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中年) 이후에 이르러 연속하여 두 아들을 잃고, 소헌 왕후(昭憲王后)가 또 별세하니, 불자(佛者)들이 비로소 그의 학설(學說)을 드리게 되어, 임금이 그만 불교를 숭상하게 되었고, 불당(佛堂)을 세우게 하매,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유신(儒臣)들이 그 옳지 아니함을 극언(極言)하였으므로, 임금이 몹시 미워하여 자주 물리쳤으되, 혹은 이르기를,

"실지의 일에 쓸모없는 선비[迂儒]"

라 하고, 혹은

"더벅머리 선비[竪儒]"

라고도 하였다.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1월 18일 갑오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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