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계절학기 기말고사 때문에 조금 늦었다.
“계절학기 기말고사요?”
교양과목 하나 기말고사를 까먹어서 D0받고 재수강했다.
“ㅋㅋㅋㅋㅋ병신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양반이다.
조선의 재상, 정태화다.
아마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선 중후기 격동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고,
후술한 독특한 기록으로도 제법 유명한 사람이다.
“중후기 격동기라면 병자호란이나 당쟁 같은 건가요?”
정확하다.
정태화는 1602년,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태어났다.
정태화의 집안은 명문가로 유명한 집안이었다.
5대조 할아버지는 중종 시대의 영의정 정광필이며,
증조할아버지 정유길은 좌의정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정창연은 광해군과 인조 두 대에 걸쳐 좌의정을 역임했으며,
본인도 영의정을 역임했고,
동생과 차남은 우의정, 손자는 좌의정에 올랐다.
“???????”
참고로 참판, 판서급을 합치면 수십 명이지만
너무 길어져서 정승만 서술하였다.
“엄청난 집안 출신이었네요”
그 때문에 야사엔 이런 일화도 있다.
정태화가 젊은 시절 공부를 하던 때 이야기다.
“아 역시 공부는 조용한 절에서 해야지!”
“......”
“? 쪽지네”
“어... 음 죄송합니다”
“(끄덕)”
“진짜 열심히 공부하네... 나도 본받아야지”
그렇게 그 친구와 친해진 정태화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얌마, 떨어질 수도 있지, 다음엔 붙을거야!”
“그래, 이제 겨우 스물인데 뭐”
“스물? 뭐야 우리 동갑이었네 ㅋㅋ”
“아 진짜? 생일은 언제?”
“1월 21일”
“????? 어... 혹시 시간은?”
“새벽 5시”
“......나랑 똑같네”
“아 ㄹㅇ? 개웃기네 ㅋㅋㅋㅋ”
“...... 난 이제 짐 싸서 집으로 갈란다.”
“???? 아니 갑자기 왜? 좀만 더하면 합격인데?”
“기껏 집에서 빚내서 공부시킨 거였는데 내가 아니었네.”
“???? 그게 무슨 소리야?”
“점쟁이가 한 자리 할 사주래서 공부한 거였는데 같은 사주면 집안 좋은 놈이 되겠지”
“어... 잠깐만!”
“암튼, 난 더 돈낭비 안할련다. 잘 지내라”
야사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만,
그만큼 정태화의 집안이 끝내준다는 얘기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 듯하다.
아무튼, 정태화는 1602년,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세자 시강원, 이조 정랑 등 요직을 두루 거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네요”
물론 책상 앞에서 서류업무만 보지는 않았다.
병자호란 시기 도원수 김자점 밑에서 종사관을 맡아
의병을 모아 대항하기도 했고,
평안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능력을 보여준 정태화는
대사간(사간원), 대사헌(사헌부)과 함께
6조의 참의, 참판,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6조 어디요? 아 여기저기 옮겨갔나요?”
다 역임했다.
“???????”
정태화는 특별한 기록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거쳐간 관직의 종류다.
45년간의 관직생할 동안 3사의 수장인 홍문관 영사, 대사간, 대사헌과 함께
6조의 참의, 참판, 판서에 이어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각 부서의 장, 차관과 국장, 검찰총장, 비서실장,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했다고 보면 된다.
“??? 님그거 어케함?”
정태화에 대한 사관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비슷하다.
주변 측근 관리를 잘 하고, 눈치가 빠르며, 함부로 원수를 사지 않았다고 한다.
그 탓에 당쟁이 격화되던 효종, 현종 시기 중재를 맡기도 했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광해군과 함께 몰락한 대북 출신인 것이
그의 이러한 성격과 맞물려 승진가도에 영향을 주었다.
“망해버린 정당 출신인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군요”
거기에 효종 시기 북벌운동으로 인해 삭막해질 뻔했던
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와 형제들의 역할이 컸다.
또한 송시열의 동료이자 중재자로서 1차 예송논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예송논쟁이라면 상복 입는 거 가지고 싸웠던 그거?”
그렇다.
다들 학창시절에 배워서 알고 있겠지만,
단순히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의 싸움이 아니었다.
“효종의 정통성 논쟁이었죠?”
맞다. 당시에도 독살설, 암살설 논란이 있던 소현의 죽음 이후
이례적으로 소현의 아들 대신 봉림이 즉위했고,
이것이 효종이다.
게다가 소현세자의 아내 강씨를 역적이라 부르고,
소현의 세 아들들을 유배지에서 죽게 한 것에 대해
세간은 효종의 정통성을 의심하고 음모론 또한 퍼졌다.
이러한 정통성 논쟁과 당쟁이 맞물리면서 예송논쟁이 벌어진 셈이다.
“그 정도면 이미 상복의 문제를 뛰어넘었네요”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다름아닌 송시열이었다.
“효종대왕께선 체이부정(體而不正)이므로 1년 상복이 당연하다!”
“어어 시열아 그러지 마라”
“체이부정? 너 그거 알고 쓰는 말이야?”
“그럼 모르고 쓰겠냐? 체(體)이지만 정(正)은 아니라고!”
“아니 이놈아;;;; 그건 주자가 계승 정통성을 따질 때 쓰던 표현이잖아;;;”
“안다고 했잖아! 딱 까놓고 정이 아닌 건 맞잖아!
“정이 아니라는 건 장자가 아니므로 정통성이 없다는 뜻이잖아!”
“아니 송시열 이 새끼 미친놈이네? 이거 역적 아니야?”
“조졌네;;;;;”
“효종대왕의 승계가 옳지 않다 주장하다니, 송시열은 역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여야 할 줄 아뢰오!”
“니들이 뭐라고 선생님의 귀한 소견을 멋대로 역적질로 단정지어?”
“충신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저 남인 놈들이야말로 역적입니다!”
“그럼 체이부정은 충신이냐?
“맞다! 송시열은 체이부정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하라!”
“체이부정이 맞...읍읍!!!”
“아유;;;; 그게 아니라 경국대전과 대명률에 의거해 1년이 맞지 않습니까?”
“지금 저 역적 감싸는 거임? 이거이거 서인 놈들 세트로 한패였구만!”
“난 서인 아니래두;;;;”
“아무튼 체이부정이라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어허, 말 잘못 나온 거에요 그렇지 시열아?”
“읍! 읍읍!!!! (절레절레)”
“봐요, 시열이도 동의하네! 어쨌든 옛 법을 따르자구요”
“;;;;;;;;;”
“;;;;;;;”
아무튼 이리 하여 하마터면 큰 불로 번질 뻔한 예송논쟁은
그래도 얼추 진압이 되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단어인가요?”
물론이다.
실제로 상례보다는 정통성을 따지기 위한 표현이며,
체이부정이란 아들이지만 적장자가 아닌,
‘예에 어긋나는 승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남인들이 발작을 하며 송시열을 물어뜯은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무튼 정태화는 이렇듯 각 세력들 간에 중재를 하며 인망을 얻었다.
정태화는 그 덕에 23년간 5번, 합쳐서 약 17년간 영의정을 역임했다.
“그렇게 오래 영의정을 한다구요?”
그의 인망과 능력도 출중했다.
현종 시기부터 숙종 시기까지를 강타했던
경신 대기근의 초반 비상시국을 이끌어나갔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그이 처세술이다.
정태화는 또 하나의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처세술과 관련이 있다.
효종 5년의 일이다.
“어디보자... 탄핵상소가 올라왔다고?”
“예 전하. 정언 이상진의 상소이옵니다”
“병조판서 원두표가 악공과 술을 데리고 영의정 정태화의 집에서 잔치를 벌였사온데, 이는 명백히 정승에게 아첨한 꼴이며 그것을 주저없이 받았으니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졌사옵니다.”
“음... 이 정도로 탄핵을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탄핵은 심한 것 같습니다.
“전하, 영의정이 사직서를 냈사옵니다!”
“???? 아니아니, 이정도로 사직이라니?”
“경솔하게 일을 벌여 상소가 올라왔으니 피혐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피혐이요?”
피혐이란, 고관대작이 탄핵당했을 때 죄의 여부를 떠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직을 내려놓고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의 관례이자 문화지만 모두가 항상 피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영의정이 사표를 냈으니, 효종을 놀라서 급히 명을 내렸다.
“이상진의 말은 망령되고 헛소리라 나 또한 노여웠다. 경은 조속히 복귀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정언 이상진은...”
“전하, 언로를 트기 위해선 간관을 벌해선 아니되옵니다. 신의 경솔함을 꾸짖은 것 뿐인데 그것이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어,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오히려 자신을 탄핵한 이상진을 감싸는 통 큰 행보까지 보여주며,
자칫 탄핵당할 뻔했지만 오히려 정태화의 인망은 더욱 높아졌다.
“사표로 인망과 입지를 오히려 다졌군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특별한 기록’은 없었으리라.
정태화는 툭하면 일이 터질 때마다 사표를 냈다.
“전하, 가뭄이 심하여 백성들이 고통받고있사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이것은 모두 영의정인 제가 일을 잘 못한 탓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어허! 그대는 책임이 없소, 다 내 부덕한 탓이오”
“전하, 영의정이 사표를 냈사옵니다”
“이번엔 뭔데?”
“뇌물 수수 의혹에 따라 피혐하고자 한답니다”
“조사가 끝나 죄가 있다고 밝혀지지 않는 한 사직하지 말라 전하라”
“전하.....”
“또?”
“영의정 정태화가 상피(相避)를 청하옵니다”
“상피라니?”
“동생인 정치화는 좌의정, 사촌인 정지화는 대사헌에 임명되었습니다”
“아 그랬지 참. 에휴, 괜찮으니 일이나 마저 하라 전하라”
“꼭 사퇴해야겠답니다”
“어허, 괜찮대두! 빨리 오라 그래!”
“안 오겠답니다. 이거 사표...”
“아 오라고 쫌!!!!!!”
이렇게 한번에 7연속 사표를 내서 현종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정태화는 이런 식으로 영의정을 역임하는 동안
총 37번의 사표를 내며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종류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임과 동시에
조선 역사상 가장 사표를 많이 낸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처세술이라도 좀 심하지 않나요?”
별 수 없었으리라.
원래 형제 간엔 같은 조정에서 근무하지 않는 것이 국룰인데,
하물며 정씨 일가는 영의정, 좌의정을 형제가 동시에 지냈다.
정태화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심한 것 같은데요”
사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실록에선 이런 평도 있다.
‘시류에만 영합하려 하여 특별히 이룬 것이 없다’
‘사람들은 정(鄭)가가 나라를 움직인다며 수근대었다’
‘국사를 제대로 담당하려 하지 않았다’
처세술에는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실권을 쥐고도 그것을 지키는 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탓에 후대로부터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제법 긴데, 자르기는 또 애매해서 그냥 하나로 붙였다.
다음엔 또 다른 주제로 돌아오겠다.
삼국시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죄다 기록이 단편적이라 이야기를 엮기 쉽지 않다.
기회를 잡아 아예 모아서 쓸까 생각중이다.
아무튼 난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