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노엘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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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항상 탑에 올라갔었다. 

밤이 되면 다른 마을의 불빛이 보여서

어린 나는 그게 마치 땅에서 빛나는 별 같았다. 

그 별빛에 닿고 싶어서 엘프 마을에서 나갔다.

어른은 다들 날 말렸다. 

하지만 지금 저 별을 쫓지 않았다간 

내 인생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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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마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람도 물건도 음식도 건물들도.

하지만 새로움이 익숙함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손에 넣은 별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그걸 깨달은 나는 이 나라를 전부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별을 붙잡았다면 새로운 별을 쫓으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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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 앞에 없는 별을 쫓는 건 

처음 생각한 것처럼 낭만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새 새 마을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고 

어른들의 말을 부정해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았다. 

그 강박이야말로 아직 어른들의 말에 묶여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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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산이 아름다워서 

정상에 가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단지 아름다워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오른 정상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의 인생을 바꾼 운명의 사람. 

은빛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그 사람은 

자기를 시로가네 노엘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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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시라누이. 시라누이 후레아야.” 

“후레아쨩이구나! 잘 부탁해!” 

노엘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사실 조금 놀랐어. 

이런 곳에서 엘프를 볼 줄은 몰랐거든.” 

“뭐, 엘프는 다들 마을 근처에서만 사니까. 

나같은 별종은 보기 드물지.” 

내 대답을 노엘은 다시 물었다. 

“그럼 후레아쨩은 왜 여기 온거야?”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리는 눈을 맞았다.

이제는 내가 여행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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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은 사람들이 차갑지?” 

가만히 풍경을 보고 있던 내게

노엘이 불현듯 말을 걸었다. 

“겨울이라 도적이 많아져서 그래. 

다들 식량을 지키느라 열심인 거지.” 

“그럼 도적만 내쫓으면 되잖아. 

저 사람들은 나한테도 날카로운걸?” 

“먹을 게 많아야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법이거든. 

저 사람들은 여유를 잃어버린 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고 왔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노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얀 지평선을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노엘이 빛나 보였다. 

그녀에게는 가야할 길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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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가네. 내가 도와줄까?” 

“응? 뭐를?” 

“사람 돕는다는 거 말이야. 

둘이서 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 

깊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달리 갈 곳도 없었을 뿐이다.

노엘은 크게 놀라서 되물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후레아쨩이? 

아, 싫다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너도 목적이 있어서 여기 왔을 텐데.”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어때? 같이 다녀도 될까?”

노엘은 조금 붉어진 얼굴을 감추더니 

이내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응, 물론이지! 정말 고마워!

후레아쨩이 도와주면 분명 다 잘 될거야!”

노엘은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보물을 찾은 건 나였다.

드디어 잡아야 할 별을 찾아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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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마을을 찾아갔다.

도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도왔다.

다행히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엘은 엘프가 옆에 있는 덕분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항상 노엘이었다.

나는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할뿐이었다.

그런데도 노엘은 늘 나를 칭찬해줘서

부끄러웠지만, 조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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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무사히 겨울을 넘겼고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곳에서도 우리는 악당들을 무찌르고

아이들을 구하고, 마을을 지켰다.

그러던 우리는 소문을 하나 듣게 되었다.

왕궁에서 「YAGOO」라는 사람을 시켜서

사람들과 나라를 돕는 거대한 팀,

「hololive」를 만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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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에 걸친 면접과 시험 끝에

우리는 둘 다 홀로라이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은 전과 비슷했다.

악당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돕는다.

다른 점은 이제 동료들이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우사다 페코라, 호쇼 마린, 선배와 후배들.

홀로라이브에 들어온 뒤에 내가 누린 삶은

어린 시절 마을에서 꿈꾸던 바로 그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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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아. 나, 할 이야기가 있는데...”

“응. 뭔데, 노엘? 말해봐, 말해봐.”

홀로라이브에 들어가고 2년이 되던 즈음,

임무를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어느 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우선 내 가족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 시로가네 기사단장님? 그분이 왜?”

“어, 어? 후레아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노엘은 정말로 당황해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어... 그냥, 수도를 돌아다니니까

아이들이 신나서 나한테 말해주던데?”

“으... 하긴, 홀로라이브에 들어와 버렸으니

후레아가 계속 모르고 있는게 더 이상하긴 하지.

아아, 아무것도 모르는 엘프라고 방심해서

본명으로 자기소개하는 게 아니었는데.”

“뭐야, 그게. 다 내 탓이라는 거야?”

나는 장난을 섞어 불평했지만,

노엘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다 네 덕분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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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로가네 기사단을 이어야 했어.

하지만 기사단은 왕과 수도만 지키니까,

그게 싫어서 여행을 나섰지.

그게 어리광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어.

꿈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

노엘은 내 오른손을 쥐며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레아. 너를 만난거야.

너랑 있으면 신기하게 힘이 쏟았어.

사람들도 너를 보면 긴장을 풀었구.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내 꿈을 이룬 거야.”

노엘은 볼이 조금 빨개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고마워, 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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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건 나야."

분위기에 이끌리어

나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마을을 나선 그 날부터, 나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어.

갈곳도, 목적도 없이 그저 걷기만 했지.

그런데 너를 만나고 모든게 바뀌었어.

네가 걷는 길이 내가 갈 길이 되었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돕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너를 만나고 나서야 걸음마를 땐 거지.

그러니까 나야말로 고마워,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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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분위기는 곧 바람에 날아가고

남은 건 민망함에 굳어있는 두 사람이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채,

우리는 돌처럼 굳어서 하늘만 보고 있었다.

“아! 노엘이랑 후레아랑 또 꽁냥대고 있어!”

그런 우리를 해방시킨 건 마린의 목소리였다.

그 말이 반쯤 사실이라 반박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페코라! 우리도 꽁냥대서

저 커플을 해치우자!”

“아, 진짜! 마린 시끄러워 페코!

그리고 너희 둘도!

꽁냥대는 건 왕궁에 돌아가서 하는 페코다요!”

우리는 다시 왕궁을 향해 이동했다.

이 모든 순간이, 일상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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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력 덕분에 홀로라이브는 계속 성장했다.

다른 대륙과도 협력을 하게 되어서,

사신이나 불사조 같은 신기한 동료도 생겼다.

임무의 규모도 점점 커졌다.

우리는 바다에서 나타난 거대 괴수와 싸우고,

우주에서 내려온 머리 셋 달린 황금 용을 해치우고,

어둠의 세계에서 침략해온 대마왕을 무찔렀다.

그렇게 몇 번의 위기를 뛰어넘은 우리에게

시간의 감시자는 앞으로 재앙이 없으리라고 말해주었다.

세상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 홀로라이브가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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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는 헤어질 때임을 직감했다.

할 일도 없이 모여있는 것보다는

각자의 재능을 살리는 게 훨씬 나으니까.

밖에서는 해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홀로라이브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날에는

결국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도 결국은 헤어지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기왕이면 마지막은 서로 웃으며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이별의 날, 난 아마 웃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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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엘과 함께 시로가네 기사단을 향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노엘의 등을 따라갔다.

외부인 주제에 시로가네 저택에 머무르게 됐지만

홀로라이브의 명성 덕분에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노엘은 곧 기사단장이 되었다.

계속 자신을 갈고 닦은 끝에,

왕과 나라를 지키는 검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그저 가만히 살고 있었다.

이런 삶도 싫지는 않았다.

노엘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대로 가라앉은 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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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 지 20년.

나는 노엘을 떠나기로 했다.

계기는 별 것 없는 뜬소문이었다.

노엘이 곧 양자를 들일 것이라는 소문.

그런 소문이 왜 돌고 있을까?

그건 노엘에게 후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엘이 벌써 43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엘이, 언젠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엘을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 노엘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러니까 나만의 목표를 찾고자 했다.

차마 노엘의 얼굴은 볼 수 없어서

나는 편지만 한 통 남기고 여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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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별을 쫓았다.

멤버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잃고 말 거니까.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별에 손을 뻗을 수 없게 될테니까.

그런 고집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나 혼자서는 별을 찾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설산을 오르고, 사막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넜다.

30년을 그렇게 발버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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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없는 밤, 한 기사가 내게 편지를 건넸다.

노엘의 편지였다.

나와 만나고 싶다고

단지 그 한 마디만이 적혀있는 편지.

기사를 따라 들어간 숲속에는

한 노인이 홀로 서 있다.

늙고 힘없는, 어디에나 있을 노인.

“아, 후레아. 와줬구나.”

나는 충격받지 않은 척 인사를 받았다.

“안녕, 노엘. 오래 기다렸어?”

“아니. 막 도착한 참이야."

노엘은 그 시절처럼 뻔한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시절처럼 가만히 서서 미소 짓는다. 

우리는 함께 그 시절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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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노엘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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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절처럼

지난 세월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여행 이야기를 펼쳤다.

노엘도 흥미로운 듯 귀를 기울여줘서

내 불안도 조금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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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아. 할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가 가라앉을 즈음, 노엘이 말했다.

난 긴장감을 없애려고 괜히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뭔데, 노엘? 말해봐.”

“내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을 해주지 않을래?”

나뭇잎이 뺨에 부딫힌다.

흙먼지가 다리를 스친다.

내 눈과 귀는, 이제야 현실을 직시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로가네 노엘.

이 73세 노인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추도문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거절해서는 안 된다.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고 입을 연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하는 게 내 특기잖아.”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후레아.”

조금 뒤, 노엘은 기사와 함께 돌아갔다.

나는 홀로 숲에 남아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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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뒤에 장례식이 열렸다.

노엘의 가족과 홀로라이브 멤버만 참석한 작은 장례식.

나는 노엘과의 추억을 담은 추도문을 읽었다.

홀로라이브 멤버와 이야기를 나눴다.

노엘의 양자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게 끝이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어둠 속으로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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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없었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노엘과 재회한 순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죽을 용기는 없어서,

나는 움직이는 시체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에 지쳐 엘프 마을로도 돌아가봤지만

그곳에 엘프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나를 동경해 마을을 나섰다는 모양이다.

그들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다 바보같았다.

그냥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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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첫눈을 보니 문뜩 옛날 생각이 나서

목적도 없이 노엘과 만났던 산을 올랐다.

정상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니

나와 노엘이 도왔던 마을들이 보인다.

홀로라이브가 지켜낸 세상이 보인다.

나는 막연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바로 뱉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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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들려?

아니, 안 들리겠지. 옛날에 칼리한테 들어서 알아.

죽은 사람은 절대 이쪽 일은 모르지.

뭐, 됐어. 그럼 뒷담화나 할게.


그날, 네가 추도문을 부탁한 날부터 이후로

난 너를 증오하고 있어.

...조금 과장되긴 했는데, 아무튼.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걸 알텐데,

넌 굳이 나한테 추도문을 부탁했어.

왜? 왜 그랬던 거야?


아니, 사실 알고 있어.

너한테서 도망치는 거야말로

너에게 마음이 묶여있다는 증거라는 건 말이야.

마을 어른들에게 묶여있던 것처럼 말이야.

너는 그런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내게 추도문을 부탁한 거지?

하지만, 미안. 결국 그렇게는 안 됐어.


왜 나는 별을 잡을 수 없을까?

바깥 마을, 홀로라이브, 그리고 너.

모든 별들이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데

어느 순간에는 빛을 잃고 말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이럴 거면, 별 같은 건 안 보이면 좋을텐데.


...그런데 말이야.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이 산을 올라오는 중에는

뭔가, 너랑 같이 있는 기분이었어.

너는 내 옆에 없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너는 없는데,

난 어떻게 너를 느낀 걸까?

노엘, 넌 어디 있는 거야?


내 안에, 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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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한 오두막집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니 토끼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반긴다.

“후, 후레아다! 후레아가 있어!”

“응. 안녕, 페코라. 실례해도 될까?”

“당연하지! 빨리 들어오는 페코!”

페코라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80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우사다 가문의 무서운 비밀이 엮여있겠지.

페코라는 내게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산을 올랐다가,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페코라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 크게 웃으며 내 팔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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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라는 멤버들의 근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린을 포함한 떠나간 멤버들도 말해주었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슬펐지만, 절망은 하지 않았다.

그들도 내 안에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다.

가장 놀란 건 미코치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100살을 넘겼는데도 정정하게 살아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된 미코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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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페코라는 술을 들고왔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마시려고 아낀 거지만,

후레아가 온 날이 기념일이지.”

나는 페코라가 주는 잔을 들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엘을 위하여.”

“...그렇네. 노엘을 위하여.”

우리는 계속 잔을 들었다.

마린의 이름을 말했다.

떠나간 동료들의 이름을 말했다.

혼자가 아닌 밤이 60년만이라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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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있어도 되는데.”

다음날, 문을 나선 내게 페코라가 말했다.

“미안. 만나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알고 있어.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인 페코?”

“우선 미코치한테 가봐야지.

홀로라이브에서는 때 이래저래 신세를 졌었고,

무엇보다 할머니 된 미코치는 조금 보고싶으니까.

그리고는 코코쨩를 찾아가보려고.

너도 소식을 모른다고 했지만

뭐, 용이니까 아직 살아있겠지.”

“쉽지 않을 거야.

용이 어디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시간 여유가 많은 내가 찾아야지.

뭐, 50년 안에는 찾지 않겠어?”

페코라는 내 농담에도 웃지 않고

계속 누나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가볼게. 술 잘 마셨어, 페코라.”

발을 들고 떠나려는 때에,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와, 후레아.”

순간, 지난 80년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돌아서서 대답했다.

“응. 다녀올게, 페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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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치는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늙은 모습이 내가 상상한 그대로여서

함께 보낸 하룻밤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다음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미코치는 웃으며 나를 배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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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가 사는 곳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마치 지도도 없이 보물을 찾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았으니까.

반짝이는 별은 손에서 빛을 잃지만

보이지 않는 별은 가슴에 핀다는 것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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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옛날에 썼던 대회글인데

그대로 링크 올리기가 애매해져서

그러는 김에 좀 다듬어서 다시 올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