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한다.

침대에 누워 회색 천장을 보면서 천칭에 주사위를 하나씩 놓는 것이다.

시작은 언제나 삶은 괴롭다는 말로 시작한다.

동시에 구석에 자고있는 페르시안 고양이를 떠올린다.

그렇게 탑을 쌓는 놀이가 시작된다.


'오늘은 밥이 맛이 없었어.'

'맛있는 걸 떠올리니 쌀국수가 먹고싶어.'

'택배는 언제 올까.'

'미련을 버리고 날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잠에 들지 못하는 건 괴로워'

'따뜻한 감촉이 필요해'

그리고 그리고 또.


 어느새 어느 쪽에 올려둔지도 모르는 주사위 탑은 귀를 강하게 때리는 소리와 바닥에 흩어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칭은 고요한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나는 알았다고 혼잣말을 하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다.

창문에 낱알이 흩어지는 소리와 깊은 공허로 들어간다.


 아플 정도로 강한 빛이 눈을 파고들었다.

나는 커튼을 치지 않은 어제의 나를 욕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통 때문에 잠시 균형을 잃기도 했지만 능숙히 의자를 잡으며 책장에 있는 두통약을 찾았다.

하지만 고양이가 문을 벅벅 긁는 탓에 약을 꺼낼 새도 없이 상자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어주었다.


 느긋이 정수기에서 물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옆집 노파가 또 이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 나는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 두통약을 물과 삼키고 혼자서 궁시렁대며 발코니로 갔다.


 노파는 내가 나올 걸 알고 있었는지 미리 마당에 나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며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능구렁이 마냥 빠져나갈 걸 생각하곤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평소의 옷과 달라진 걸 보곤 그 옷은 또 뭐냐며 핀잔을 주었다.

노파는 미소를 지으며 오늘 친구가 와서 오랜만에 입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말을 꺼내는 데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평소에 입던 곰돌이 잠옷이든 디즈니랜드에서 볼법한 해적옷이든 그게 뭔 상관이랴.


 노파의 패션 감각이 존재할지 생각하던 와중에 노파가 저번에 부탁한 차에 대해 물었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불만들을 쏟아내며 구해왔다고 말했다.

노파도 나처럼 흘려들었는지 구해왔다는 말만 듣고 빨리 와달라며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갔다.

귀찮은 노인네 느긋하게 갈 거라며 속으로 틱틱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잠옷에 적당한 겉옷을 걸쳤다.

노파가 부탁한 차 두 상자 각설탕 한 상자 그리고 화과자 한 상자를 들었다.

저번에 기분이 좋다며 선물할 용도로 샀지만 방금 일을 생각하니 확 빼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돈도 넉넉히 챙겨주고 이웃이기도 하니 그대로 들고 가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니 문 틈새로 붉은 머리를 찰랑이며 나오는 노파가 보였다.

저 나이에 주책이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노파는 문을 열고 내 손을 꽉 쥐며 들어오라고 했다.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힘들게 구한 차니 나도 맛좀 볼까 하며 따라갔다.


 집에 들어가니 노파는 누군가를 불렀다.

아마도 노파가 말한 손님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곤 그냥 도망칠까 생각하던 찰나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오른눈을 반쯤 가린 머리, 검은 재킷, 잠옷인지 외출복인지 모를 바지.

천사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