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https://www.yes24.com/Product/Goods/3543401)에서 발췌.


전함에 포를 대량으로 탑재하지 못했던 시절 함대의 기본 대형은 좌우로 길게 펼친 횡렬진이었습니다. 횡렬진은 각 함선이 적에게 달려들어 백병전 등 난전을 펼치는데에 유리한 대열이었지만, 전함에 포를 대량으로 탑재하고 화력이 중요시 되는 범선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명령하달을 위해 기함이 함대에 신호를 보내려면 기함이 전열 앞으로 나와야 다른 함선들이 그 신호를 볼 수 있고, 전투가 시작되면 대부분 난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명령하달이 매우 힘들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전열전술입니다. 대포를 대량으로 탑재한 함선들을 일렬종대로 배치하여 대형을 유지하면서 기동하면 화력을 집중시킬수 있었고, 이 일렬대형 바깥에 소형 프리깃함을 하나만 배치해도 기함에서 보낸 신호를 이 프리깃함을 통해 전열 전체에 신호로 전달할 수 있어 명령하달이 용이했으며, 기함이 최선두에서 전열을 이끌 경우 전열 안의 나머지 함선들은 앞의 아군 전함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제독의 의도대로 함대를 기동하기가 매우 편리했습니다.


대강 17세기 이후 전열은 해전의 기본이 되었으며, 대규모 함대 간의 해전은 아군 전열을 유지하면서 적 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됩니다.





체사피크 해전(1781년 9월 5일)을 그린 그림.(V. Zveg 작)


대부분의 해전에서 전열을 구성하는 함선들은 일렬로 상대방 전열과 나란히 항해하며 포격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적의 포격에 압도될 경우 전열을 이탈하거나 전투불능에 빠지게 되는데, 이럴 경우 뒤에서 따라오는 후속함들의 기동에 방해가 되며, 적 함선들이 이 빈자리로 파고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적 함선들이 아군 전열의 중간을 자르고 파고들게 되면






HMS Victory의 후미.


Raking Shot(종사)을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범선시대 모든 배의 후미는 사관실, 함장실 등이 위치해 장갑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포격을 할 경우 발사한 포탄이 적 함선의 뒤에서부터 앞까지 내부에서 전부 휘저을 수 있었기 때문에 Raking shot을 받은 전함은 대부분 무력화 되었습니다. 일례로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 제독의 기함 빅토리는 프랑스 함대 기함인 뷔생토르에게 단 한번의 종사(Raking Shot)를 가해 197명을 전사시키고 85명이 부상시켜 전투불능 상태에 빠뜨립니다.





칼레 해전 당시 스페인 아르마다에 맞섰던 잉글랜드 함대 기함 아크 로열(Ark Royal)



그래서 전열을 구성하는 함선은 적을 압도하는 화력 뿐 아니라 적 포격을 견뎌내고 전열을 유지할 수 있는 맷집이 필요했습니다. 적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전열을 이탈하면 그 자리로 적 함선들이 파고들어 앞에서 항해하고 있던 아군 함선에 Raking Shot를 퍼부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강력한 화력과 맷집을 가진 전함들은 바로 전열함(Ship of the Line)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술과 전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열대형에 참가하기 위한 최소 포문수와 배의 크기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17세기 초에는 50문 정도의 포만 탑재한 전함도 전열에 참가할 수 있는 전열함으로 분류되었지만 나폴레옹 전쟁때가 되면 최소 70여문의 포가 있는 전함이 전열함으로 전열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youtu.be/pd7rUglBBEQ



적 함대를 마주친 함대는 우선 풍상(Windward)을 차지하기 위해 기동 합니다. 범선은 바람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풍하에 있는 함대는 풍상에 위치한 함대에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면 풍상에 있는 함대는 자기가 원하는 지점, 원하는 시점에 적에게 접근할수 있었기 때문에 풍하에 있는 함대보다 매우 유리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thetidesofhistory.com/2021/03/28/the-weather-gage/


이러한 이점은 함대 간의 전투 뿐 아니라 단함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왼쪽에 있는 풍상에 위치한 배는 적함의 선체, 특히 평소에는 수면 아래에 위치하는 배의 하단에도 포격을 가하여 침수를 유발시킬 수 있는 반면, 풍하에 있는 오른쪽 함선은 배가 기울어 적의 선체보다는 돛을 주로 노려야 했습니다. 또한 이미 배가 바람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적을 향해 포격을 가하면 반동 때문에 배가 순간적으로 더 기울어 침몰하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전에서 바람 우위를 Weather Gage라고 합니다.


전열을 유지해야 되었기에 전열함대 간의 전술은 그저 서로 일렬로 나란히 항해하며 포격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풍상을 차지하여 적 함대는 아군 함대를 향해 움직이기가 어렵고 아군 함대는 적 함대에 접근하기가 수월한 경우 다양한 전술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예로 적 전열을 양쪽에서 감싸서 화력을 퍼붓는 Doubling이나








적 전열을 자르고 파고드는 Line Breaking 등이 대표적입니다. 유명한 트라팔가 해전이 Line Breaking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전열을 잘라먹고 파고든 영국함대는 괴멸적인 종사와 화력투사를 통해 후미에 있던 적 함대를 박살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적 전열을 감싸거나 포위하면 나머지 적 전함들이 선회하여 반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실제로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범선 시대 전함은 속도와 선회가 매우 느렸습니다. 일례로 트라팔가 해전에서는 바람이 약한 나머지 영국 해군이 8km를 주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45분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영국함대가 풍상에서 순풍을 받으며 접근했기에 이정도 속도로 접근할수 있었지, 프랑스 - 스페인 함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군 함대가 적 함대의 일부를 고립시켜 수적 우위를 점하더라도 적 함대의 나머지 함선들이 이를 구원하러 돌아오는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고, 대부분은 구원이 도착하기 전에 패배하거나 나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 스페인 함대 전열의 앞쪽에 위치했던 함선들은 뒤에 있던 본대의 아군 함선들이 일방적으로 고립되어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바람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자 본대에 합류하는 것을 포기하고 전선을 이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