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짹짹


"으으응..."


아침인가?


묘하게 나른하고 기분 좋은 날이다. 이런 날엔 점심때까지 푹 자주는게 예의지.


라고 생각하며 푹신한 이불을 몸에 돌돌 감아 웅크렸는데


- 벌컥


"언제까지 잘 거니? 빨리 학교 갈 준비 해야지!"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의 불호령에 기분 좋은 평화가 깨져 버렸다.


"으으,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라니. 아니 것보다 엄마가 왜 우리집에 이써..."


나는 분명 혼자 일본으로 이사 왔는데 왜 엄마가 아침부터 나를 깨우고 있지?


"이놈 기집애가 빨리 일어나서 씻고 밥 먹어!"


이불 끝을 잡고 세게 당기는 탓에 내 몸이 몇 바퀴나 회전하며 푹신한 침대 위에 내던져졌다.


"엥."



"오늘 첫 등교인데 학교 가는 길은 알지? 밥 먹을 시간 없으니까 빵이라도 하나 물고 가."


"에에, 자고로 한국, 아니 일본인은 아침에 밥을 든든하게 먹어줘야 하는데..."


"이놈 기집애가! 네가 등교 첫 날 아침부터 밍기적 대니까 이런 거 아니야! 잔말 말고 빨리 학교나 가!"


식빵 봉투를 휘두르며 위협하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나는 빵 조각 하나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섰다.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다녀올게요."


근데 학교가 어디지?


에라 모르겠다 못 찾으면 대충 근처 북카페 같은 데에서 시간이라도 때우고 오지 뭐.


"우메우메."


근데 이 치마 너무 짧지 않나? 바람만 좀 불어도 속옷 보일 것 같은데.


괜시리 신경 쓰여 치마를 꾹꾹 누르며 식빵을 씹느라 앞을 제대로 못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 쿵


"윽."


"가핰."


코너에서 빠르게 튀어 나오는 무언가를 보지 못하고 그만 부딪혀 버렸다.


충격에 뒤로 넘어가는 내 몸과 공중에 떠오른 식빵.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가운데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식빵을 잡아보려 팔을 내밀어 보았지만.


- 탁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아 당기는 바람에 불쌍한 식빵이를 구하지 못하고 말았다. 덕분에 바닥을 뒹구는건 면할 수 있었지만.


"괜찮냐?"


"아아, 내 아침밥이..."


잠시 떠오르나 싶었지만 결국 뉴턴의 계략을 이겨내지 못해 바닥에 떨어지고 마는 식빵. 부디 그곳에서는 개미 부락의 풍족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길.


잠시 식빵이의 명복을 빌어준 후 나를 잡아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고개를 들었는데.


"에, 아오씨?"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기분 나쁜 아저씨가 아니고 동기인 아오씨였다!


"너 뭐야, 나 알아?"


아오씨는 내게 이름을 불린 것이 기분 나쁜 듯 잡고 있던 내 손목을 휙 내던지더니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내 스토커냐? 아 진짜 등교 첫 날부터 기분 더럽게."


지금 기분 더럽다고? 아오씨가 달려와서 나한테 부딪혀 놓고, 내 손목까지 잡아 놓고 지금 나보고 기분 더럽다고 한 거야?


생각 하다 보니 열 받네.


"아니 아오씨. 코너에서 클락션도 없이 휙 달려 나온 건 아오씨잖아요. 저는 지금 아오씨 때문에 아침밥도 못 먹게 생겼는데 저 보고 기분 나쁘다구요? 식빵이는 날 위해 반년을 기다려 알갱이를 맺고 분골쇄신해 가루가 되선 불에 타는 고통까지 견디며 한 끼 식사가 되어 줬는데! 그런 제 식사를 방해해 놓고 본인이 기분 나쁘다구요!?"


내가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자 아오씨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곤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뭐하나 내 아침 식사는 이미 바닥을 뒹굴고 있고. 아스팔트 위 포식자(개미)들이 그 위를 점령한 후인데.


"아, 그... 미안. 이거라도 먹을래?"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아오씨가 가방을 뒤지더니 네모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네 주었다.


작은 판 초콜릿이었다.


"헤헤, 그렇게 사과 하신다면 또 못 받아 줄건 없죠."


그래 초콜릿이라면 참아줄 수 있지.


나는 곧바로 받은 초콜릿의 포장지를 벗겨 입 안에 한 가득 쑤셔 넣었다.


살짝 녹아 물러진 초콜릿이 입 안에 들어오자 달콤한 향과 맛에 화가 사르르 녹아 내렸다.


"입가에 다 묻었다. 자."


아오씨가 블라우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나는 평소처럼 입을 꾹 닫고 우물거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크흡."


왜 웃는거지?


아오씨가 못 참겠다는 듯 눈을 꾹 감고는 큭큭 거리며 내 입가를 닦아줬다. 평소처럼 자상한 손길이긴 한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고 해야하나. 손길에 테크닉이 모자르달까.


입가를 닦은 나는 다시 한입 초콜릿을 크게 베어 물었다.


"움냠냠."


으음...


좀 전부터 날 바라보는 아오씨의 시선이 따갑다.


평소에도 기분 나쁘게 바라보긴 하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더 기분 나빴다.


날 왜 저렇게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보는 거지?


그런 아오씨의 옆에 뭔가 화려하게 반짝이는 빛무리가 날아 다니는 것 같아 보였다.


"응?"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마구 비벼봤지만 빛무리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저기 아오씨."


"왜?"


"그 막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아오씨가 과장된 동작을 취하며 머리카락을 슥 넘겼다.


"하, 또 진부한 칭찬이네. 뭐 내 미모가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답긴 하지."


"아니 진짜 물리적으로 빛이 난다고."


그 기괴한 현상에 허공에 손을 휘적 거리며 빛무리를 흩어 보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에라 모르겠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저대로 살라지.


선 자리에서 초콜릿 한판을 다 해치운 뒤 아오씨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응?"


무슨 일이냐 묻는 듯한 아오씨의 표정.


왜 그러고 있는거야? 나 다 먹었으니까 입 닦아 줘야지.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아오씨를 위해 딱 붙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 쪽


당황하며 얼굴을 잔뜩 붉히던 아오씨가 갑작스레 얼굴을 내밀어 내 입술위에 입을 맞췄다.


"이 씨ㅂ"


"아아아! 히오도시 아오! 너 지금!"


내 궁극의 C워드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사이를 가로막은 목소리. 이 여성적이고 활발한 목소리는 리리


"리리카!?"


내가 채 생각할 틈도 없이 눈치없는 아오씨가 끼어 들어 스포일러를 해버렸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내 예상과 아오씨의 반응대로 사쵸가 서 있었다.


엄청나게 야한 복장을 한 채로


아니 나랑 같은 교복을 입고 있긴 했는데. 


블라우스는 커다란 가슴 때문에 말려 올라가 배꼽이 보일 지경이었고. 안 그래도 짧은 치마는 커다란 엉덩이에 눌려 가만히 서 있는데도 하얀 속옷을 슬쩍 보여주고 있었다.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야하면 무슨 옷을 입어도 그렇게 되어 버린 다더니.


"히오도시 아오, 그리고 너! 너희가 방금 무슨 짓을 하는지 다 봤어! 감히 교복 입은 채로 등굣길에서 잘도 그런 짓을! 그런 건  홀로 고교 풍기 위원인 나 이치죠 리리카가 용서 못해!"


와! 풍기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