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전 문서 보긴 했는데
<소위 전격전이라 불리는 교리는 실존한 적이 없으며, 그 세부 사항은 실제 독일군의 전투 수행 방식에 대해 서방의 마비전과 기동전, 그리고 소련군의 전술적, 작전술적 개념들을 이것저것 뒤섞어 투영하여 만들어진 잡탕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라고 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논문이나 전문 자료 등이 전혀 제시가 안되고 있음. 적어도 냉전시기의 이론이 뒤집혔으면 분명 논쟁 내지는 반박논문 등이 존재할텐데 그런 거 전혀 없이 설명만 장황한 거 보면 밀리터리 분야 종특인 전문가 같은 뇌피셜 같기도 하고...
프랑스 침공에서 전격전은 있었다고 생각함.
프랑스 침공에서 전격전이라는 이름의 교리는 없었음. 그러나 전격전의 내용을 구성하는 작전개념들은 있었음. 물론 개별 작전개념들은 통일된 개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독일군 내부에서도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갑부대와 상급 지휘관들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있기도 했음. 그리고 돌파 후에 기갑부대가 후속 부대를 기다려야 할지 먼저 진격해야 할지 등의 내용에서 돌파가 이루어진 후에 고민하고 결정한 부분도 있음. 하지만 관련 작전개념들은 사전에 논의되고 준비한 것이지,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다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 아님.
그럼 이게 전격전이라는 작전 내용이 존재했다고 해야 할까,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존재했다고 보는 쪽임. 전격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뿐이지 그 전격전이라는 내용을 채워넣을 구성요소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것에 독일군이 전격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상 그 이름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봄.
문제는 냉전시대에는 전격전이 전술적, 작전적 요소로 국한되지 않고 총력전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개념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임. 군대의 동원부터 전선의 돌파, 전략적 거점의 함락과 적군의 무력화를 통한 전쟁의 승리까지 철저하게 짜여진 계획에 따라 신속하게 적군의 역량을 분쇄함으로써 총력전을 피하는 대전략으로 간주되었음. 그리고 프랑스 침공의 실태가 그런 잘 짜여진 대전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밝혀지면서 "전격전은 없다"는 말이 나온 것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격전이라고 하면 전차부대에 의한 전선의 돌파와 기동, 그에 따른 적군의 마비와 포위섬멸 같은 걸 생각하지 "치밀하게 짜여진 국가적 대전략"을 연상하는 건 아니지 않음? 학자들이 뭐라고 떠들었건 간에. 그리고 애당초 전격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독일이지 냉전 시대의 역사가들이 아닌 이상 "전격전의 내용이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네" 라고 해야지 "전격전이란 없었다" 운운하는 건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인 것 같음. 그 전격전은 없었다는 주장의 바이블 격인 "전격전의 전설"에서도 독일군의 움직임을 '고전적인 작전술 차원의 기동전의 부활'이라 하는 것은 설명이 불충분하며 독일군이 "전쟁 양상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음.
참고로 전격전이 없었다는 쪽에서 제시하는 내용 중 하나는 독일군의 목적은 분명히 적군의 섬멸이었지 물리적인 섬멸이 아닌 심리적인 마비를 노리는 기동이 아니었다는 것인데, 이는 일정부분 사실이기는 하지만 독일군의 기동이 프랑스군에 심리적인 마비와 붕괴를 가져온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며, 이는 독일군이 의도한 바였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님. 독일군은 적군의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슈투카에 사이렌을 붙일 정도로 심리적 효과에도 관심을 보였지, 심리적 효과를 무시한 적이 없음. 단지 독일군은 심리적 효과가 그 정도로 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임. 이 역시 "전격전의 전설"에서 명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임.
칼 하인츠 프리저의 전격전의 전설이 최근에 히트치면서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확대해석인 면이 크다고 봄. 프랑스를 석권한 독일의 작전과정을 전형적인 전격전 - 블리츠크리그로 불러왔는디, 블리츠크리그라는것이 독일이 명확한 의도를 갖고 수행한 계획적 전쟁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간 블리츠크리그라고 불러온 자체가 없었다고 하는 것도 무리임. 이게 좀 모호한 부분이 있는지라, 이래저래 말이 계속 나오는 듯. 연구사를 좀 정리해서, 다시 논하는 책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