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병동에는 토마토 주스를 좋아하는 간호사가 있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달 동안 병원에 있던 나에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아쉬운 사실은 나는 A병동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하루는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내 앞에 있던 두 환자가 싸운 일이었다.

내가 있는 병실은 공용 냉장고가 있었는데 1번 병상의 환자가 술을 넣었다가 어느 날 사라진 걸 알고 격하게 화를 낸 게 시작이었다.

병실에는 4명이 있었지만 나는 그 날 진료와 검사로 부재중이었기에 용의선상에선 제외였다.

그리고 2번 병상에는 30대의 운전사고로 입원한 남자가 있었고 3번 병상에는 20대의 과로로 쓰러져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2번 병상의 환자를 추궁했고 2번 병상의 환자는 당황한 얼굴로 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던 그는 2번 병상의 환자에게 인신공격을 했고 주먹이 날아가려는 찰나 보안요원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1번 병상의 환자는 반입 금지 품목인 술을 가져온 것과 난동을 부린 이유로 병원에서 퇴출되었다.

2번 병상의 환자는 알코올 측정을 하면서 해명을 했고 3일뒤 정밀 검진이 있었기 때문에 병상을 유지했다.


 나는 3번 병상에 앉은 여자가 해주는 이 이야기를 흥미로운 얼굴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는데 나는 새벽에 그녀가 술을 마시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담담한 얼굴로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뉴스에서 본 유수한 말로 변론하는 사기꾼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나는 속으로 어지러운 곳이군 이라고 생각하고 B병동의 간호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새벽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간호사는 나를 보더니 어제 채혈검사에 문제가 있었다며 다시 채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딱히 큰 문제는 없던 것 같지만 나는 금발 머리의 간호사의 말을 믿기로 했다.

간호사는 혈압대를 채우려 몸을 숙였다.

옷깃 사이로 보이는 봉긋한 가슴과 위에 박힌 점이 인상적이었다.

간호사는 혈압이 정상이라고 말해주고 입꼬리를 올리며 주사를 꺼냈다.

그리고 팔을 이리저리 만져가며 정맥을 찾았다.

하지만 미숙한 손놀림으로 주사를 찌른 탓에 옆으로 피가 새어나오자 간호사는 당황하며 그렘린 소리를 내었다.

오히려 내가 놀라며 간호사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다행히 채혈은 무사히 끝났고 간호사는 음흉한 웃음 소리를 내며 병실을 나갔다.

나는 뭐 저런 간호사가 다 있지 하며 병실 문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어제 난동이 있었던 탓에 병실을 옮기겠냐고 간호사가 물어본 것이다.

나는 음침한 옆자리 여자와 새벽의 이상한 간호사를 떠올리며 옮겨달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A병동의 다른 병실은 아직 병상 정리가 안 되어서 다른 병동으로 가야하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어젯밤 B병동의 간호사에 대해 온갖 상상을 하고 잔 탓인지 나는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아침 식사를 하고 9시까지 짐 정리를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새벽의 이상한 금발 간호사에 대해 물었다.

분홍머리 간호사는 바보같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A병동에는 금발의 간호사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어차피 옮기고 나면 다신 안 볼텐데 하며 생각을 지웠다.


 운이 좋게도 B병동에 있는 병실로 배정 받았다.

나는 분홍머리 간호사와 짐을 들고 B병동으로 갔다.

가는 도중 간호사가 몇 번 짐을 떨어뜨려서 간호사는 가는 내내 죄송하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병실에 도착하고 나서 코미디언 같은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몇 번이고 웃었다.


 B병동은 보호자가 없는 병동으로 오직 환자와 간호사만 상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ID가 있는 손목에 채우는 띠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띠도 없고 병실에 다른 사람도 없었던 탓에 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B병동의 간호사를 생각하며 기다리던 동안 분홍머리 간호사가 병실에 찾아왔다.

아까 짐을 떨어뜨린 게 미안한다며 주스세트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순간의 기대가 사라진 게 아쉬웠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주스세트를 받았다.

나는 분홍머리 간호사에게 조심히 돌아가라고 했다.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금발의 간호사였지만 새벽에 본 간호사보다 조금 짙은 색이었다.

간호사는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고 간단히 B병동과 띠에 대해 설명을 하고 띠를 내 손목에 채워줬다.

그리고 질문이나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테라스의 위치와 편의점의 위치를 물었다.

테라스는 7층에 있고 편의점은 지하 1층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간호사는 더 필요한 게 있는 지 물어보다 탁상을 보았다.

그리고 침을 삼키며 주스는 어디서 났는지 물었다.

나는 아까 분홍머리 간호사가 줬다고 말하며 한 병 마시겠냐고 물었다.

B병동의 간호사는 토마토 주스를 꺼내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상상하던 것 보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