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노벨 모음


이소상은 출생시 두근 삼량의 무게였는데, 한자루의 검과 비슷한 중량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고, 아버지인 이신은 어머니에게 직접 말하기를:

"이 아이는 살지 못합니다."



그러자 당시 아직까지 몸조리 중이던 진소의가 답하길:

"소상이 살지 못한다면, 이는 그녀의 운명이겠지요.

운명을 원망하지는 않으나, 둘째를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그대 이가의 대가 끊기는 것 또한, 운명의 결과일 겁니다."


들리는 바로는, 아버지는 당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다행이 유모와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이소상은 살아남았고, 아주 잘 살게 되었다.

소상이 생후 한 달이 되는 날, 이신은 유명한 역술가 "소반선"(小半仙)을 산장에 초대하였다.


소반선이 거드름을 피우며 주문을 외우고는, 소상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크게 외치기를:

"소장주는 천생이 검태요, 운명은 비범하고, 인중에 용봉이 있으니, 지존의 상이라!"


이 말에는 여러가시 해석이 있었지만, 크게 기뻐한 이신은 장차 딸이 그의 꿈을 이루고, 무림의 지존이 될 것이라 여겨, 연회를 열고, 크게 축하하였다.

하지만 연회의 주연은 자리를 비웠다.


진정한 [선인]의 제자인 진소의가 촌극의 끝을 냉랭하게 지켜보고는, 딸을 안고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침실로 돌아가, 딸을 푹신한 방석에 앉혀두고는, 한켠에 작은 목검을을 여러자루 놓았다.


어린 소상은 손을 뻗었지만, 검을 쥐지는 못하였고; 진소의는 아무말 없어,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기억마다, 이소상은 검과 함께였다, 이소상은 철이 들기보다, 검을 먼저 알았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기이한 심법구결을 외우라 하였고, 아버지은 열두가지 억심검보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이소상이 어릴적부터 무예를 단련하며 보낸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어린 소상은 스스로 무공을 연마하는 것도 참아내고, 가문의 억심검법을 익히는 것도 잘 하였건만, 어머니는 한사코 그녀를 사막으로 보내 [입문] 시키려 하였다.



이에 대해, 어린 소상은 그저 칭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의 나이가 어린 탓에, 막북, 남강과 같은 지방의 개념이 없었고, 천리 밖으로 떠난다는것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사막으로 가기로 정한지 수일 후, 산시성(陕西)에서 덕망높은 석연(石硯)도인이 억검산장의 객으로 찾아왔다. 귀객이 내방하니, 아버지는 소상이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유모에게 후원으로 데려가 검을 연마시키라 하였다.


유모가 나이가 있어, 다리가 좋지 않으니, 소상은 그 틈에 후원을 벗어나, 평소와 같은 자리에 숨어 방을 지켜보았다.



"이 장주, 별일 없으셨는지요."


이신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맛보며, 아내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이 억검산장이 강호에서 높은 명성을 누릴수 있는 것은, 이신이 있어서가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 태허산 정위진인 제7제자, [염향검][染香劍] 진소의.


당시, 정위진인이 승천하지 아니했을때, 신주 무림맹의 맹주를 논하자면,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강호전설로는 정위라는 진선이 속세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불로장생, 용모수려, 무고의 조예가 시대를 빛낼 정도라 했다.


불과 10년 전, 태허산이 돌연 금빛에 휩싸이고, 선인은 승천했으며, 불은 태허산을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무림은 충격에 빠졌다, 알기로는 속세에 천년을 머무셨다는 선인이, 하루아침에 승천을?

선인은 세상을 떴고, 이 문제의 해답은, 바로 선인의 일곱제자 [태허칠검]에게 떨어졌다.


노 도사는 차를 한모금 하고는, 덮개로 잔을 두드렸다, 무림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먼저 말하더니, 기어코 화제를 선인의 일로 끌고간 것이다.

"진 여협을 속이는건 아닙니다만, 이 빈도는 젊은시절 스승의 의에 도움을 받아, 지금도 감사를 느끼고 있고, 직접 말하지 못함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아, 정위진인이 언제 속세에 다시 오실런지요."


진소의도 찻잔을 들고, 웃으며 말하길:

"신선의 일을, 어찌 범인이 짐작하겠습니까? 도장께서 선연이 있다면, 훗날 다시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도인이 크게 웃고는, 다시는 정위진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도장을 일어나 떠났다.


아버지가 배웅하더니, 돌아오고서는 낮색이 어두웠다.

"당신 저 노인네가 왜 왔는지 알아? 우리 태허검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우리?"



이소상은 어머니 말 속에 있는 경멸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기억으로는, 부모님은 항상, 항상... 다른 부부처럼 친밀했는데.

그녀는 이런식으로 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만약 태허검기를 탐하는 [노인네]라면...

당신은 뭐죠?"


"나? 소의, 나... 나는 당신에게 진심이야, 해와 달에 맹세코 -"


"해와 달은 치워두시죠, 저는 이제 그때의 소녀가 아닙니다."


진소의가 담담하게 말했다:

"당초 저를 곤경에서 구원해준 것은, 제게도 너무나 좋아서, 당신과 혼인을 동의할 정도로, 태허검기를 알려줄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것이 가식이든, 진심이든 - 저는 마냥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숨겨지지 않는 법입니다. 당신이 검심을 수련할 수 없을때 무슨 말을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근 몇년간은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신, 부부는 한 마음이라 하니, 그런 태도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한것에, 사랑은 거짓이고, 원한건 태허검기, 이게 진실입니다."


"소의..."


"하, 됐습니다, 이게 뭐라고. 당신 일이나 말해보시죠."


아버지가 잠시 침묵했다.

"필부는 무죄이나 회벽은 기죄요(匹夫無罪 懷璧其罪). 당신이 태허검기의 기공을 지녀, 강호에 노리는 자가 적지 않아.

현재는 정위진인의 명성이 자자하고, 칠검의 이름이 사람을 압도하나, 언제까지 이럴지는...


...허상은 애당초 진실이 아니기에, 종이위의 묵향처럼, 언젠간 흩어지기 마련이야.

어느날 당신의 비밀이 무림인들에게 들킨다면..."


"당신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억검산장도, 당신도 절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래, 지금이야 이 일은 나와 당신만이 알고 있지만, 종이로는 불씨를 감쌀수 없어.

당신의 그 사형... 지난번 방문했을때, 그 눈빛을 봤어?

만약 내가 뭔가 눈치챘다고 하면, 당신은 날 얼마나 비웃을까?"


진소의가 말이 없자, 이신이 계속 이어나갔다:

"당신 말에 따르면, 내게 검심은 희망이 없지만, 소상은 완전한 태허검기를 배울수 있다 했어; 당신이 소상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도 알-"


"당신이 소상에게 거는 기대겠죠."



"맞아, 맞아... 하, 그게 뭐 어때서?


그 아이는 당신과 나의 딸이고, 검을 타고나고, 자질이 탁월한데, 당신이 태허검기를 가르치기 부족하다는 거야?

대체 왜 그 멀리까지 보내려는 거야, 우리도 곁에 없을 텐데,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의 그 다섯째 사저... 무슨 재주가 있길래, 소상이 그녀에게 가야 한다는 거야?!"


그가 말을 마치자, 진소의가 입을 열었다:

"태허검기에는 다섯가지 온이 있습니다."


"...응??"


"심, 형, 의, 혼, 신 - 검심과 검형은 당신도 알 겁니다. (心, 形, 意, 魂, 神)

후의 3온은 당신에게 말한 적이 없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요."


진소의가 경멸하듯 흥 소리를 내었다:

"흥, 고의로 속인 것은 아닙니다만, 검심조차 연마하지 못하여, 후의 3온과는 연이 없을진데, 어찌 부질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검심은 내 태허검파의 근간이고, 검형은 태허검기의 입문으로... 이는, 우리 일곱이 모두 능숙합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아련해지더니, 냉랭함이 줄어들었다.

"저의 [묵염향][墨染香], 그 신기의 이능이... 바로 검의입니다.

사부께서 우리 모두에게 헌원검 한자루를 주었으며, 깨달은 검의가 다르니, 그 변화의 모습 또한 달랐습니다.

사저와 사형들 중 오직 다섯째 사저만이 의온을 깨닫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추억에 잠긴듯, 한참을 있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소위 검혼은, 검술의 본질입니다.

검의 도는(道), 수없이 많지만, 검 그 자체는 그저 기댈 물건에 불과합니다;


혼온을 깨닫는다면, 세간의 모든 병기를 검처럼 사용하며, 검형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검술이 대성할 수 있습니다."


"세간의 모든 병기를 검처럼..."

이신은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태허검기, 태허검기! 역시 신공이오!"


"네."


진소의가 꿈에서 깨어난 듯, 아련한 목소리가 가시고, 또다시 냉랭한 어조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혼온 위에. 신온이 있습니다.


소위 신자란 - 계책 없이 계책을 이기고, 검 없이 검을 이기니; 검기에 의지가 있고, 신이 된 검, 이는 곳 검신이라.

신온을 깨달은 자는, 5천 년간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사제 8인 중, 오직 사부와 5사저만이 검신의 경계에 닿았습니다.


사부께서는 상선의 몸이시니, 놀랄것도 없지만; 5사저는 범속의 몸으로 검신을 자유로이 수련하니... 하하,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그러기에..."


소상은 창문의 작은 틈으로, 어머니가 아버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는걸 보았다.

"소상은 5사저에게 검을 배워야만 합니다. 능상(凌霜)이 아닌, 다른 사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소상을 최강의 검사에게 붙여, 최고의 검법을 가르칠 것이고; 그녀가 검신을 깨닫게 하고, 제 헌원검을 주어, 사부가 작고하신 이후, 유일하게 태허오온에 정통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겁니다.


저는, 소상을 천하제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소상이 숨을 죽였지만,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소상이 10년을 배워야 한다면, 막북에서 10년을 기다릴 것이고;

20년이 필요하다면, 20년을 기다릴 겁니다."



아버지를 노려보는 어머니의 눈빛에는, 방해를 용납하지 않는 집요함이 배어있었다.


"소상을 당신의 억검산장에 묶어두지 마세요, 그보다 훨씬 커질 테니까요, 알겠습니까?

당신이 어찌하든 신경쓰지는 않겠습니다만, 소상에게는 떨어지고, 제 딸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세요.


당신이 누구 덕분에 다시 이가의 가문으로 돌아오고, 무공과 가업을 얻게 된 건지 잊지 마시길."


어머니가 이 말을 던지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신은 제자리에 서서 오랬동안 움직이지 않았지만, 두 주먹을 움켜쥐는 소리가 들렸다.


소상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놀라고, 기뻐했다.

(천하제일...?)


그녀는 어머니가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는줄 몰랐다.

그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단어일수도 있지만, 소녀의 작은 마음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빛이 나타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천하제일이... 된다?)


그녀가 침을 삼키고 눈을 비비며 일어서려 하자, 소백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억검산장의 여주인 진소의가 앞에 서 있었다.

미소를 짓는 어머니였지만, 슬픔과 미안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다 들었니?"


"네..."


소상은 문득 어머니에게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몸을 숙이더니, 손으로 소상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이렇게 어린데, 엄마를 위해 변방에서 무를 배운다니... 정말 힘들겠네.

앞으로는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네가 검을 배우고 나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엄마가 고민이 많기는 한데, 지금 네게 말해도 넌 이해 못하겠지.

이 강호에 있다보면, 많은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다. 그리고...

넌 살아야 한다, 소상아, 넌 잘 살아야 해. 약속해."


소상이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고는, 약간 기가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일말의 감정만을 느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는 책임이 자신에게 지워져 있다는걸 깨달았다.


진소의가 소상의 손을 잡고, 따스하게 웃었다.


"따라오렴, 엄마가 네게 줄 선물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