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보니 인류가 멸망해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멸망이라고 하면 뜨겁게 불타오르는 도시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유성들,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찬 거리,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을 떠올린다. 내가 멸망을 방금 당해봐서 좀 아는데 멸망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멸망은 뜨겁다기보다는 시원찮고 뜨뜻미지근하다. 아니, 차라리 싸늘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화려하거나 밝다기보다는 조촐하고 음침하다. 시끄럽고 요란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며 공포스러울 만큼 고요하다. 어떠한 전조 현상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면서도 절대 급하게 오지 않고 발소리를 숨기며 조용하게 슬그머니 다가온다.


 멸망의 조짐을 확인한 것은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였다. 눈을 뜨자마자 뭔가 심장이 내려앉는 듯 철렁했고 알 수 없는 싸늘한 공포가 마치 협곡에 매복한 게릴라처럼 엄습해 왔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나는 곧바로 내가 사는 4층 창문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도로에 있는 차들은 모두 시동이 꺼진 채 늘어서 있었고 앞집, 아랫집, 윗집 어디에도 누구도 없었다. 거리에서 누구도 걸어다니고 있지 않았으며 건물 안에서 왔다갔다하는 그림자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밖으로 뛰쳐 나가서 하루 종일 날뛰며 누구 있냐고 소리치면서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지금 최소한 반경 몇 킬로미터 범위 안에 남은 사람은 나 혼자이거나,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왕따시키고 모습조차 보여주기 싫어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어느 쪽이든 비참한 상황이긴 매한가지이다.


 하루 종일 뱅뱅 돌면서 누구 없냐고 소리치고,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옆 단지까지 갔지만 아무도 확인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화했지만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만한 곳, 그러니까 지하철역, 쇼핑 센터, 버스터미널을 모두 돌아다녔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cctv에 대고 나 물건 훔친다고 대놓고 보여줘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 경찰서에 쳐들어가서 누구 없냐고 소리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의 병석들은 모두 텅텅 빈 상태였으며 링거들은 침대에 다소곳이 바늘을 내려놓은 채 링거액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저녁 7시쯤에 나는 집에 도로 들어왔다. 절망해서 방바닥에 주저앉아 30분쯤 멍하니 있다가 정신줄을 잡고 간신히 할 수 있는 생각을 모두 해내서 지금 상황을 분석했다.


 나의 처지와 세상의 상황, 그리고 대체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또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고찰한 결과 나는 결론을 얻어냈다.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나만 빼놓고 싹 다 증발했다.

그 결과 나는 망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고 나서 지금 막연히 이 글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앞으로 뭘 어째야 할지, 아니 뭘 하기는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졸리다. 이제 자야겠다. 내일 아침에는 사람들이 돌아와 있기를 바라면서, 지금 이게 그저 하나의 악몽일 뿐이라고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