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중간기 시절 여러 정치세력으로 쪼개진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고왕국 멸망 후 중왕국 시대가 개막될 까지 약 140년 정도의 극심한 혼란기였던 제1중간기, 중왕국 말기에 레반트 지방에서 유입해 온 힉소스인들에 의해 하이집트를 상실하고 그대로 눌러앉아 파라오를 칭하고 상이집트의 토착왕조와 대립하던 제2중간기는 이 시기에는 통일 이집트 왕조가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정권이 치고받고 다툼을 벌인 끝에 승리한 왕조가 전 이집트를 통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신왕국 제20왕조(개창자인 세트나크테를 빼면 왕명이 전부 람세스라 람세스 왕조라고도 한다) 멸망 후 찾아온 제3중간기는 앞의 두 중간기와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제3중간기 내내 존속하진 못했지만 통일 이집트를 지배한 왕조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일단 제3중간기의 문을 열어제끼는 제21왕조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중부와 상이집트 지역이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자치를 해서 분열된게 아닌가 싶지만 파라오랑 아문 대신관이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막 쪼개지지는 않았다. 제21왕조의 파라오들 중에서 리비아인 출신인 대 오소르콘,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시아문(이름 자체는 아문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집트어여서 토착민 출신으로 보임)을 제외하면 전부 아문 대신관의 아들이었거나 그 아들이 본 후계자였다. 당장 개창자인 스멘데스부터 아문 대신관의 아들로 추정되고(어머니라고 추측하는 흐레레Hrere가 아문-레 신의 하렘장 직을 맡고 있어서 그 남편도 아문 대신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 마지막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2세는 아예 현직 아문 대신관의 신분으로 파라오에 즉위했고 두 직위를 모두 유지했다.


이후 리비아 출신인 셰숑크 1세가 개창한 제22왕조도 오소르콘 2세까지는 통일 이집트를 다스렸지만 그의 사망 후 분계왕조인 제23왕조가 창건되면서 상이집트 지역을 상실했고, 제23왕조와 공존하다가 둘 다 지방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여러 도시국가의 '왕'들이 난립했다.


이런 난장판을 정리한 게 고대 이집트 제25왕조, 그러니까 누비아의 쿠시 왕국이었다. 쿠시 왕국 나파타(Napata, 이집트 역사를 보면 비슷한 지명으로 나카다가 나오는데 혼동하기 쉽다) 왕조의 2대 왕인 카슈타는 제23왕조가 소멸하면서 상이집트 지역에 정치적 공백이 생기자, 세력을 투사해 당대 아문신의 아내이자 아문의 대신녀 직을 맡고 있던 셰폐누웨트 1세(제23왕조 오소르콘 3세의 딸이었다)에게 자신의 딸인 아메니르디스 1세를 양녀로 들이도록 만들었다. (아문의 대신녀를 맡은 자는 결혼하지 않고 다음에 즉위할 파라오의 딸을 양녀로 들여 계승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이는 그만큼 쿠시 왕국의 세력이 상이집트에서 강해졌다는 의미다. 


카슈타의 뒤를 이은 피이(Piye, 옛날 문헌에는 피앙키라고도 기록했다)가 즉위했을 때 이집트의 혼란상은 극에 달했다. 제22왕조는 수도인 타니스와 인근 부바스티스를 다스리는 지방정권으로 몰락했고, 제23왕조는 아예 소멸해 버려서 여러 도시국가 지배자들이 난립했다. 한편 나일강 삼각주 서부의 도시 사이스에서는 리비아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테프나크트라는 자가 파라오를 칭하고 세력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피이의 재위 20년차에 그와 동맹/봉신 관계였던 헤라클레오폴리스의 군주인 페프트자우와위바스트와 도시의 누비아인 사령관이 테프나크트의 공격을 받자 피이에게 지원 요청을 보냈고, 이집트 전역을 집어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던 피이는 이걸 기회로 삼아 상이집트를 거쳐 하이집트 지방까지 전부 평정해 이집트를 재통일했다.


도시국가의 지배자들은 피이에게 충성서약을 하는 대신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테프나크트는 처음에는 피이에게 복종하다가 나중에 다시 활개를 쳤는데 피이의 아들인 셰비쿠가 테프나크트의 후계자인 바켄라네프를 끝장내면서 완전히 이집트를 정리했다.


제25왕조는 약 1세기 동안 누비아와 이집트를 다스렸으며, 타하르카 시기에 신왕국과 비견될만한 번영을 누렸으나 아시리아에겐 당해낼 수 없었고, 제2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타누테멘이 8년 동안 이집트를 수복하려고 전쟁을 벌였으나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아시리아에게 역시 패배하면서 제25왕조는 종결되고 사이스를 중심으로 제26왕조가 열리니 고대 이집트의 황혼기인 말기 왕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