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인용한 기록.


百濟王率兵三萬, 來攻平壤城. 王出師拒之, 爲流矢所中, 是月二十三日薨. 葬于故國之原. 【百濟蓋鹵王表魏曰, "梟斬釗首." 過辭也.】

백제왕(근초고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은 군대를 출정시켜 막다가 눈먼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국(故國)의 들에 장사지냈다. 【백제 개로왕이 위나라에 표(表)를 보내기를 "쇠(釗)의 머리를 베어서 매달았다"고 하였으나 지나친 말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고국원왕 41년(371년) 10월조


참고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인용된 6세기 후반인 고구려 당대에 편찬된 역사서인 신집(서기 600년 편찬, 고구려 영양왕 11년, 전5권)의 내용을 복붙 수준으로 그대로 가져다 옮겨적은 것으로 추정되고있음.


고구려 고국원왕(고사유)의 사망일

서기 371년 음력 10월 23일

서기 371년 양력 1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