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에 전시중인 스멘데스의 카노푸스 단지>


이집트 제20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람세스 1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람세스 11세 생전부터 하이집트를 장악하고 있던 스멘데스(Smendes)가 람세스 11세의 장례를 집전하고, 후계자가 없는 파라오의 장례를 집전한 자가 다음 파라오가 된다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에 따라 제21왕조를 개창하고 파라오에 즉위하니 그가 스멘데스 1세다. 스멘데스라는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네스바네브제드(Nesbanebdjed)로 그 뜻은 '멘데스의 군주이시며, 숫양이신 자'라는 뜻이다. (바네브제드는 하이집트의 도시 멘데스를 중심으로 숭배되던 숫양의 머리가 4개 달린 신으로, 상이집트의 크눔 신과 동격이다)


이 사람의 친어머니는 흐레레(Hrere)로 추정하는데, 아문-레 신의 하렘장 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문 대신관의 아내였을 가능성이 높다. 부인으로는 텐타문 B(Tentamun B)였는데 람세스 9세의 딸로 보고 있다.


스멘데스 1세는 파라오에 오르기 전에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있던 하이집트 지역에서만 통치력을 발휘했으며 중부와 상이집트는 제20왕조 들어서 세력이 급격히 커진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이집트가 아직 분열되지는 않았는데 하이집트의 파라오와 상이집트의 아문 대신관이 같은 혈족이거나 그와 유사한 관계로 맺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네토의 저서인 이집트 역사에서는 스멘데스의 치세를 26년으로 기록했는데 이 유물 때문에 사실로 보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추방 석비(Banishment Stela)인데, 이 석비에는 ...왕의 재위 25년에 당대의 아문 대신관인 멘케테레(Menkheperre)가 테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고, 반란 지도자들을 서부 오아시스로 추방했다는 내용이다. 비록 테베의 아문 대신관들의 권력이 막강해서 중부와 상이집트를 파라오처럼 다스렸고 왕명도 썼지만 연대를 기록할 때는 당대 파라오의 치세 X년이라고 기록했다. 따라서 이 석비에서 말하는 왕은 스멘데스가 되며 최소 25년은 재위했다는 증거가 된다. 후계자는 아들로 추정되는 아메넴니수인데, 이 파라오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그 후계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서 출토된 왕명이 새겨진 화살촉이 전부다.


기록이 워낙 없다보니(제3중간기의 파라오들은 자료가 워낙 없어서 이런 사례가 꽤나 많다) 특별한 치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큰 유산을 하나 남겼는데 스멘데스의 왕명인 헤지케페레 세테펜레/세테페나문(Hedjkheperre Setepenre/Setepenamun, 눈부신 레의 현현이자 레/아문에게 선택받으신 자)는 훗날 제22왕조와 제23왕조의 파라오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어서 셰숑크 1세, 셰숑크 4세, 타켈로트 1세와 2세, 하르시에레 A(오소르콘 2세에 상이집트를 근거지로 파라오를 자칭한 인물, 제23왕조의 개조로 본다) 총 5명이 재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