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hsGVm1PS8s?si=tYyj6pKNuYSJ0suv






1. 노이슈반슈타인 성 Schloss Neuschwanstein












2. 린더호프 궁전 Schloss Linderhof













3. 노이에스 헤렌킴제 궁전 Neues Schloss Herrenchiemsee(짭르사유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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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Ludwig II(1845-1886)의 초상화.

그는 1845년에 태어나 1886년까지 당시 독일 제국 내에서 프로이센 다음으로 강성한 국체를 자랑하던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으로 군림하였다. 즉 19세기 말, 그러니까 원스턴 처칠이나 블라디미르 레닌같은 인물들이 막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낼 즈음에, 그런 시대의 사람이 저런 의상을 입고 놀던 것이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독일 영방의 주권을 쥐고 흔들던 격동의 19세기 중반,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 등살마냥 상대적으로 2류 국가로 전락한 바이에른 왕국의 젊은 국왕이 사심껏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한 몸에 사로 잡은 당대의 대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향한 전폭적인 물적 지원이었고(바그너는 열성적인 공화주의자인데도 그런 작자에게 전용 극장까지 지어줬다!) 다른 하나는 바이에른의 암울한 국제적 위상 재고와 외교주권의 제약을 타파해야 할, 현실정치에서의 막중한 과업에서 도피하여 자신의 낭만적인 이상향을 구체화 시키는 사업들, 즉 호화로운 궁전들에 대한 건축 사업이었다. 일찍이 바이에른이 프로이센 왕국 위주의 소독일주의에 동참한 댓가로 바이에른은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영방 내에서도 꽤 부유했고, 오스트리아에 줄서다 망해버린 하노버 왕국의 자산을 삥뜯어 마련한 모종의 달콤한 뇌물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런 금전적 여유는 루트비히 2세가 자신의 집안인 비텔스바흐 왕가의 내탕금까지 뜯어 19세기 말에 시대착오적인 궁전들의 건축사업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중세 동화에 나올법한 외관에 동로마 제국의 성당들을 연상케 하는 내부를 가진 노이슈반슈타인 성, 18세기 귀족들의 저택에서 애용되었던 로코코 풍을 화려하게 자랑하는 린더호프 궁전, 그리고 루트비히 2세 본인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방문 당시 깊이 인상받은 바를 공감케 하는, 장엄한 규모의 노이에스 헤렌킴제 궁전...


오늘날에야 하나같이 어디에 내놓든 자랑스러운 바이에른 지방의 문화유산이자 주 재정의 효자 노릇을 하는 관광 상품들이라지만, 정무는 내팽겨치고 왕실 내탕금으로 이런걸 짓는 꼴을 목도하고 있었을 왕국의 내각 구성원들, 즉 내각에 참여하고 있던 상당수의 비텔스바흐 왕가 구성원들 입장에선 어땠을 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생각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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