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胡宗南 (호종남)
Hu Zongnan

1896.5.16~1962.2.14

호이4 하던 사람들한텐 인지도가 있을수도 있는데. 국민혁명군의 초기 사령관,장성중 하나

1896년 장제스의 고향과 같은 중국 저장성의 전하이현에서 태어남. 집안은 약재상을 했고 어렸을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지만 이후 중국의 상황이 안좋아지자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24년 황포군관학교 1기로 입학, (당시 면접 시험관이 마오쩌둥 이었다고...)
원래는 키가 작아 입학이 안될뻔 했지만 국민당 원로인 랴오중카이의 지지로 입학에 성공. 학교에서 교장인 장제스를 전적으로 따랐고 능력도 좋아 저우언라이가 공산당으로 포섭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

졸업뒤 장제스의 신임을 받아 국민당 1,2차 동정에 참여. 북벌에도 참여하며 군벌과의 전투에서도 공을 많이 세우고 대위로 진급 이후에도 반장전쟁에서 장제스 편을 들며 반란군을 상대로 활약. 소장으로 진급하고 초공작전,양관사변등에서도 공을 세우고 2차 상하이 사변때도 참전하며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며 활약하지만, 장제스는 그를 공산당 전선으로 투입. 중일전쟁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함.

중일전쟁이 끝나고 후쭝난은 원수정도 해당되는 상장계급을 달게되고 그사이 국민당-공산당은 평화적으로 신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1946년 국공내전이 터지고 다시 전선으로 투입. 이때 산서 일대에 위치한 후쭝난의 부대는 40만에 달하는 최정예 부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장제스가 이들을 다른 전선으로 투입하며 초기에 공산당을 토벌할 결정적인 기회를 날려버림. 하지만 여기에는 후쭝난의 라이벌인 천정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있음.

1947년 봄 마가군벌의 지원을 받고 옌안으로 공세를 시작,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옌안이 함락. 마오쩌둥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는 내몽골 일대로 후퇴하지만 점령지가 너무 넓어지며 병력이 차출. 결국 펑더화이에게 각개격파 당해버리며 1948년 난징과 함께 옌안은 다시 공산당에게 탈환당함. 이렇듯 내부총질로 초기의 대승에도 불구, 점점 고전하게 됨. 하지만 실력은 어디간게 아니라 계속해서 승전보를 울리지만. 이미 다른 전선은 붕괴중이었고 결국 후쭝난의 부대도 계속 후퇴. 거기에 탈영으로 후쭝난의 부대는 유령부대가 된 상황이고 군벌의 배신으로 마지막 거점도시인 청두는 포위되고 결국 마홍꾸이와 함께 대만으로 탈출. 이후에도 여러 섬 전투에서 활약하지만 1955년 야전과는 거리가 먼 총통부 자정에 임명.
별다른 일 없이 평범하게 살다가 1962년 사망.
장제스가 장례식에 참여하는등 죽은 뒤에도 대우는 받음.

후쭝난의 장례식


장군으로써의 능력은 당시 독일군 버금가는 명장중 하나였지만 장제스의 고집, 내부의 방해로 몰락해버린 비운의 인물. 장제스와 천정이 방해만 안했어도 중일전쟁,국공내전의 판도는 변했을거고 적어도 중화민국이 조금더 오래 지속했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