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반쯤 불량학생과 친해진건지는 사실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그날따라 사과 주스가 질렸었고, 그날따라 체육 수업때 운동장 외곽을 걷는것마저 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그런 너무나도 우연스럽고 시답잖은 일로, 반에서도 각자의 방향으로 은근히 겉돌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편한 사이가 되었다.

별로 이 녀석이 없으면 안될거 같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막상 없으면 서운하기는 할거 같은 묘한 거리감.

그래도 서로 별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이라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다.


우정. 아마도 그런거겠지. 대충 그런걸 적당스러운 느낌으로 영위해가던 중에 나의 청춘은 잠깐의 불시착을 겪었었다.

기껏 용기를 내서 두 사람만 있는 자리에서 고백을 했지만, 시원섭섭한 대답만이 돌아오고 말았다.

아, 문맥상 스이세이에게 고백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착각하기 쉽겠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그저, 옆반에 있는 다른 여자애. 함께 있으면 안정보단 두근거림을 주는 존재. 괜히 벅차고, 또 괜히 한밤중에도 생각나던 사람. 아마도.


그런 사람에게서 '이성으로 대하기가 힘들다' '잘 모르겠다' 라는 사람 좋은 이미지를 지키려 드는 상냥한 거절의 발언을 듣고서 나는 눈꺼풀이 다섯 번 정도 깜빡일 동안, 이 세상에서 하직할 생각을 해 보았었다.

웬만해선 그런 생각을 오래 하면 정신건강에 좋지는 않다지만, 나는 해도 너무할 정도로 짧게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그야, 나의 척추 부근을 타고 온몸을 울려버리는 강렬한 충격은 사정좋은 좌절감을 고통과 공포, 그리고 생존본능으로 덮어버리고 말았으니까.


"뭘 그렇게 낮부터 늘어져 있어?"


그래.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그 살짝 불량한 학생이 맞다.

현직 아이돌, 호시마치 스이세이. 상당한 예능감과 다방면으로도 훌륭하고 근면하며, 아이돌의 필수 소양인 안무와 가창에 굉장한 실력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완전체.


...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아이돌' 스이세이.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친구, 아니 '악우' 스이세이는 내 머리속에서 아이돌이라는 세 글자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행보를 보여줬다.


"너... 임마... 제발 사람한테 말 걸때 손찌검좀 안 하면 안되냐?"


아픈 등짝을 잘 닿지도 않는 팔로 부여잡으면서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 녀석은 늘 이랬다. 나만 보면, 아니 좀 친하다 싶으면 대부분 이랬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맷집이 좋다는 큰 착각을 하기라도 한건지, 내게는 유독 폭행에 가까운 이 친구 나름의 스킨십을 시전했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갈길 가라. 형이 지금 굉장히 센티멘탈한 상태다."

"형 같은 소리 하네. 생일도 나보다 느리면서."


그쪽에다가 태클을 거는건가, 싶었다. 뭐 그런거에 연연하지 않는게 답다고 해야 할지.

시원시원하게 전진하는게 호시마치다웠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멋대로 판단하는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만, 내가 아는 한 호시마치는 그런 학생이자, 친구이자, 아이돌이었다.


"괜찮다면 이 호시마치 누나한테 털어놓어보면 어때?"

"됐네요. 출석 부족으로 유급당할 위기인 사람이 누나는 무슨..."


나는 늘, 이런 식으로 호시마치의 속을 긁는 발언을 하고서 방어 태세를 취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특별히 격투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 되었든 제대로 막아낼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분명 날 죽여버리려 드는 저 주먹을 맞고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엉성한 가드 자세를 풀고, 장난기를 싹 빼버린 뒤에 내 상황에 대해 단 한마디로 알렸다.


"차였어. 옆반 애한테 고백했거든."

"..."


답지 않게 잠깐 말을 잃어버리는 호시마치. 이 녀석도 결국에 이런 이야기에 대해는 진지해지는거구나, 싶었다.


"...자기가 말 안한다면서."

"야!"


거기서 그게 나오냐고...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이 녀석은 늘 미래가 중요했다. 다음을 바라보고 있고, 더 멀리 나아가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성격.

그렇기에 나 같은 녀석의 과거는 장난감일 뿐이겠지. 나는, 그 낡아빠진 장난감에 매달리지 않고선 못 사는 놈인데도 말이다.

죽을만큼, 나는 이런 성격과 에너지가 부러웠다. 이런 게 살아있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그냥 그런, 그저 그런 투명한 존재감의 유령같은 놈과는 달리.


한숨을 쉬고 말하지 말걸, 하고 중얼대는 걸 듣자 호시마치는 다시 한번 내 등짝을 후려치고선 그녀답게 시원스레 말했다.


"노래방이라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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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잘 못부르는 내가 노래방에 올 이유는 해봤자 탬버린을 두들겨 대는 것 뿐이었다.

신명나게 불러대는 주역들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뭔가로써, 조금이나마 존재감을 새겨보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호시마치와 단 둘이 노래방을 오게 되는 일도 이전에도 종종 있었고, 난 그럴때마다 내 역할에 충실했다.

아이돌 호시마치 스이세이가 이 동네 코인노래방에서 빛날 수 있게 떠받들어 주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평소라면 자연스레 자기 혼자만 마이크를 들었을 녀석이, 내게 다른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너도 불러봐."

"아냐. 내가 뭘... 나 노래 못 하는거 알잖아."

"누가 너보고 공연하래?"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그것을 받았다. 불러보라고... 그래. 불러주기로 했다. 아니,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나를 봐 주었으면 하는 기분을 담아서. 어중간한 누군가로써 남고싶지 않은 한을 담아서. 날 차버린 그녀에 대한 낮은 온도의 분노 또한 담아서. 음정도 박자도 별로 맞지 않아서 예민한 아이돌의 귀에는 테러리즘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열심히 불렀다.

그냥... 한번쯤은 쏟아내보고 싶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른 이후엔 바로 노래방 부스를 나와 아케이드 앞에 나란히 앉았다.

유구한 역사의 명작 퍼즐 게임. 그러나 지금 내 옆에 선 아이돌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흉기나 마찬가지인 존재.

나를 철저하게 파괴해버리겠다는 것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육안으로 보일것만 같은 그 게임. 평소엔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게 싫어서 한두번쯤 거절의 의사를 비췄겠지만 오늘따라 그러지 못했다.

오늘은 싸워봐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만용을 부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는...


"...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

"뭐가?"

"뭐가는 무슨 뭐가야! 너 솔직히 말해. 테트리스 하느라 오락실에서 숙식 해결하고 그런 적 있지? 그렇지 않고선 말이 안돼! 네가 인간이야?!"


거의 의자에 올라설 정도로 흥분해서 마구 뱉어대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어버리며 스틱을 바쁘게 놀리는 아이돌.

하느님. 제 친구에게 다른건 다 줘놓고 자비심을 부여하시는걸 잊어버리고 말았군요. 참 훌륭하십니다.


...친구라.


어느새 이 친구 덕에 낮에 있었던 청춘의 추락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확실히 이런 느낌이다.

하기 싫은 것은 적당히겠지만,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하고싶은 일에는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보여주는 아이돌...

호시마치와 함께 있으면 나는 늘 그 아이돌의 힘에 휘말려버렸다. 그래서 늘 재미있었다.


어느새 별이 어렴풋이 보이도록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밤하늘 아래로, 나는 스이세이의 등을 좇아 걷고 있었다.

앞으로 나서며 걸어가는 그 날씬한 등을 향해, 낯간지럽게시리 한마디를 던졌다.


"...고마워."


큭, 하고 웃는 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레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가?"


"그냥 오늘... ...아니다. 사과주스 한 팩 받고 친구해줘서 고맙다고."


웃음을 참지 못한 이 아이돌은, 알았다는 말 대신 잠깐 목을 풀었다.

그러더니 간주도 무엇도 없이 다양한 음과 가사를 조합하여 주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그저 목소리가 커서 그런게 아니었다. 괜히 뭔가가 심장을 울렸다. 이 녀석이 이렇게 노래를 부를때마다, 난 그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내가 호시마치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부르는 지금같은 때에 말이다.


아.


이미 난 알고 있었다. 이 감정이 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오늘 행한 엉성한 고백이, 억지로 짜낸 타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그저 자기 자신마저 속이려 들고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걸 전해버리면 이 적당주의적인 우정은 끝내 막이 내릴 것이다. 빛나는 그녀는 아이돌이다. 아무리 사납고, 묘한 센스를 가진 친구라 할 지라도 호시마치는 별과 같은 존재다.

땅바닥의 조약돌 따위는 우러러볼수조차 없는 그런 존재.


아마 미래를 위해서 나는 사라져줘야겠지. 발목을 잡아서는 안될거야. 무엇보다, 그녀 또한 오늘 내가 들었던 대답과 같은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잘 되었어.

이 감정은 호시마치가 영원히 모르게 두어야겠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도록 나 혼자서만 알고 있는...


"그래, 마치 '유령'같네..."


아이돌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친구 중 하나는 그냥 유령일 뿐이다.

잡히지 않고, 보여선 안되는 그런 유령. 난 그런 친구인것으로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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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니까 별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