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대표적인 이민자 출신 왕을 뽑는다면, 신라 제4대 국왕이자 이사금인 석탈해(탈해 이사금)을 뽑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왕씨 중에서 인지도는 낮지만, 석(  )씨도 포함되게 만든 사람이다. 

석탈해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한반도 최초 부동산 사기꾼으로 유명할 것이다만, 부동산 사기를 하기 전 그의 출신이 가장 미스터리이다.


그의 고향인 용성국(다파나국)

설화에서 그의 고향은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석탈해왕의 출생국이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서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의 소생이다.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 1,000리에 있다.”고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라.”하고 주석하여 “용성국은 또한 정명국(正明國)이라 하고, 혹은 완하국(琓夏國)·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는데, 왜국의 동북쪽으로 1,000리가 된다.”고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다파나국(多婆那國))] 

그의 고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있지만, 문제는 해당 서적을 제외하고 모든 동아시아 서적에서 그의 고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석탈해의 출신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따라서 몇 가지 의문과 추측설이 생겼다.


1. 한반도관련 출신지

① 울릉도

당시 왜국의 위치를 규슈로 한정해서 본다면, 당시 우산국인 울릉도였다는 설.

② 고구려-옥저 부근 지역(함경북도-만주-연해주)

③ 탐라국(제주도설) [다파나국-탐라국(?)]

④ 영남 동해안 [신격화설]

  • 신라의 오악 중 하나인 토함산이 그의 이명인 '토해'와 연관이 있다.
    • 석탈해는 사후 동악의 신으로 불리었다.
  • 동해 용왕 신화을 인용한 신격화
  • 부동산 사기를 당한 '호공'은 사실 그의 서포터다.
    • 외부출신인 석탈해는 그의 집에 잠시 얹혀 살았다.
    • 호공의 도움을 통해, 석탈해는 신라 귀족 사회로 편입될 수 있었다.
    • 석탈해는 즉위 이후, 서열 2위인 대보(총리대신)[ 大輔 ]를 호공에게 수여하였다.

2. 일본-중국관련 출신지

① 규슈 인근-혼슈 관서지방

그러므로 다파나국은 모두 같은 나라인 용성국 내지 정명국·완하국·화하국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다파나국의 위치에 대해 다파나와 음이 비슷한 일본 다지마국(但馬國) 또는 히고노국(肥後國) 다마나군(玉名郡)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다파나국(多婆那國))] 

② 일본 열도 동북쪽(훗카이도)

  • 당시 왜의 범위는 현 일본 열도의 절반이었으므로, 에미시 혹은 아이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 다만 이 가설은 일제의 내선 일체 정책으로 써먹은 적이 있다.

③ 중국 동남부

  • 북방적인 야장설화와 남방적인 난생설화가 섞인 석탈해 설화
    • 금관가야의 허황옥 혹은 탐라국 삼성혈의 경우.
      • 연안 해안을 항해하며, 배를 타고와서 정착했다는 설.
  • 다만 이는 다파나국 위치가 기술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방향과 틀리다.

3. 캄차카반도설

동북 1000리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다.

  • 러시아 학계에서는 숙신-읍루가 위치한 아무르 지역은 구리가 없는 대신 철광석이 있다는 사실 아래, 환경적인 조건에서 이들이 제철 기술을 빠른 시기에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 석탈해의 야금술을 증명해주는 가설이기도 하다.
  • 캄차카 반도의 설화
    • 해안가에서 어로 작업을 하며 생활하는 미티는 남편인 쿠이키나쿠(큰까마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정부(情夫)인 바크팀티란(까치인人)을 불러들여 밀회를 즐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티와 바크팀티란이 은밀한 만남을 즐기는 사이에 쿠이키나쿠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미티가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긴 쿠이키나쿠는 불을 지펴 침실로 연기가 들어가도록 했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외간남자인 바크팀티란이 숨을 헐떡거리며 침실에서 뛰쳐나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미티는 두 개의 알을 임신했고 그것이 두 명의 인간으로 바뀌었다. 쿠이키나쿠의 집에서 바크팀티란의 두 아이를 양육하던 미티는 쿠이키나쿠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두 아이를 가방에 집어넣고는 바크팀티란의 집으로 떠나버렸다.
      미티는 두 아이를 마루에 던져버리고는 아이들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하였다. 이후 쿠이키나쿠는 외로워질 때마다 미티를 찾아가 음식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 문제는 어떻게 왔는가다.

4. 스키타이설[음차설]

  • '昔脫解'를 중고음으로 읽어 보면, 'siᴇk̚ tʰuɑt̚ kˠɛX'로, '해'(解)를 제외하면 스키타이와 거의 발음이 일치한다 
    • 탈해는 토해라고도 불리웠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토'(吐)자의 중고음은 'tʰuoX'으로 이것도 '탈'(脫)의 중고음과 비슷해지기에 더욱 설득력이 커진다. 
    • 석탈해가 어릴 때 버림받았다는 것도 석탈해로 대표되는 집단이 기존 스키타이 연맹에서 반강제적으로 내쳐져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 세력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 해는 당시 한 집단의 수장 혹은 높은 자를 뜻하기도 한다. [개인 추측]
  • 왜의 동북쪽 혹은 연해주-만주 지역은 흉노같은 유목민들의 활동 영역이다.
  • 신라의 금 세공 기술은 스키타이의 금 세공 기술과 연관이 있다.

여담

  • 이사금의 유래는 그와 유리 이사금 사이에서 나왔다. [이가 많으면, 현명하다는 당시 풍속]
  • 그는 가야의 김수로(이름이 아니라 당시 지도자의 호칭일수도 있다.)와 술법으로 승부한 적이 있다. 결과는 패배.
    • 이 설화는 금관가야 김수로와 석탈해가 기술자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 혹은 그냥 멋지게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 그의 신장은 『머리 둘레 3척 2촌, 키 9척 7촌』으로, 『머리 74cm, 키 223cm』이라는 어마어마한 신장을 가지고 있다.
    • 이는 최홍만의 신장과 비슷하다...
    • 이때 신장을 고려한다면, 존나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