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2월에 나온 비주얼 노벨 Anti-Entropy 공식 단편, 어색한 부분 수정


원문: 月下


발터는 한숨을 쉬며, 차용증을 탁자 위에 놓았다. 좌절감이 그를 덮치고 생각을 할수록 우울해져, 팔짱을 낀 자세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WELT Livehouse ── 그가 현재 운영하는 공연장은, 한 달째 사람이 오지 않는 상태였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는 필요가 없었다, 공연할 밴드가 없으니, 당연히 관객도 없는 것.

돌이켜보면, 시작할 때 어딘가에서 잘못 ── 아니, 시작 자체가 잘못이었을지도.

거액의 기초자금은, 그가 운 좋게 따낸 천명 복권회사의 복권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 다음 발터가 개인 Livehouse ─극동에서 유래했다는 작은 규모의 공연장─ 을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그 좋은 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즈니스 스킬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발터는 음향 장비에 돈을 쓸수록 밴드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 믿었지만, 홍보하는 걸 깜빡해 결국 아무도 이곳에 Livehouse가 있다는 걸 모르게 되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들러도, 사장인 발터에게 연기나 노래의 재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색한 소개와 잡담 이후 떠나버렸다.

이린 이유 때문에, 발터는 한숨을 쉬며, 잘 보관해둔 나한과 리큐어를 꺼내 잔의 3분의 1 정도 따르고, 나머지를 위스키와 라임 주스 몇 방울로 채웠다.

그렇게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뱉어버렸다.

──자기가 섞고도 못 마실 술이라니!

어제의 손님이 한모금 마시고 얼굴색이 변해 나가버린게 이해가 갔다.

어렵게 술을 마시며, 알콜로 걱정거리를 지우려 할 때, 벼랑 끝에서 샘솟는 용기와 마주쳤다. 발터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오른 것이다.



대학교 내부

"WELT Livehouse 입니다, 만약 밴드 활동을 하고 싶다면 ──"

지나가는 학생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쳐 간다.

포기하는게 좋겠건만, 발터는 전단지를 꺼내, 계속 나눠주고 있다.

"일류의 음향장비, 최대 천명까지 수용한 장소 ──"

지나가던 두 번째 학생이 살짝 관심을 보이자, 발터가 쫓아갔다.

"── 분명 좋은 관객들을 만날 거에요."

두 번째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나가던 세 번째 학생과 손을 잡고 ── 걸음 속도를 올렸다.


발터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학생들은 전문 밴드는 아닐지라도, 쉽게 이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바로 대학에서 Livehouse의 전단지를 뿌리자는 것.

── 너무 일찍 왔나?

남몰래 허벅지를 두드리며 발터는 생각했다.


"한번 봐도 될까?" 가느다란 손이 보였다.

발터는 황급히 전단지를 꺼내 넘겨주었다.

"여기 요금은 비싸지 않아서, 당신 같은 학생들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요."

"학생?" 전단지를 받는 손이 멈칫했다.

맞은편 사람이 키득거리기 시작하자, 발터가 고개를 들었다.

베이지색 스커트, 녹색 장발의 여성.

"아, 칭찬으로 들을게." 여성이 전단지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젊고, 밝은 톤이었다.


사무실.

발터는 자기가 왜 이 장소에 왔는지 알고 있다. 방금전 그녀의 신분을 오해했기 때문에 이 장소에 온 것이다.

평교사인가? 어쩌면 이 대학의 교수일 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발터는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 네가 이 Livehouse를 운영한다고..." 표정 변화 없이, 전단지를 찬찬히 보던 여성의 얼굴에 놀라움이 살짝 나타나며 발터를 보았다.

"많이 어려보이는데, 아직 학생이니?"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데, 요즘 애들은..." 여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달라도, 마주치는 어려움은 모두 똑같거든요."

──물론 다들 자신의 나이를 틀리긴 하지만, 발터는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선의든 아니든, 그 잘못된 판단으로 이득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때, 사무실의 문이 "끼익" 소리를 냈고, 발터가 돌아보자, 문 앞에 정장을 입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발터를 보자, 얼굴을 찡그렸고, 발터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플랑크, 저거 때문에 날 부른건가요?"

"저거"라고 불린 발터는 아무말 않고 고개를 숙였다.

플랑크라고 불린 여성은 대답 없이, 걸어가서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에디슨, 뭐 도울 수 있는 게 있나 봐봐, 너한텐 아무것도 아니잖아."

발터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에디슨이라 불린 여성은 플랑크보다 살짝 어려 보였고, 머리 뒤로 깔끔하게 묶은 푸른색 장발에, 딱 맞는 양복에 잘 드러나는 매끈한 몸매, 반면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을 대여한 발터는 다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Livehouse..." 에디슨이 두 눈으로 전단지를 훝었다.

"고급 음향장비 보유중."

발터가 손을 비볐다. "음향 장비는 다 있습니다."

"어떤 거?" 에디슨의 눈썹이 올라갔다.

발터는 솔직하게 나열했다.

듣고나서, 에디슨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플랑크, 전화기 좀 빌리죠."

그리고 발터는 그녀가 능숙하게 자신이 "초고가"로 생각했던 장비와 악기들을 나열하는 걸 들어야 했다.


"여기 주소로 보냈어, 재고가 없던 것들은, 못해도 내일이면 도착해 있을 거야." 수화기를 내려놓은 에디슨이, 발터에게 말했다.

발터는 식은땀이 났다. "저... 이런 걸 그냥 받을 순 없어요!"

"나도 너 같은 알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플랑크가 무슨 말을 해줬는진 모르겠지만." 에디슨이 경멸하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네게 뭔가 특별한게 없다면, 평생 이 돈을 갚아야 할거야."

그러자, 발터가 총알 같은 속도로 질문했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테슬라를 설득해서 네 Livehouse 공연에 오게 하면, 빛은 없던걸로 해주지."

발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테슬라? 누구죠?

"그래, 테슬라." 왠지 모를 살기가 에디슨의 얼굴에 나타났다. "자기만 바보인지도 모르고, 더러운 성격에 폭력적, 그 나이 먹고도 트윈테일에, 하나로 묶으라니까 나랑 싸우고, 실험실을 폭파시키겠다고 협박을 하질 않나. 빨간 머리에 빨간 안경, 거기에 빨간 망토까지 하는 우려스러운 미적 감각까지.

에디슨이 한숨을 쉬었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지는 녀석이란 거지."

발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 왜 이런 사람을 찾는거죠?"

에디슨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왜? 네가 알 필요 없어. 이건 너한테도 좋은 일이야, 내가 너무 친절해서 공연할 사람까지 구해주잖아?"

"내 학생들에게 너무 관여하진 마." 플랑크가 탁자를 두드렸다.

"너도 테슬라가 일부러 널 피하는걸 알고 있잖니."

"못 본 지 오래 되었으니까요." 에디슨의 살기가 사라지고, 고개를 기울여, 순수한 미소를 내비쳤다.

"무대에서 만나는 게 정말 기대되네요."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 플랑크가 의자에 앉았다. "학생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내 의무니까."

"플랑크, Livehouse는 젊은 사람들이 최신 유행하는 록을 연주하는 곳이지, 당신의 우아한 바이올린이 데뷔할 곳이 아닙니다."

발터가 플랑크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떠올려보니, 확실히 바이올린과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에디슨의 비꼬는듯한 미소에, 플랑크도 잘 꾸민 미소로 답했다.


"그럼, 방금 말했던 사람이... 아, 테슬라라고요...?" 발터는 앞선 두 사람 간의 대화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 내 귀여운 제자지. 사실, 난 테슬라가 몰래 베이스를 연습해왔지만 아무도 초대를 안 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어." 플랑크가 발터에게 윙크했다.

"그리고, 그녀가 불쌍해 보인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돼. 그랬다면, 거부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널 날려버릴지도 몰라."

플랑크가 잠시 생각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절대 에디슨이 찾는다고도 하지 말고, 만약 그랬다면, 거부하는 건 당연하고, 분명 널 날려버릴 거야."

발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플랑크는 펜을 꺼내,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여기가 테슬라의 임시 주소야."

그녀는 종이를 접어, 발터에게 넘겨줄 때,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맞다, 테슬라 말고도, 거기엔 한 명이 더 있어. 그 사람이 있다면 분명 네 Livehouse는 만석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설득할 거란 확신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너무 자기 생각만 하고 살거든."

발터가 잠깐 굳었다.

"긴장하지마." 플랑크가 발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들 사이에 좋은 인연이 있을지도?"


현재, 발터는 긴장한 모습으로 작은 집 앞에 서 있었다. 번화가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장소였지만, 마치 깊은 숲에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그는 벨을 누르고, 플랑크의 이름과 함께 온 이유를 설명하자, 놀랍게도 별다른 질문 없이 문이 열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문을 넘어가자, 안경너머의 깐깐한 눈길을 느낄수 있었다.

정말로 빨간테 안경.

에디슨이 말했던 대로, 트윈테일을 하고 있는 테슬라는,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네 공연장에서 공연? 난 그런 무너져가는 곳은 관심없어."

발터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뇨아뇨...뭐라고 해야 하나, 일반적인 공연장과 비교하면, 좀 더 전문적이라고 할까요." ㅡ 테슬라가 거절하자, 발터는 당황스러웠다,

"관객들도 록에 매우 까다로워서,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지금 내 베이스 솔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야?!" 테슬라가 불만인 듯이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기타 솔로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베이스 솔로가 더 신선할 테고, 거기에 더 나은 공연 수준으로..."

발터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대방을 띄우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당신의 뛰어난 솔로 공연 이후에, 뒤이어 같은 전문가급 수준의 사람들이 이어나간다면, 공연이 더 볼만해질 겁니다."

"흥, 나 혼자서도 충분해." 테슬라가 한걸음 나오더니, 발터의 가슴을 찔렀다.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발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혼자 공연하기에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끼리 스파크 튀는 모습을 보여줘서 관객들이 보고 싶게 만들자는 겁니다."

"어? 지금 스파크라고 했어?" 그때, 안쪽에서 늘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이 짧은 와이셔츠를 입은 남색 단발 곱슬인 소녀가, 맨발로 나와 곧장 테슬라 곁으로 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차지했다.


발터는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좋은 설명에 만족하고 있을 때, 테슬라는 남색 머리의 소녀를 밀어냈다.

"야... 다 일어난 애가 왜 나한테 달라붙어?!"

밀려난 남색 머리 소녀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래. 그리고, 벨이 울리자마자 부산스럽게 옷을 입고 내려간 건 너잖아?

"무... 무슨 소리야?! 테슬라가 빠르게 남색 머리 소녀의 입을 막았다, "넌 왜 벨소리를 못 들었는데?"

"작업 중이여서, 작업 중엔 방해받으면 안 돼." 남색 머리 소녀가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위층 창문으로 보니까 긴장해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밌더라고."

"음..." 발터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긴장한 탓에, 발터의 눈에는 남색 머리 소녀만이 눈에 들어왔다.

"어딜 보는 거야?!"

테슬라가 날카롭게 째려봤다.

발터는 그 단순한 머리로 플랑크가 자신에게 해준 말을 기억해냈다.

"같이 사는 사람..." 이 남색 단발 곱슬머리의 소녀를 말하는 거겠지.

"여기서 멍때릴 시간이 있으면, 내 베이스 구하는 거나 도와!" 테슬라가 발터를 다시 밀었다.

"...공연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건가요?" 정신을 차린 발터는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뭣?! 베이스도 없이 베이스 연습을 했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테슬라가 발터를 발로 찼다. "내가 베이스가 없었으면, 너보다 더 화내고 있겠지!"

정말로 괜찮은 걸까... 발터는 걱정되기 시작해, 다른데 정신이 팔린 소녀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럼... 저 아가씨도... 같이 가나요?"

"또, 아인슈타인 얘기를 하는 거야?" 곧바로 떠날 준비를 마친 테슬라가 발터의 말을 듣자마자 되돌아왔다.

아인슈타인이라 불린 소녀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건, 너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

그제서야 발터는 저 소녀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조금이나마 정리하려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인슈타인이 머리 정리를 마치자, 더 헝클어진 것처럼 보였다.

머리 정리를 마치고, 아인슈타인은 다시 발터를 향해 미소를 지었는데, 마치 평범한 사람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였다.


발터는 WELT Livehouse 무대 위에서, 관중석을 까맣게 메운 관객들의 모습에, 잠깐 현기증이 일었다.

이런 비현실이, 무대 뒤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베이스를 튜닝하던 테슬라가, 어떻게 이런 허접한 공연장에서 이렇게 좋은 베이스를 가지고 있냐고 웅얼거리고 있었다.

발터는 소리 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베이스를 보낸 게 에디슨이란 걸 테슬라가 알아채면, 분명 다섯 대 정도는 맞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터가 처음으로 플랑크를 관객들에게 소개한 후에, 무대 아래서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찾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소녀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나른한 미소는 마치 그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듯했다.


흰옷의 플랑크가 무대 위로 올라왔고, 바이올린을 세팅하자, 활을 따라 맑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악기와 비교하자면, 바이올린의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발터의 경우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점점 주인의 성격과 닮아가는 것 같았다.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주인의 성향에 맞춰 천천히 다른 소리를 내게 된다고 한다. 즉, 모든 바이올린은 전부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발터는 무대 밑의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몇몇은 그 대학교의 학생일 것이고, 그중 몇 명은 플랑크의 전공을 듣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터가 Livehouse 바깥의 거리에 붙인 공연에 오라는 포스터를 보고 왔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애초에, Livehouse는 록 음악을 하는 무대지, 이런 "콘서트"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터에게도, 그저 한두 개의 코드만 반복하고 있는 플랑크의 연주가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다.

결국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꺼져라! 이런건 록이 아냐!" 등을 외치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플랑크는 당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이때, 규칙적인 드럼 소리가 커튼 뒤에서 나기 시작했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관객들이 하나둘 멈추더니, 호기심에 이끌려 방향을 돌렸다.

드럼 소리가 천천히 빨라짐에 따라 플랑크의 연주 또한 빨라져, 백색의 드레스가 좌우로 펄럭였고, 바이올린의 음색도 맑은 소리에서 신나는 소리로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플랑크가 아무리 드럼의 박자에 따라가려 해도, 드럼이 계속 바이올린에 반 박자 앞서고 있었다.

발터와 관객들은 현이 망가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바이올린을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 놀랍게도 플랑크는 오른손의 활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왼손은 어깨 위에 있던 바이올린을 가슴 위로 옮기고 손가락을 조절하며, 손안의 바이올린을 몇 번 돌리더니, 오른손을 몸통에 올려 기타처럼 바이올린을 치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나고 나서, 플랑크의 손가락이 현에 베여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드럼과 경쟁하듯 치고 있었다.

음울한 소리가 Livehouse에 울려 퍼지면서, 관객들의 눈이 풀리려 할 때, 갑자기 ──

"쾅!"

플랑크가 마지막 음을 치는 것과 동시에 왼손을 놓아 바이올린이 땅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이게 록이지" 손목으로 흐르는 피는 무시한 채로, 플랑크가 천천히 박수를 쳤다.

이 상황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환호성도, 야유도 없어, 이 공연에 충격을 받은 건지 단순히 놀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공연장을 나가려 했던 관객들은 서둘러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발터에게는 마치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 상황을 만든 "범인" 플랑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신의 오른손에 밴드를 몇 개 붙이더니, 발터를 다시 끌고 갔다. 그녀의 소개 아래, 발터는 드럼을 연주한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커튼이 천천히 열리면서, 드럼 연주자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녹색의 고양이 귀 모자를 쓴, 무표정의 롤빵 머리 소녀.

더욱 이상한 점은, 그녀가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

드럼 소리는 역동적이었지만, 표정 변화 없는 소녀와 너무나도 귀여운 고양이 모자는, 사람들에게 역동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지 못했다.

"고양이 귀에 록이 웬 말이냐!" 관객 중 한 명이 외쳤다.

"안경은 왜 쓰냐!"

"열정이 없어!"

"이건 록이 아냐!" 아까와 같이, 많은 관객들이 반발했다.

"틀을 깨고,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록입니다." 발터가 재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슈뢰딩거가, 너희들에게 진정한 록을 알려줄 거야!" 플랑크가 자신 있게 말했다.

"냥!" 드럼 옆에 세워진 마이크에서 맑은 고양이 소리가 나자, 드럼이 멈췄다.

발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이거 록이 아닌 거 같은데..."


한편 무대 뒤에서는, 간간히 줄을 튕기는 낮은 소리가 나고 있었다. 관객들을 향한 불만의 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테슬라가 빨간테 안경과 어깨를 드러내고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한 흰색 공연 의상을 입고, 베이스와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빨간 스타킹은 테슬라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재차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발터는 무대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럼이 관객을 리드하고, 베이스가 따라가는, 평범한 록의 시작으로, 마침내 공연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안경 쓰는게 왜?!" 테슬라가 무대에서 소리쳤다, "안경 쓰면 록이 아니라고?!

"그래..." 관객들이 간간히 대답했다.

테슬라는 으르렁거리더니, 슈뢰딩거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안경을 벗겼다.

"난 안경 두 개 쓰는 게 좋거든!" 테슬라가 슈뢰딩거의 안경을 머리위에 얹었다.

발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계속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테슬라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관객에게 인사를 한 후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저음의 강렬한 코드는 관객들이 안경에 대한 일을 잊어버리고, 테슬라의 베이스 솔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발터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일말의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아래 관객들이 전부 귀를 막았다.

에디슨이 기타를 들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테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가 왜 여기 있어?!" 테슬라는 충격을 받은듯하더니, 이내 에디슨에게 소리쳤다.

"어때? 그 베이스는 쓰기 쉬울걸!" 에디슨의 시선이 테슬라의 베이스 쪽으로 내려갔다.

"뭔... 이 베이스는..." 테슬라가 베이스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시작 전엔 보물처럼 다뤘던 베이스를, 이제는 뜨거운 감자처럼 들고 있었다.

"이제, 너랑 결판을 낼 시간이야!" 에디슨이 테슬라에게 도발적인 손짓을 했다.

테슬라는 다시 차분해진 것 같았다, "결판? 넌 아직 초보 레벨에도 못미치잖아?"

"아, 그래서, 그 베이스를 쓰기로 했구나." 에디슨이 상관 없다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테슬라의 아픈곳을 찔렀는지, 테슬라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오늘 진정한 강자는 좋은 악기가 없어도 된다는 걸 증명해주겠어!"

테슬라가 트윈테일을 흔들더니, 오른손으로 베이스를 쓸어내렸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열심히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대에는 드럼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런 공연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마음속에 진정한 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플랑크가 감격하며 말했다.

"아니... 무슨..." 발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에디슨이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나도 따라가 주지."

그녀도 에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치고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발터는 관객들이 떠나가려 할 때 에디슨이 나와 막 연주를 시작하려 하자 소리 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변한게 없었다.

두명이 무대위에서 미친듯이 무음으로 날뛰고 있자, 관객들은 불평하며 나갈 준비를 하거나, 무대 위로 손가락 욕을 하기 시작했는데, 할 법했다.

"이제 여기는 끝났어..."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발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때, 작게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발터의 옆을 지나갔다.

발터가 돌아보자, 흰색 형체는 이미 무대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소녀의 하얀 코트 위 칼라에 달린 네모난 장식들이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처럼 헝클어진 남색의 곱슬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지 않기 위해 했던 머리핀도 풀어, 앞머리가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외모는 둘째 치더라도, 목소리가 이미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인슈타인에게서 나오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꽂혔다.

이미 있던 규칙적인 드럼 소리는, 노랫소리가 리드하려하자, 박자가 튀는 것 같았다.

거기에 반응한 테슬라가, 왼손을 베이스 핑거보드에 올리더니, 오른손으로 천천히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좋은 베이스였기에, 음악에 뼈대가 생기고 있는 듯 하였고,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야, 기타가 별로면 저기 키보드나 치지그래!" 테슬라가 에디슨을 향해 소리쳤다.

"날 무시하지마!" 에디슨이 자세를 잡고, 간단한 코드를 몇 번 치더니, 천천히 따라 들어왔다.

누가 리드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인슈타인의 목소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맑은 목소리였지만, 발성 방식을 살짝 바꿨는지, 톤이 조금 낮아지고, 질감이 거칠어져, 록의 분위기가 더해졌다.

아인슈타인은 테슬라의 곁으로 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테슬라의 등에 기대었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발터는 안도했다. 이 마지막 공연이 드디어 WELT Livehouse에 인기를 가져다준 것 같았다.

그리고, 무대 위의 아인슈타인과 살짝 눈이 마주쳤을 때, 발터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해 미소 지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환호성 속에 묻혀 금방 사라져 버렸다.


1982년 10월

"으... 왜 나보고 정리하라고 하는 거야, 그냥 다 갖다 버리면 될 것을."

테슬라가 쪼그려 앉아 낡은 신문지들을 헤집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낡은 물건만 쌓인 채로, 오랬동안 아무도 이 방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테슬라는 공기중에 떠다니는 이상한 냄새를 맡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어? 이건 뭐지?" 테슬라가 무더기로 쌓인 종이뭉치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오랫동안 옛 신문 밑에 있던 글씨가 빼곡한 종이 몇 장.

"아인슈타인 글씨체네... 무슨 공식 초안인가?" 테슬라가 한 장을 빼서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내려갈수록, 종이를 쥐고 있는 테슬라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설을 써놓은 거야!"

바닥에 드러눕더니, 다른 원고들도 집어 들었다.

"내가 언제 이런 정신 나간 공연을 했다는 거야!"

바람이 불어와, 원고 몇 장이 옆으로 흘러갔고, 밑에 있던 형형색색의 그림이 드러났다.

테슬라가 황급히 확인하니, 포스터였다.

"네겐트로피 밴드?!"



"아...아인슈타인 자식이!" 아인슈타인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면서, 테슬라는 화를 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소설에 이런 것까지 그려?!"

그리고, 테슬라는 포스터 구석에 있는 문구를 보았다

"WELT"

포스터를 놓고, 남은 원고들을 가져와 주연을 찾아보았지만, 그 불행한 녀석의 비중은 많지 않았고, 그저 원고 곳곳에서 느긋하게 나타날 뿐이었다.

마침내, 테슬라는 한숨을 쉬더니, 대충 던져놓은 포스터를 가져와 다른 원고들과 하나로 합친 뒤, 다시 옛날 신문지 밑에 되돌려 놓았다.

"휴... 아인슈타인 녀석."

테슬라는 창밖을 바라봤다. 가을이 오고, 새해가 온다. 잎이 떨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테슬라의 독백이었다.


1983년 1월

"갑자기 나한테 네겐트로피 연간 행사에 오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었어." 플랑크가 와인잔을 들고, 가볍게 웃었다. 밝은 녹색의 장발은 우아했고, 살짝 희끗했다.

"내 학생들은 아직도 열정적이네."

두 명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아인슈타인과 테슬라였다.

"테슬라 누나 ── 아니, 테슬라가 제안한 거였어요." 35세 근처로 보이는 고상한 안경을 쓴 연한 갈색 머리 남자가 플랑크 근처에서 대답했다.

"아직도 버릇이 안 고쳐졌네, 네 지금 모습으로 저 두 명한테 누나라고 부르면, 분명 변태 취급받는 다니까."

연갈색의 신사가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그러겠죠, 특히 여기는 현재 진짜 젊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벽에 기대고 있는 진한 보라색 장발의 남성을 바라봤다.

"라이덴... 료마." 플랑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겐트로피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의 눈을 북미지역에 국한하지 말고, 전 세계에서 인재들을 구해야 해."

플랑크의 문장이 끝나자, 아인슈타인과 테슬라도 공연의 첫 곡을 막 마쳤다.

사람들이 자기 주변으로 모이길 기다린 후, 플랑크가 천천히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새로운 네겐트로피와, 새해를 위하여, 건배!"


THE END...?


에디슨 밴드 보고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