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의 배는 한국 최초의 무역선으로 불리는 2200t급 화물선 '앵도환'입니다. 원래 이 배는 1918년에 건조된 일본 화물선 '사쿠라지마 마루(櫻島丸)'였지만 해방 후 조선우선이 인수하여 일본식 선명을 우리식으로 읽어 계속 쓴 겁니다.
여기서의 환(丸)은 우리나라의 호(號)와 용법이 거의 똑같은지라 정식 이름은 '앵도호'가 되어야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앵도환'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신백화점으로 유명한 박흥식의 화신교역이 빌린 이 배는 1948년 4월부터 8월까지 한천(우뭇가사리), 인삼, 해산물, 흑연 등 약 50만 달러어치의 물품을 싣고 홍콩으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첫 무역인 셈이었죠.

홍콩에 도착한 앵도환은 아직 대한민국이 독립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극기 사용을 거부당할 뻔하는 등의 고초도 있었지만 결국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달고 입항하는 데 성공했고, 싣고 간 한천을 무려 16배의 차익을 내어 파는 등 상당한 수익도 올렸습니다. 첫 수출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출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앵도환은 이듬해인 1949년 초에 북한에게 압류당하고 맙니다. 남북교역을 위해 북한 원산항에 입항했을 뿐인데 북한 측이 다짜고짜 아무 명분없이 배만 뺏은 거에요!

당시는 남북 양쪽에 전부 단독정부가 세워지는 등 분단이 확고해진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신무역은 어떻게든 남북교역의 불씨를 살리고자 평양을 몇 차례 오가며 북한의 국영 무역회사인 조선교역과 겨우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합니다.

교역 내용은 대충 남한 측의 한천 등의 여러 물자와 북한의 비료를 교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비료가 부족하던 남쪽에게 북한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료는 아주 소중했기에 나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지요. 실제로 비료 부족 때문에 유의미한 수확량 감소까지 보이던 게 당시 한국의 농업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12월 말, 앵도환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금인 3천만원어치의 물자를 싣고 부산항을 떠나 38선을 넘어 원산항으로 향합니다. 원산에 도착한 앵도환은 일단 우리측의 물자를 내리고, 북한이 실어줘야 할 비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비료를 주기는 커녕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내놓습니다. 앵도환의 소유주인 박흥식이 친일파이기 때문에 '인민의 이름으로' 반민족 반동분자의 재산인 앵도환을 압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세워지자마자 가장 먼저한 짓이 이딴 날강도 짓이었어요!

친일파 운운하는 명분도 그냥 갖다붙이기 식이었고, 실제로는 당시 대형 선박이 부족했던 북한이 그냥 철면피를 깔고 우리 배를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앵도환은 북한 군인들이 점거해 선원들을 강제로 배에서 내리게 했고, 선원들은 2달 동안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1949년 3월에야 겨우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북한 잡지에 실린 납북된 앵도환.
의거입북이라고 선전되었지만 실제로는 명백한 납치였습니다.

이 앵도환 압류 사건은 북한이 70여년 동안 숱하게 저질러온 국가 단위의 날강도 짓거리의 시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상에 순수 교역 목적으로 온 무역선에 군대를 보내 다짜고짜 뺏어버리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어선 납북, 금강산 관광객 총격, 그리고 작년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한 온갖 양아치 짓거리의 시작이 앵도환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못 믿을 놈들이에요.


출처: 네이버 블로그 무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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