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나코니의 주제와 철학에 대하여 -1-

https://arca.live/b/hkstarrail/106760065



이 글은 전/후반으로 나눈 글중 후반에 해당함


그러니 전반을 안본사람은 전반을 보고싶으면 보고 보던사람은 마저 보면된다.


어디까지 했나.


그래 선데이의 사상은 선하긴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직접 대면하는것을 피했으며 독선적이라고 했지?


그건 논리적 측면이고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고퍼우드나 선데이가 다른 마음을 먹었을 경우다.


선데이가 아~질렸다 그만할래 해도 파토.


고퍼우드가 난 사실 질서의 부활이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었는데? 해도 파토.


꿈을 구성하는 스텔라론or에나의 권능에 문제가 생겨도 파토.


쒸...빨 아무튼 꿈을 영원히 유지하기전에 터질 가능성이 한둘이 아닌데




그래도 난 솔직히 그걸 다 알면서도 선데이의 계획에 찬동한다.


내가 전 글에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지만 공산주의를 언급한 이유를 말해줄께


플라톤의 국가론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게 뭔지 아나.


바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것이다.


국가론에서는 지배층은 사유재산을 금지하는 명예직으로 함으로써 지배층이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했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생산품을 국가가 통제하여 욕심은 부리고 싶어도 못부리게 했다.


2천년전 플라톤도 바로 몇백년전 마르크스도 개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는게 이상적인 사회 구축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본거야.


정녕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게 이상사회 건설의 전제라면 이런 이상론들은 절대 실현하는게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걸 실행하려면 정책적 통제말고 전제되야하는 조건이 딱하나 더 있어.




바로 성선설이다.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남을 위하고 남의 빵을 뺏어먹을 생각도 안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가능할것이다.


허나 세상은 착하게 살면 빼앗긴다.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는말이 괜히 있는게아니야.


코베어갈 생각을 하는놈들이 있으니까 선량한 사람들도 매사에 코베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것이다.



예수님이 뭐랬어?


네 이웃을 사랑하고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원수를 용서하라.


서로 사랑하라고



부처님이 뭐랬어?


욕망이 너를 불행하게 하는것이다. 욕망을 버려라


삼독을 버리라고



이 말들이 무려 2천년 이상 전에 설파되었지만 인간들은 쌩까고 산다.


대다수의 사람은 욕심을 버릴 수 없다.

그렇게 말해도 말그대로 쇠귀에 경읽기야.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자원이 무한하지 않은 한. 남의 것을 빼앗는것만이 내 욕망을 채울 유일한 수단인것이다.



선데이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약육강식. 사람이 지성과 이성을 갖추어도 결국 있는자가 없는자의것을 빼앗는 짐승의 욕망은 어찌 할 수 없다는것을.


그럼 은 뭐야?



모든 사람이 서로 빼앗지 않아도 되는 무한한 자원을 가진 세상을 만들어 내면 되는거아냐?


오...?


천재다 천재 


오오 선데이님



물론 엄밀히 말해서 꿈세계는 무제한이 아니지만 현실보다야 훨씬 자유롭고 제한이 적다.


최소한 생산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없잖아?


생산자가 없다면 생산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자아 실현과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훨씬 많이 쓸 수 있게된다


전에 정의론에서 말했듯이 출발선이 평등하지 못한것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는데


꿈을 관리하는 5대 가문은 관리자니까 위계가 있지만 


손님들은 모두 평등하며 현실의 신분을 꿈속에서까지 신경쓰지않아도된다.


그냥 각자 원하는 꿈 영역에 가서 즐기면 되는거야.





수많은 학자들이 인류 유사이래 계속 고민했으나 


인류는 아직까지 완벽한 사회이론 따위는 찿아내지 못했다.


인간의 역사는 실험의 역사라 할 정도로 매시대 사회를 유지하는 도덕과 규범이 바뀌어왔다.


민주주의도 그냥 그럭저럭 모두가 만족하며 살만한데? 싶으니까 주류로 떠오른거지 민주주의는 결코 절대적인 사회체계는 아니다.



내가 선데이의 계획에 찬동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은 꿈과 평등을 이루지 못해도 그때그때 만족할 수 있다면 살아갈수 있다.

설령 거짓세계라도 현실과 구분이 안가며 자신의 몫을 제한받지 않고 최대한 자아를 실현 할 수 있는곳이있다면


그곳은 약자들에겐 낙원이라 할 수 있는곳이다.




선데이의 낙원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지고있는 문제를 잊어도 되고


모든 사람이 현실사회에서 뭘 얼마나 쌓았는지 신경쓰지않아도 되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대로 자아실현에 써야할 시간을 원하는 만큼 쓸수 있다.

 



확실히 그의 사상이 공평은 보장되어 있으나 존중이 결여된건 사실이다.


however.


정의론에서는 사회 전구성원이 불평등을 겪는 제도를 시행한다 하였을때


최소 수혜자, 즉 그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자들이 그 불공정을 정당하다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꿈에서 향락이 아닌 구원을 얻는자들은 누구인가?

약자들이다.



있는자들은 그저 페나코니가 휴양이나 각지에서 모이는 저명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사교의 장으로 생각하고 오지만


페나코니에는 현실에 고통받고 절망하여 찿아오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공리주의가 도덕적으로 갖는 딜레마중 가장 큰게 뭐냐면 그렇다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손해를 봐야하는 소수는 무슨죄냐는건데


가장 유명한 예시가 이 트롤리 딜레마




또 다른 예시는 모든 마을 주민들이 행복하고 불편없이 사는데 


이 행복이 유지되는 조건은 어느 지하실에 죄없는 아이가 갇혀 고통 받아야만 한다는것이다.


그럼 마을 전체의 행복을 위해 이 죄없는 아이가 고통을 받는게 옮으냐 라는것이다.



공리주의는 사회학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론이지만 그만큼 딜레마도 크다.


허나 선데이의 사상은 선데이 본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선데이에게도 그렇게까지 불이익은 아니다.


그냥 나만 꿈속에는 못들어가고 꿈을 관리해야한다는건데...


스스로 십자가를 매고 싶어서 매신다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시부럴것들아!!




즉 선데이는 공리주의정의론 양쪽의 이점을 동시에 취하면서 도덕적 약점을 최대한 피한것이다.


사회 전체가 불이익(?)을 보지만 약자에겐 이익이고.


공리주의에서 99의 행복과 1의 희생은 저울질해선 안된다고 말하지만 선데이가 총대를 매긴해도 고통받거나 희생되는건아니다.

선데이의 사상전반은 확실히 존 롤스의 정의론을 염두에 두고 짠것이다.


선데이는 평생 약자를 외면치 아니하고 조화속에서 끝내 질서의 권능을 이용해 자신이 생각한 낙원을 건설하려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의론을 알면 알수록, 결말을 본 현재까지도, 선데이가 틀렸다고 말하기 힘든것이다.



물론 선데이의 사상은 세세하게 파고들면 때릴곳이 많긴 한데 


아니 시1발 게임스토리에서 이런 방법으로 철학적 딜레마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내가 페나코니 3막을 하면서 가장 전율에 몸을 떨었던 부분은 최종전투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었다.


선데이는 공리주의와 정의론이라는 물과 기름을 적절히 타협시켜 답을 내놓은 캐릭터라는걸 깨달은 순간말이다.


신이시여 당신께서는 왜 고작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나 하고 계시는겁니까?


이 때 만큼은 확실히 선데이는 한없이 질서/선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순간 만큼은 그는 스페이스 예수 그리스도다.



남을 깎아서 다른것을 채우거나 자신을 채우는 악당은 존1나 흔하지만


나를 깎아서 남을 채워주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부르나?


영웅이나 성인이라고 부른다.



하...


에나의 꿈속에 들어갈테니까 사료줘


빨리 선데이 찬양해


빨리 선데이 콘만들어 

내가 낙원펀치가 될게...


주0일제 펀치! 공리주의 펀치!


빨리!!!







선데이는 여기서 끊고


시계공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선데이가 철학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시계공과 무명객은 물론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시계공(watchmaker)


현재의 페나코니를 만든, 페나코니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무려 페나코니가 아직 컴퍼니의 감옥행성이었던 시절 아스나다 독립전쟁에 뛰어든 무명객중 한명이다.


초대 시계공의 본명은 레그워크 샤르 미하일 (legwork char mikhail)


폼폼이 페나코니에 도착한 후 무명객들에게 행방을 알아봐달라고한, 과거에 페나코니에서 하차한 세 명의 무명객중 하나다. 



각각 라자리나 / 레그워크 /티어난이다


열차의 차장으로서 폼폼은 정말 오래전부터 열차로 돌아오지 않는 개척을 떠나는 무명객들을 배웅했을것이다.


페나코니에서 내린 세명의 무명객은 물론 아키비리가 아직 존재했던 시절에도 폼폼이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폼폼은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닐 확률이 높다.


아마 열차의 요정이라든가...


어떤 아이온이 아키비리와 계약을 맺고 현재의 모습으로 열차에 잔류하는것이라든가...


미하일은 은하열차의 정비사였다.


원래 열차의 청소부였으나 열차의 항법사였던 아문센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제자로 들이고 열차의 정비사로 기용한다.


이후 페나코니의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그대로 다른 두 무명객과 함께 페나코니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남는다.


시계공의 페나코니에서의 행적은 갤러거나 주변인물들의 입으로 어느정도 알려주지만


고퍼우드나 5대 가문간의 갈등 같은건 좋은꿈의 과거이벤트 기록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시계공은 즉 사실상 무명객들을 초대해 페나코니를 구하게한 장본인이다.



내가 원신이나 붕괴3rd에 비해 스타레일은 주제의식을 당최 알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는 선주 나부까지의 이야기다.


이번 개척임무의 가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개척의 길을 가는 은하열차와 무명객들이 주인공이라면 단언 할 수 있다.


바로 인간찬가다.


시계공이 진짜 오져버렸는데

여기서 이거 생각난건 나뿐임?


붕흐흐흑....


평생을 개척에 몸담았으며 노년에 들어 페나코니의 이질을 느꼈으나 더 이상 자신에게는 상황을 바꿀힘이 없음을 깨닫고 


면밀한 계획하에 자신이 죽은 후에 유산이 은하열차에 전해지게 끔 안배를 해두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자신의 마지막을 알렸다.

그리고 시계공의 유산은 후대로 이어진다.



결국 언젠가 꿈에서 깨어날거니까 라는 답자체가 이미 시계공이 과거에 얻은 답이었으며 유산과 함께 넘긴 답이다.



난 처음 미샤와 미하일을 보고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렸다.


항해를 떠나는 어부노인과 항구에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소년이라는 구도에서 그러했는데


결국 노인과 바다와는 별상관은 없더라구 



아마 개척의 길이란 인간의 길이다.


개척은 꺾이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길일것이다.


본디 은하들 사이에는 허수 에너지가 막처럼 펼쳐져 있으므로 왕래는 불가능하다.


아이온급의 허수에너지 운용 능력이 없다면 은하간의 이동은 불가능했었다 


허나 이는 개척의 길이 생기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개척의 아키비리가 은하열차로 은하간의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은하간의 왕래가 가능해진것이다.


지금까지 들른 행성의 세력들이 모두 각각의 아이온을 섬기는 세력이지만 은하열차만은 환대하는건


생전에 아키비리가 대부분의 아이온들과 나쁘지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기에,


그리고 은하간의 항로를 개척한 아키비리와 무명객들의 업적과 아키비리의 뒤를 잇는 그 의지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는가?

은하열차는 한때 아키비리가 소실되고 항로가 닫혀 운행을 멈추었으나 히메코가 열차를 수리하여 다시 운행하게 된것이다.  


본디 해당 운명의 길을 운행하던 아이온이 소실된다 하더라도 길은 끊어지지 않는다.


끊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길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질서의 잔당들처럼 온전히 운명의 길을 따르지는 않는것같다.


개척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아이온이 소실 되었음에도 아이온 생전의 의지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보인다.


길을 주관하던 아이온이 죽었어도.


열차가 스텔라론에 막혀 한때 운행을 멈췄어도


그것은 언젠가 다시 달리기 위해 서있는것일뿐.


개척의 의지를 상징하는 항법사 아문센의 모자가 시계공을 거쳐 개척자에게 이어졌으며 


그가 남긴 의지와 함께 은하열차는 다시 개척의 여정을 떠나게 될것이다.



이러한 인간찬가적 주제는 붕괴시리즈 내내 내려오던 아주 유서깊은 맛이다.








https://youtu.be/2pbG6CunCAE?list=PLf9L5TXmplp0W6lTiQbl3FOGntCJSwEhv




생명은 왜 잠드는가? 


페나코니를 관통하는 대명제다.



반디는 엔트로피 소실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면 병에 걸린 육체로 돌아오는것이 두려워서.


어벤츄린은 죽은 가족들을 떳떳하게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선데이는 약자들이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게 두려워서 라고 각각 답한다.



허나 개척자는 이들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대답을 내놓는다.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잠드는게 아닌


언젠가 다시 깨어나기 위해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깨어나 다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잠드는 것이지 


잠드는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건 딱히 결말에 와서야 드러나는 주제도 아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말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과거 로빈과의 대화에서 선데이가 깨닫지 못한이유는


선데이는 떨어져 죽은 새는 봤어도


하늘을 날고있는 새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새가 말하잖아?


선데이는 새의 의견을 확인하고 무너진것이다.


아 사실 내가 질서/선이 아니라 질서/악이었구나.


역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짦다고...


아무리 괴롭더라도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내려주는 새장속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해야한다는것을.









결론 


페나코니의 주제는 이 남매의 사상으로 정리된다.



선데이

새가 살았으면 좋겠어요


새는 날기위해 태어났으나 날지 못하는 새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나는것을 시도하기위해 죽을각오도 해야한다.


그러니 자유롭지 못한 새장속에서라도 살았으면 한다.



로빈

새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새는 날기위해 태어난것이지 그저 삶을 부지하기위해 태어난게 아니다.


그 결과가 설령 죽음이라도 본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한다.








영원히 날 수 있는 새는 없다.


아무리 높게 나는 새라 한들 날개를 쉬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야한다.


모든 새가 그렇게 살아가지만 그럴 수 없는 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위에서 강풍과 비바람에 시달리는게 지치고 두렵다면 한동안 날개를 쉬게 해주는것도 방법이 아닐까


최소한 우리는 새장속의 새는 아니니까 말이다.








주제와 결말은 희망차고 긍정적인 교훈이 있어야하기에 이렇게 마무리하지만 


저는 역시 가주님을 지지합니다.


그것만은 알아 주십시오...



그냥 지 식구들만 챙겨서 떠나지 넌씨눈 무명객 은하깡패 쉐리들 칵!



그리고 사실 시계공에 대한 정리가 있는거 보고 그냥 시계공 파트 대폭 잘라냈음


그래서 사실 페나코니 전반이라기보단 선데이 한명에게 소재가 집중됨





마무리로 2.3버전에서는 뭘봐야 할지.


2.2에서 아쉬운건 뭐였는지


마지막으로 하나 더 쓰고 끝낸다.


물론 여기서 내가 캐치한 다른 철학/문학 다털고 끝낼거임.





이전글

페나코니의 주제와 철학에 대하여 -1-

https://arca.live/b/hkstarrail/10676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