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서로 비슷하다고 지적되는 단어들 중 일부는 삼국 시대에 고대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건너간 차용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축성이나 행정과 같이 고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 필요하거나, 문화나 생산 기술과 관련이 있거나, 현실 또는 신화 속 동물의 이름 등입니다. 또 일부는 16세기 이후에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들어온 차용어입니다. 이런 단어들은 근대적인 개념을 가리키거나, 일본이나 서양의 문화와 관련되거나, 한반도에 원래 살지 않았던 작물의 이름 등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두 언어 사이의 가장 오래된 접촉을 반영하는 것은 한국어에 존재하는 일본·류큐 조어 기층 차용어입니다. 오늘날 역사언어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어 (또는 한국 조어)가 원래 고조선에서 사용된 언어이며, 따라서 원래 한반도 중남부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서기전 제1천년기 중반 (약 2500년 전)을 시작으로 나타나는 물질 문화의 확산과 함께 고대 한국어는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전까지 한반도에서 널리 쓰이던 언어는 현재의 일본·류큐어족 언어들의 먼 조상에 해당하는 언어로, '전기 일본·류큐 조어'와 같은 이름을 붙여볼 수 있겠습니다. 현존하는 일본·류큐어족 언어들의 공통 조상인 '(후기) 일본·류큐 조어'와 구분하기 위해 '전기'를 덧붙입니다.


(1) 이름에 대해


제가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을 항상 '(전기) 일본·류큐 조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학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어족의 이름은 그 어족의 현존하는 언어들로부터 명명되며, 조어의 이름은 어족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한반도에서 일본·류큐어족 언어는 늦어도 삼국 시대에는 이미 소멸했으며, 직접적으로 (차용을 경유하지 않고) 문헌 기록에 남은 일본·류큐어족의 모든 언어는 일본 열도에서 쓰였습니다.


현대 한국인은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화자들, 즉 무문·야요이 문화 (이 글은 역사언어학의 관점을 취하므로, 언어가 동일한 무문 토기 문화와 야요이 문화를 구분하지 않고 무문·야요이 문화라고 부르겠습니다)의 향유자들을 언어적으로는 계승하지 않았으나 유전적으로는 상당 부분 계승합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언어 지역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한 선례는 명확합니다. 예컨대 현대 일본인은 흔히 죠몬 인구와 무문·야요이 인구의 혼합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일컬어지지만, 현대 일본인은 언어적으로는 무문·야요이를 계승할 뿐 죠몬 문화를 계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죠몬 문화의 향유자들이 사용한 언어는 그 계승자들의 현존하는 민족명을 따서 '아이누 조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적용한다면 무문·야요이 문화의 향유자들의 언어 또한 '일본·류큐 조어'로 부르는 것이 타당합니다.


최근에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에 대해서 서양 연구자들이 '반도 일본·류큐어(Peninsular Japonic)', 일본 내의 일부 연구자들이 '대륙 왜어(大陸倭語)'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들 용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반도 일본·류큐어'라는 용어는 이 언어가 일본·류큐어족의 한 분파인 것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예를 들어 '도서 켈트어(Insular Celtic)'라고 하면 켈트어파의 세부 분류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을 일본·류큐어족의 일본 열도 내 분파들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시대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이 일본 열도 내의 일본·류큐어족과 공유하지 않는 독자적인 개신이 밝혀진 바 없다는 점에서 계통 분류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은 일본 열도 내의 모든 일본·류큐어족 언어의 직계 조상 그 자체이거나, 직계 조상과 별도의 언어로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는 방언차 수준의 미미한 차이만을 가진다는 것이 적절한 기술입니다.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서 꽤 흔히 들을 수 있게 된 '대륙 왜어'라는 용어는 더욱 황당무계합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무문·야요이 문화의 향유자들이 '왜(倭)'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기록된 시점에 변한에서는 일본·류큐어족 기층 언어가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야의 언어에 대한 후대의 기술이나, '삼국지'에 벼농사가 언급되는 등의 정황 증거가 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서 한반도 중남부의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한(韓)'으로만 기록되어 있지 '왜(倭)'로 불리지 않았으며, '왜(倭)'의 범위에 대해서는 "왜인은 대방군 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산다(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라고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 속의 왜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 집단을 편의상 왜인으로 부른다는 논리에는 일말의 합리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이유라면 그냥 현대의 일본·류큐어족의 조상 언어이므로 일본·류큐 조어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단순하면서 견고하고, '한(韓)'과 '왜(倭)'를 섞어놓는 문제를 쓸데없이 만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반도의 일본·류큐어족 기층 언어를 '변한어'라고 부르겠다면 또 모를까 '대륙 왜어'라는 명칭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실 굳이 이런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대륙 왜어'라는 용어는 고구려어가 바로 이 대륙 왜어라고 주장하는 한 일본인 학자의 사이비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사이비 학문의 신봉자가 아니라면 배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은 일본 열도로 건너가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이지 일본 열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가 아닙니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일본 열도 내의 모든 일본·류큐어족 언어로부터 복원될 수 있는 것보다 앞서는 특징들이 나타나므로,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 언어는 일본·류큐 조어의 이른 형태 그 자체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확고하게 반영하는 명칭은 '(전기) 일본·류큐 조어'입니다. 저는 '반도 일본·류큐어'나 '대륙 왜어' 등의 현재 통용되는 명칭을 '(전기) 일본·류큐 조어'로 대체하는 것을 제 목표들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2)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 언어의 특징과 화자들


한반도의 전기 일본·류큐 조어는 일본 열도의 일본·류큐어족 언어들에서는 소멸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다"를 뜻하는 고대 한국어 波珍~波旦 *patɔr은 전기 일본·류큐 조어 *watar의 차용인데, 고대 서부 일본어는 어말 자음을 허용하지 않는 음절 구조를 가지며, *watar 역시 wata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서부 일본어의 동사 어간 watar- "건너다"의 존재를 고려하면 wata는 실제로 더 이른 시기에 *watar였을 것이고, 이 가상의 형태가 고대 한국어에 화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언어가 (적어도 역사 시대에) 일본 열도에서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일본 열도의 언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면, 3세기의 일본 열도에서 쓰인 일본·류큐어족 언어들은 그 음소 배열의 특징에 있어서 고대 서부 일본어와 매우 가깝습니다. 어떤 증거를 통해 보더라도 일본 열도 내의 후기 일본·류큐 조어는 상승 이중모음의 존재를 제외하면 고대 서부 일본어와 유사한 음운론적 특징을 가졌을 것이고, 이는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이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드는 증거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일본 열도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고고학적 자취는 한반도 남서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일본·류큐 조어 기층 언어의 흔적은 한반도 남동부를 중심으로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3) 어떤 단어들이 일본·류큐 조어 기층에서 들어왔는가?


여기서부터는 창의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류큐어족 역사언어학의 연구 역시 현재로서는 완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우며, 삼국 시대 고대 한국어의 연구는 말할 것도 없이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 성과는 모두 향가 등의 자료에 기초한 문법사적 연구이며, 음운사에 대해 확고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다른 언어들에 대한 비슷한 종류의 연구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는 '완벽한 발음의 일치'나 '음운 변화 과정의 정합성' 같은 요소들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문헌에 나타나는 (또는 안정적으로 복원될 수 있는) 일본·류큐어족 형태와의 유사성, 둘째는 한국어 내부에서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복수의 단어의 존재 또는 한정된 지리적 분포입니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역시 "바다"를 의미하는 波珍~波旦인데, 이 단어는 같은 의미의 고대 서부 일본어 wata와 닮았을 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에 이 단어가 지명이나 관명 등에 쓰인 기록은 한반도 남동부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다른 예는 "지배자"를 의미하는 錦~今 *kɛm(ɛ)입니다. 이 단어 역시 같은 의미의 고대 서부 일본어 kîmî (?< *keme, cf. '수서' 동이전의 阿輩鷄彌 pre-WOJ *əpə-kʲemʲe)와 발음상 일치하며, 지배자 호칭으로 쓰인 것은 오직 신라뿐입니다. 호칭인지 확실하지 않은 인명의 일부로 등장하는 것을 포함하더라도 한반도 남부라는 한정된 지리적 분포를 가지며, 다른 지역에서 다른 단어가 나타나는 것 (加~皆~瑕나 吉支 등)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산"을 의미하는 '뫼ㅎ' mwoyh나, "뱀"을 의미하는 'ᄇᆞ얌' poyam 역시 비슷한 경우들입니다. 고대 한국어 지명에서는 '뫼ㅎ'에 해당하는 단어는 남쪽에서밖에 나타나지 않고, 북쪽에서는 達이나 岬이 쓰였습니다. 'ᄇᆞ얌'에 해당하는 단어는 고대 한국어 지명에서 발견되지 않고, 虵 "뱀"과 대응되는 단어는 이후 한국어의 '미르'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고대 한국어가 일본·류큐 조어 기층으로부터 '뱀'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인 결과 원래의 고유어 '미르'는 "용"의 의미로 변화한 것입니다. 참고로 '뫼ㅎ', 'ᄇᆞ얌'에 대응하는 고대 서부 일본어 단어는 각각 mori "숲"과 pëmî "뱀"입니다. "숲"과 "산" 사이에는 다소 의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 서부 일본어 mori "숲"은 mor- "우거지다"의 명사형으로, 어원적으로는 인간의 관리 하에 있지 않은 식생이 번성하는 땅을 의미합니다. 또한 높은 산이 존재하지 않는 류큐 열도에서 *jama "산"이 "숲"의 의미로 변화한 것과 같이, 두 의미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지리적 조건에 따라 의미 변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반도 북부에서 남하한 고대 한국어 화자들이 보기에 한반도 남부의 평범한 산은 별로 산 같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4) 재미있는 예시 1: '작다'


'작다', '적다'는 기초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어휘인데, 고려 시대의 한국어를 기록한 '계림유사'에는 小曰胡根, 少曰阿捺이라고 하여 '작다', '적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고, '작다'에 대해서는 15세기의 '횩다' hywok-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는 형태가 나타납니다. 15세기 문헌에는 '횩다' hywok-와 '쟉다' cyak-가 모두 존재합니다. 여기서 저는 현대 한국어의 '조그마하다'에 대응하는 15세기의 '죠고마' cywokwoma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죠고마' cywokwoma는 고대 서부 일본어 sukô- "적다", sukuna- "적다" (?< "작다")의 어근인 *sokom-을 매우 닮았습니다. *s는 원래 파찰음 [ts]로 발음되었을 것이므로, 한국어 '죠고마'가 고대 한국어 시기에 일본·류큐 조어 기층으로부터 차용되었다면 *s가 ㅈ에 대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sokom-의 자음 *m이 남아있는 형태는 일본어에서는 sukum- "웅크리다"라는 동사 어근으로서만 사용되지만, "웅크리다"가 "작다" 또는 "적다"의 의미로 변화하는 것은 다른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므로 (다름아닌 영어 little이 그 사례이며, 고대 영어 lūtan "웅크리다"와 같은 어근을 공유합니다) sukô-, sukuna-에 대해서도 *m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인데, 한국어 '죠고마'는 sukô-의 매우 이른 형태, 말하자면 전기 일본·류큐 조어 *tsokom-a(r) "웅크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로부터 원래 한국어에서 "작다"를 뜻하는 단어는 ㅎ으로 시작했는데, '죠고마'의 영향으로 ㅈ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규모를 나타내는 단어는 음성 상징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영역이고, '계림유사'에 기록된 고려 시대의 한국어에서는 "크다"나 "작다"나 모두 ㅎ 발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를 바꾸고자 하는 힘이 작용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계림유사'에 기록된 古召盲曹兒가 召古盲曹兒의 오사라면, 召古盲를 '죠고마'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죠고마'가 '쟉다'보다 더 일찍 침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5) 재미있는 예시 2: '소금'


'소금'은 또다른 재미있는 예입니다. '미추홀(彌鄒忽)'은 물이 짠 곳으로 묘사되고, '미추(彌鄒)'는 발음이 '메주' ('계림유사'의 密祖)와 닮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미추홀의 이름이 짠맛을 내는 '메주[醬]'에서 유래했다는 발상을 했을 만합니다. 鄒가 고대 한국어에서 *tɕ [ㅈ]이 아닌 *t [ㄷ] 발음으로 읽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추론입니다만, 실제로 *tɔ는 간혹 *tɕɔ로 변화할뿐더러 (*rɔ > *jɔ와 평행), 邵城이라는 이표기를 볼 때 '미추홀'의 '미추'가 실제로 그러한 변화를 경험한 단어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므로 일단 발음상의 대응 자체는 성립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미의 대응입니다. "물이 짠 곳"과 "메주"라는 두 의미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스쳐지나가는 연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의거해 지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 서부 일본어에서 장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mîsô와 pïsipo의 두 가지가 존재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메주'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차용어이고, 후자는 "마른 소금"을 뜻하는 합성어인데, 장류를 담그는 문화 자체가 고대 한국어 화자들로부터 건너간 것이라면, 장류를 "마른 소금"이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번역 차용(calque)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 고대 한국어에서는 원래 소금을 '메주'라고 하고 장류를 '마른 메주'라고 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한국어의 '소곰' swokwom은 일본·류큐어족 언어로부터의 차용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고대 일본어 *sipo-umî 또는 *sipo-mî "소금물"에 대응하는 조어 형태가 고대 한국어의 남동부 방언에 *sɛpɔmɛ로 받아들여져 *sɔɣɔm(ɛ)로 변화한 이후, *p > *ɣ의 개신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방언의 화자들에 의해 *sɔkɔm(ɛ)의 실현으로 잘못 분석되어 '소곰' swokwom이라는 형태가 되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이른 단계의 가설에 불과합니다만, 한국어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p~k 교체의 사례가 여럿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어원설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은 방언 간 차용에 의한 *p > *ɣ → *k 변화의 과정은 p~k 교체의 유래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어원설은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 언어 화자들이 소금물로부터 소금을 생산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끕니다.


(6) 재미있는 예시 3: '모레'


이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3", "5", "7", "10" 등의 고대 한국어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한다는 잘 알려진 사실 (?)과 관련한 이야기가 이 글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데에 위화감을 느끼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5", "7", "10"에 대해서는 그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于次와 五의 대응은 고대 한국어 지명 자료에서 단 한 차례만 나타나므로 진짜로 于次가 "5"를 의미했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于次가 일본어의 "5"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도 현대 일본어 발음을 따질 때나 그렇지 고대 일본어 기준으로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이렇게 고대어가 아닌 현대어와 비교가 이루어지는 것은 전형적인 사이비 언어학의 특징입니다. 더욱이 고대 서부 일본어 수사 i "50"의 존재를 고려하면, 고대 서부 일본어 itu "5" 자체가 아예 조어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itu로부터 i를 파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5", "7", "10" 등의 고대 한국어 수사가 일본어와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큰 주장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주장의 허점을 뻔히 아는 학자들이 여태까지 이 주장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데는 "5", "10"과 함께 나타나는 "골짜기"를 뜻하는 呑이 일본어 tani와 닮았다는 점에서 오는 실낱 같은 희망이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즉 지명의 뒷부분 谷이 일본·류큐어족 단어라면 앞부분의 五, 十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어에는 CVni 꼴의 명사가 별로 없고,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n으로 끝나는 자음 동사 어간이 없다는 일본·류큐 조어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일본어에서 i로 끝나는 명사는 동사 어간에 *-i가 붙은 것이 많은데, *n으로 끝나는 동사 어간이 없으면 ni로 끝나는 명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일본어 tani가 고대 한국어로부터 차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의 경우는 유일하게 密과 三의 대응이 여러 차례 나타나므로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성가신 문제가 있는데, "3"에 대해서 고대 한국어 지명 자료는 일본·류큐어족과 유사한 密 이외에 이후 한국어의 '세ㅎ' seyh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悉直이라는 형태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3"을 뜻하는 단어가 두 종류 있었다는 괴상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반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은 수를 나타내는 수사는 많은 언어에서 기수와 서수 형태가 별도의 어근을 가집니다. 한국어의 '하나'와 '첫', 영어의 one과 first ("맨 앞"), 그리고 two와 second (라틴어 "뒤따르는")가 그렇습니다. "3"을 의미하는 수사가 고대 한국어에 두 가지가 있었다는 상황은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하나는 기수 "셋"의 의미만을 가지고, 하나는 서수 "셋째"의 의미만을 가졌다면 말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류큐 조어 기층에서 유래하는 고대 한국어 수사 *mɛr-는 "셋째"의 의미를 가졌고, 그것이 화석으로 남아있는 단어가 '모레' ('모뢰' mwolwoy)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레'는 오늘로부터 세었을 때 셋째 날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류큐 제어에서 재작년을 "셋째 해", 내후년을 "또 셋째 해"라고 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7) 고대 한국어 연구에 있어 일본·류큐어학의 중요성


저는 고대 일본어 속의 고대 한국어 차용어들을 새롭게 찾아내는 (kïsi "기슭" 등) 한편으로, 고대 한국어 속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 차용어를 찾아내는 일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조그마', '소금', '모레' 외에도 '소' ('쇼' sywo)나 '좋다' ('둏다' tywoh-) 등을 저는 일본·류큐 조어 기층에서 유래하는 단어로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는 자료가 매우 부족한 언어이므로, 차용어는 문헌의 부족을 보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 기층이 일본 열도의 일본·류큐어족 언어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기 일본·류큐 조어에 해당하는 형태를 정확하게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뱀'과 pëmî는 딱 봐도 비슷해 보이지만, pëmî의 전기 일본·류큐 조어 형태를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애초에 차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일본·류큐 조어에 대한 고도의 내적 비교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고대 한국어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본·류큐어족의 이른 시기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써내려갈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고대 한국어의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료를 얻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