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오늘 이 2일째의 일지는 초안에서 유서로 작성되었다. 나는 오늘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4층에서 뛰어내리면 별로 확실하게 죽을 수 없었기 때문에 21층 꼭대기 계단실까지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시도했다.


 처음 난간에 가까이 섰는데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너무 심하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막 뛰어내리려다가 한번 더 심호흡을 했고, 그 다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었다.


 10분쯤 웃어댄 뒤 다시 난간에 기대 서서 숨을 한껏 들이쉬고 앞으로 크게 숙였다.


 발이 막 바닥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마음을 고쳐먹고 고개를 들어 도로 뒤로 빠졌다. 그리고 계단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참 머물렀다.


 죽기가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세상이 완전히 망했는데도 죽기는 무서웠다. 뛰어내릴 용기는 전혀 나지 않았고 난간에 다가설수록 더 두려웠다. 나는 그대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4층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대로 자빠져 한참 실신해 있었다.


 이상이 지금 내가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 핑계다. 자살시도를 했으니 오늘은 좀 쉬어도 되잖아. 안 그래?


 사실 그냥 쉬기만 한 건 아니고 몇 가지 조사를 더 했다. 어제 심하게 멘붕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더니 서버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접속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라디오도 조용하고, 텔레비전도 아무 전파도 잡지 못한다. 가끔 가다가 오래된 방송 전파, 예를 들자면 2002 월드컵 중계의 일부분이라던가 하는 파편적인 전파가 우연히 잡히기는 하지만 그건 별 관심 없는 것들이고 말이다. 원래 한 번 발사한 전파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세상에 남아서 우주를 떠돈다. 얼마 안 가서 뒤섞이고 흩뿌려져 단순히 별에서 뿜어져 나온 전자기파인지 아니면 지적 생명체가 보낸 메시지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일지를 쓰는 것을 새로운 소일거리로 삼았다. 미래에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오거나, 혹은 침팬지에 의해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거나 하면 과거에 어떤 문명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마지막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할 테니까, 이 일지는 그걸 위한 기록물이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일지를 발견한 행운의 주인공이 아직 내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다. 좋아, 내 이름은 탄이다. 외자 이름이다. 성씨가 방씨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그건 아니고, 그 흔해빠진 김씨도 박씨도 이씨도 정씨도 아니고, 한씨다. 뭐, 석씨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