교 2학년 때에 나는 서양중세사 교수님께서 언급한 마르크 블로크란 학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르크 블로크는 서양 중세사 학자로, 세계 1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군인이기도 하다. 역사연구학파인 아날 학파의 창시자로서 박사학위 논문인 "왕과 농노"를 비롯, "기적을 행하는 왕", "봉건사회" 등 서양중세사에 있어 중요한 여러 저서를 왕성하게 저작했다. 

 이런 마르크 블로크가 특별한 이유는 세계 제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도 현실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 사명감을 가지고 미래세대에 남길 역사서들을 남기고, 자신의 공화주의적 신념을 위해 싸웠다는 거에 있다. 

 위의 명언이 나온 책의 경우 마르크 블로크가 한창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중에 저술하였으며, 서문에서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다.' 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학자로서의 의견을 표현하는 걸 그치지 않은 용기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겐 저 말이 상당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과 대외적인 전쟁, 코로나와 원숭이 두창이라는 역병이 퍼지고 있는 위기가 혼재된 현실 속에서 호기심을 가진 학자 및 연구자들이 임해야 할 자세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글에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에 관한 것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모른다 라고 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야말로 정말 가슴이 시리고 다시금 격려해준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르크 블로크는 1944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프랑스 리옹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그가 남긴 최후의 말은 '자유 프랑스 만세!'. 그의 이 말은 공화주의적 신념이 함축되면서도 간결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명언과 그 속에 담겨진 정신은 진정 죽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본인과 저 명언을 마음에 새긴 독자들의 마음에 '영원하며 회귀토록'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라는 퍼즐을 완전히 맞출 순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퍼즐 조각이 잠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좋다.


왜냐하면 우린 그 퍼즐들을 앞으로 여러번 마주할 기회가 있고,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 유한함 속에 무한함이 있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