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지자,"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붙잡진 않을게, 오빠."

간만에 만났다. 난 무감각해졌다.
넌지시 내뱉은 가시 돋힌 말에 너는 순순히 찔렸다. 어떠한 발버둥없이 말이다.

아팠을까? 안아팠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너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안아팠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어색한 침묵에 일어났을 때 무릎 밑 자리하여 미세하게 떨리던 너의 그 손은 무얼 향한 것이었을까.

뜨거웠던 여름에 만나 정열적인 만남을 갖었던 우린 그렇게 벚꽃이 화사함을 잃은 시절, 단 두 마디를 끝으로 맞닿았던 손을 놓았다.


봄이었다.


무감각해진 신경은 차츰 대학생이었던 나를 공부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다시금 움직였다. 너를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닌, 내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다. 난 너를 이미 잊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 성적은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나왔다. 처음이었다. 무언가 내 노력 그 이상으로 성취되었단 사실은 날 기쁘게 했다.

친한 형들과 학기 마지막 날, 술자리를 가져 서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양 볼이 붉게 타오를 만큼 마셨다. 알코올을 위에 흠뻑 적시다못해 목구멍까지 잔뜩 메우고는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는다. 허나 마음은 적셔지지도, 메워지지도 않았다.

"...ㅇ...ㅑ, 새ㄹ,,,ㅗ 만나야지, 마 쒜꺄, 앙?"

"괜,,,찮하요 혀,,ㅇ,,, ㄷㅏㅏㅏㅏㅏ,,, 괜춘핢니닳,,,"

"니, 애주우우우 그냥, 어? 갸 잊으려고오,,, 밸버덩 치대만,,, 이 나가,,, 응, 참한 야,,, 소개해주울랑께, 갸 만나봐,,,"


괜찮다는 나의 말은 결국 형의 초롱거리는 눈빛에 알겠다로 바뀌었다. 취중만담이었기에 금방 잊혀지겠거니 했던 형의 말은 며칠 뒤 거짓말처럼 주선으로 이어졌다.

-야 얘도 너 맘에 든대 내가 니네 둘 톡방에 초대줄테니까 둘이 알아서ㄱㄱ-

형은 나와 그녀를 톡방에 초대해주곤 발빠르게 퇴장했다.

-야 잘해라 진짜 이런 애 없다 너니까 소개해준거임 내 눈치보지 말고 힘내라 응원한다-


-안녕하세요 랑붕씨 반가워요ㅎㅎ-

-아 저도 반가워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ㅋㅋㅋ-

-저도요ㅋㅋㅋ 우리 톡에서 너무 많은 얘길 나누면 막상 만났을 때 할 얘기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약속만 먼저 정할까요?ㅎㅎㅎ-

-좋죠-

그렇게 우린 약속을 정하고 그때보자는 톡 이후로 단 한 마디의 톡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평상시보다 좀 더 꾸미고 집을 나선다.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살랑거리는 바람, 세상의 시끌벅적함이 보인다.

버스에 몸을 싣는다. 얌체처럼 점잖던 심장은 정류장 하나씩 지날 때마다 노크를 한다.

-저 지금 도착했어요 스타버그 아래 하얀 테니스 치마에 붉은 긴 생머리한 사람 저니까 보시면 아는 척 해주세요ㅎㅎ-

-저도 거의 도착했어요 검정 슬랙스에 흰 박스티 입은 남자니까 먼저 보시면 아는 척 해주세요ㅋㅋㅋ-

버스에 내려 스타버그 앞에 다다랐다. 종착지에 다다른 심장은 요동치다가 마침내 그녀와 마주했을 때 멎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 만큼, 카톡 프사보다 훨씬 예뻤던 그녀는 나를 알아보더니 싱긋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반가워요 랑붕씨. 프사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신대요?"

목소리도 청아했다. 난 그저 멍때릴 수밖에 없었다.

"랑붕씨?"

"아아, 메뉴, 점심 메뉴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이 등신... 모자란 티를 냈다. 다행히도 그녀는 풉 하며 웃곤 내 팔을 잡곤 자신이 아는 맛집이 있다며 데려간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그렇지만 나와는 다른 취업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그 형이 소개받을 생각있냐는 말에 거절했지만 내 프사와 형의 설득으로 맘을 바꿨다고 한다.

쾌활하다. 아름답다. 모든 걸 갖춘 그녀를 내가 만날 자격이 있을까 싶던 찰나 그녀와 전 여친과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보였다. 뇌와 심장은 사물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순간 하나의 감각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손과 맞닿은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저, 지금이 랑붕씨와 첨 경험해보는 거지만 좋네요. 우리 사귀죠?"

"ㅇ, ㅇ,,,네?"

"뭐, 남자만 고백하란 법 있나요? 보니 제 맘에 쏙 드시네요."

당돌한 그녀의 말에 어버버하다가 그에 대한 답변을 내린다.

"화, 화,,, 황송하옵니다."

그녀는 꺄르륵 웃어주며 내 손을 꽉지껴주며 말한다. 오늘부터 1일이라고. 그렇게 우리의 1일은 쌓여간다.

항상 모든 커플이 그러듯, 우리도 싸울 때가 있었다. 왜 자신의 말을 안듣냐며, 다른 이성에게 엄청 잘해주냐며 소리를 높여가며 다툴 때가 많았다. 허나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큰 흉터로 남을 말은 삼갔다. 그리곤 서로 선물을 손에 쥐어주곤 사과하며 소나무처럼 변치 않고 서로의 옆에 있었다.

그렇게 서로 사귄지 3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난 이 기념일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난 내 할일을 마치고선 그녀가 다니는 회사 앞 벤치에서 그녀가 퇴근하길 기다린다. 저 멀리 회전문을 빠져나오는 그녀가 보인다. 폰을 보며 나오던 그녀는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달려오고는 내 품에 안긴다.

"힐 신고 달려오다 넘어지면 어쩌려구."

"히힣, 우리 랑붕씨가 잡아주겠지!"

서로 푸흡하며 식당으로 간다. 메뉴를 주문하곤 이런저런 추억을 상기한다. 풋풋했던 사이는 어느새 농익은 복숭아처럼 달달함이 묻어있었다.

그렇게 얘기하던 중 그녀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기념선물이다.

"우리 3주년 기념 패키지! 이거 진짜 좋아."

나 역시 가방에서 현금 꽃다발을 꺼내어 그녀에게 내준다. 그리곤 싱긋 웃어주며 말한다.

"나와 함께한 랑그릿사 모바일 3주년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