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보고 와서 새벽이라 울적한김에 썰이나 풀어본다

좀 많이 우울할거임







때는 20년 가을, 내가 고3일때 게임개발과에서 기획전공으로 준비중이었음

학교가 작업학교중에서도 거점학교라는 시스템을 하는 특이한 학교였는데 대충 2학년 말에 신청해서 면접보고 합격하면 3학년동안 월요일은 본교, 화수목금은 직업학교가서 수업듣는 특이한 시스템임

이때 나는 게임 기획에 슬럼프가 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갈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려있었음

재능도 없고 그냥 희망만 가지고 이 길에 들어온걸 후회하면서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10월 말 쯤에 학교 축제가 있었음

직업학교인 만큼 학교축제에서는 각 전공을 살려서 제과제빵과는 베이커리카페, 의상디자인과는 패션쇼, 캐릭터 디자인과는 전시회 같은것들을 진행했고 우리과도 기획서 전시 및 철권7 대회를 열었고 이게 꽤 반응이 좋았음

그때 기획서 전시를 하는 학생들이 나 포함 7명인가 있었는데 시간마다 돌아가며 안내 스태프를 했음

그런데 내가 스태프를 하면서 기획서 포스터를 보는데 그때 내 포스터 오른쪽에 있던 엄청난 퀄리티의 포스터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음(위에 짤 가운데 포스터가 내거, 오른쪽게 그 넘사벽)

그러다가 그 오른쪽에있던 포스터를 그린 스태프하고 이야기를 하게됨

안경끼고 머리묶은 전형적인 그림쟁이 스타일의 여자애였음

그런데 서로 게임취향도 비슷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맞는게 꽤 많아서 금세 친해지게되고 이후 관람객이 선정한 최고의 기획서 발표에서 그 여자애의 기획서가 1등, 내 포스터가 2등을 하게됨

그날 이후로 나는 쉬는시간마다 그 여자애랑 이야기하고 게임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며칠이 지나서 지금 그 여자애를 친구정도로 좋아하는게 아니라 짝사랑 하고 있다는걸 깨달았음

그리고 빼빼로데이가 다가왔고 나는 무언가 선물하고 싶었는데 걔한테만 주는건 뭔가 속이 다 보이잖아? 그게 좀 부끄러웠단 말이지...

그래서 그냥 반 친구 모두에게 선물했음

1주일동안 연습해서 만든 슈크림빵임

나는 그 여자애의 선물에만 특별한 장식을 하나 더 올리고 예쁘게 화이트 초콜릿에 밀크 초콜릿으로 장식해서 포장하고 선물했음

당연히 반 애들 모두에게 인기있었고 이후로 내 별명은 제과제빵과였다

이후로도 나는 그 여자애랑 자주 이야기하고 게임도하면서 보냈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백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음

그런데 12월 초, 코로나가 더욱 심해져서 결국 완전 온라인 교육으로 바뀌고나서 나니까 학교에서 못만나잖아?

그래서 어떻게 크리스마스에 약속을 잡지 생각하다가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음

연애상담을 가장해서 카톡을 보내고 꽤 길게 이야기 한 이후 고맙다면서 크리스마스에 고마웠던 애들한테 수제 베리타르트를 선물할건데 혹시 시간있냐고 물어봤음

지금 생각하니 진짜 뻔했네...

결국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에 약속잡아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나 식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주는 레몬티를 테이크아웃해서 나와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서 마시며 이야기를 좀 했는데 이때까지 어떻게 고백각을 잡아야할지 모르겠는거임...

그러다가 그 여자애가 "이제 슬슬 갈까?" 하고 말하는걸 들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남은 기회는 없다' 란 생각이 들어서 그자리에서 할말이 있다고 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음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거... 너였어."

그러자 그 여자애가 말했음

"음, 왠지 그럴거 같더라."

그래서 나는 한번더 용기내서

"만약 내가 여기서 고백하면... 받아줄거야?"

이렇게 말했는데 그때 진짜 심장이 터질거같았음

그러자 그 여자애가 잠시 뜸들이더니

"조금 생각해보고 얘기해도 될까?" 라고 하는거임

그래서 나는 차인줄 알고 씁슬하게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고 그날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음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잔뜩 우울해지고 힘빠져서 나는 어머니가 남겨두신 꼬막비빔국수나 먹고있었는데 갑자기 새벽 1시에 카톡이 온거임

그 여자애였음

카톡 내용이 엄청 길었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나는 연애를 생각해본적 없다, 그런데 너에 대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상담해보니 다들 꼭 너를 붙잡으라고 하더라, 네가 만든 타르트를 먹고 그 정성에 감동했다, 가볍게라도 괜찮으면 한번 사귀어보자.'

나는 이때 진짜 살면서 처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와서 다행이라고 느꼈음

앞으로 그 어떤일이 있더라도 견딜수 있을거라 생각했음








그날 이후로 우리는 꽤 잘 지냈음
아니, 잘 지냈다고 생각했음...

둘다(대부분은 여친이) 바빠서 자주는 못만나고 2주에 한번 만나서 데이트했는데 만날때마다 재밌게 놀고 기념일에는 놀이공원이나 여행도 가고 꽤나 알차게 지냈음

그러다가 작년 7월쯤인가? 그때가 500일 하고도 1달인가 지났을텐데 당시 우리집은 원래 살던 빌라가 월세에서 전세로 바뀌어서 이사준비로 바빴고 나는 여친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음

연애 초기에 여친은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혔고 이 외에도 같이 지내면서 알게된것들은 그녀의 부모님이 이혼하고 빚도 있는등 집안 사정이 매우 안좋았다고 함 (이는 내가 한번 여친의 집에 가봐서 확실히 알았음)

그래서 나는 더욱 그녀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결심했고 데이트 비용 및 가끔가던 여행 비용은 대부분 내가 부담했음

그런데 내가 여친과의 관계에서 의구심이 들었던건 이거였음

'혹시 그녀가 양성애자라고 한건 나를 위한 거짓말 아니었을까?'

고3때 여친은 엄청 친하게 지내던 다른 여자애가 있었음

매일 같이 등교하고 매일 같이 하교하고 주말에 자주 만나서 노는 그런 사이

'사실 그녀는 그 아이를 좋아했는데 내가 끼어든건 아닐까?'

내 여친은 엄청 순하고 착한 사람이라 거절을 잘 하지 못하니 혹시 지금까지 나를 위해 거짓말을 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묘한 죄책감에 밤에 눈물을 흘리며 잠드는날이 많았음

결국 이사가기 1주일전 나는 그날 밤 여친에게 전화해서 내 생각을 털어놨고 여친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함

"나는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연애감정을 느껴본적이 없어"

그래도 난 안심했음

사실 그녀와 데이트할때 알콩달콩한 연인느낌보다는 엄청친한 베프랑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고 그거에 나는 불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6일뒤, 이사가기 전날밤에 터졌음


나는 짐 정리를 하느라 바빠서 점심부터 밤까지 핸드폰 확인을 못했는데 짐정리가 끝나서 핸드폰을 보니까 여친한테서 장문의 카톡이 온거임

내용을 요약하자면

1. 지난번에 말했듯 나는 연애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다

2. 너와 지난번에 전화한 이후로 생각해 봤는데 이 관계는 옳지 않은것 같다

3. 나는 너를 한번도 남친이라고 느끼지 못했고 그동안 너와 지내는 시간이 나에겐 너무 부담스러웠다

4. 앞으로 연락하지 마



이 이별통보를 보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거 같았음

울음을 멈출 수 없고 분노, 슬픔, 우울 이 모든 감정이 머릿속을 채우다가 1시간쯤 지나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녀가 선물해줬던 스웨터를 껴안고 과거에 했던 모든 행위를 후회함

그때 전화하지 말걸, 그때 여행가서 그런말을 안했더라면, 그때 밥먹으면서 그말을 하면 안됐는데, 그때... 고백하지 말걸...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여름에 200일을 기념해서 여행갔던 강릉 해변으로 기분전환 여행을 갔음

그런데도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어히려 더 그리워지더라

더이상 만날 수 없는데, 만나면 오히려 더 미움받을걸 알면서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었음

이후로도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나더라

제목이 900일간의 짝사랑인 이유가 이거임

아직도 미련 가지고 있는거 추한거 아는데... 도저히 잊을수가 없음...

며칠전 꿈에서는 내가 여자였고 고3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대체현실 하이라이트마냥 보여졌는데 그녀하고 친구로 아직도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음

밤이라 그런가 괜히 감성적이게 되서 이런글 쓰게되네

니들은 꼭 좋은사랑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