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하의 인구는 최소 300만에서 최대 500만으로 추정됨. 그러나 서하는 존속기간 내내 수십 배 이상 거대한 중원 왕조들과 적대해야 했고, 이는 서하가 기형적인 군사사회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음. 실제로 사료상 확인되는 서하의 영끌 병력은 약 50만으로 생산 가능 인구의 과반을 차지했고, 실제로 전선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그보다더 적은 10만~20만 언저리였음.


2.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는 인구가 수천만에서 1억에 이르는 송, 요, 금을 대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었음. 군대로 끌고 갈 청장년기 남자는 더이상 없고, 그렇다고 늙은이나 어린아이를 징병할 수 없으니 서하가 여군으로 시선을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3. 단, 여기에는 서하가 원래부터 여권이 강한 사회였다는 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전통적으로 궁중 정치에는 여성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민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했음. 또한 혼례 시에는 남자가 돈을 대고, 여성의 형량은 남성의 절반을 적용받음. 그밖에도 서하 여성이 무예에 능했다는 기록 또한 많은데, 이는 본디 반농반목이었던 탕구트족의 문화 기풍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임.


4. 어쨌건 이렇게 서하는 여군부대를 정규편제로 신설함. 인종대 편찬된 「천성율령(天盛律令)」에 "군사(軍士), 정군(正軍), 보주(輔主), 새부(寨婦)로 하여금 큰 성을 지키게 한다……" 라는 조문이 있는데, 마지막의 새부는 성내에 거주하는 부녀자를 의미함. 이렇게 편제된 여군은 보통 태후의 통제를 받았음.


5. 서하의 여군은 제목처럼 마괴(麻魁)라는 호칭으로 불림. 이들이 참전한 대표적인 전투는 1081년의 오로벌하 전역이었는데, 황탁보에서 송군과 조우한 마괴는 여자라고 방심하던 적군을 격파해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송군에 반격할 전환점을 만들었음.


6. 그러나 여성의 전투력이 남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서하인들도 잘 알고 있었고, 인반적인 경우 마괴는 병참지원을 비롯한 후방 업무를 수행했음. 연구에 의하면 서하군 내 여군 비율은 약 15%로 현대 미군과 비슷함.


7. 정리하자면 마괴는 존속기간 내내 총력전태세였던 서하의 정치상황이 탄생시킨 특수한 병종이고, 후방 지원을 전담하는 특수부대 개념이었지 광범위하게 징집된 전투병은 아니었음. 간혹 여성징병 논리 펴면서 서하의 마괴를 예로 드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틀린 예시임. 여담으로 구글에 麻魁를 검색하면 첫페이지에 중국어 검색결과보다 한국어 검색결과가 많이 보이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마괴 또한 일전에 널리 퍼졌던 바다민족 문명파괴설처럼 사실과 유리된 환상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