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광신도에 뛰어난 마법사이자 뒤틀린 신념과 강력한 의지를 가진 멋진 악역 보젤은 어디간거지...?








 불빛 하나 없는 긴 복도 끝, 카오스의 형상을 본 따 만든 거대한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걷는다. 낡은 로브를 걸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대전의 입구를 지나자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 하나 나지 않고 오로지 낡은 로브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만이 조용히 대전을 메운다. 

긴 어둠 속을 걷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머릿속은 강한 신념과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폐허가 된 벨제리아 성에는 이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아니,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행자의 길.

 

“더 이상 이 세계에는 의미가 없으니.”

 

 대전 가장 깊은 곳의 옥좌를 향하며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그의 의지는 더욱 고요해지고, 신념으로 확고해 졌으며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왜소한 그의 뒷모습이 점차 거대해져 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을 혼돈으로 돌리기 위해 다시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

 

 오른손을 내젓자 어둠 속에서 불길이 순식간에 타오른다. 옥좌를 향해 걷는 길을 따라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마족 조각상의 손에 들린 횃불이 불타오르며 어둠을 걷어낸다. 물러난 어둠을 따라 폐허가 된 벨제리아의 대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 이제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걷는 고행자 되어 멈춰진 운명의 수레바퀴를 다시 움직이노니.”

 

 왼손을 내미니 정면의 검은 용을 조각한 조각상의 눈에 붉은 빛이 감돌고 불길한 마력이 제전을 감싸기 시작한다. 어느새 남자의 마력이 검은 머리카락을 불길한 보랏빛으로 물들이고도 모자라 하늘로 솟구치고 폐허가 된 대전을 가득 메운다.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가 남자의 의지에 반응해 그의 왼손 안으로 빨려 들어와 스태프의 형상을 이룬다. 붉은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마력이 태풍처럼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나의 의지, 거친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거목과 같고”

 

 스태프의 붉은 보석이 다시 한 번 빛을 내뿜어 남자의 몸을 감싸고 로브 위를 감싸는 투구와 갑옷의 형상으로 변한다.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흔들림 없으니.”

 

 옥좌로 오르는 계단 아래 부서진 제단에 불길한 검은 마력이 흐르고, 부서진 제단이 스스로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검주군의 공세에 부서졌던 카오스의 동상이 어느새 그 모습을 되찾아 마치 남자의 마력에 호응하듯 불길한 마력을 뱉어낸다.

 

“그 분께서 계시하신 최후의 날이 오면.”

 

 옥좌에 앉아 스태프를 내리찍자 쿵 하는 소리가 대전을 가득 메우고 거기에 호응하듯 진동이 대전을 가득 메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제리아 성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봉인된 무언가가 깨어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기꺼이 새 세상을 맞이하는 노래를 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