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딘이 크리스와 마주친 순간, 그녀는 킁?킁킁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빨갛게 구겼다.

그리곤 그를 강 기슭으로 불러내곤 노려보기 시작했다.


“ 내 몸에서 뭐, 무슨…냄새라도 나는 건가? ”

레딘은 당황해서 제 어깨에 코를 갖다댔다. 

분명 씻었을텐데 어제 먹은 술 냄새가 남은건가?


“ 어…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 것 같은데…? ”

갸우뚱거리는 레딘의 모습을 보며, 크리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 하! 갑주 구석 구석까지 그,그녀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벼,변명을 하시다니, 아무리 왕자라는 신분이셔도 여긴 유흥 업소가...!!"


“ 아니…크리스. 그 뭐냐, 원래 다소 착각이 많다는 건 알지만, 오늘은 진짜로 모르겠다…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건가…? ”


레딘은 크리스가 대뜸 망토를 잡아당기고 강가로 끌고와서는 하는 말들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늘 그래왔던 착각이겠거니 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크리스는 시골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자란 정순한 수녀인 만큼 다소 상식이 일반 사람들과 어긋나고는 했고, 이 미세한 착각은 특유의 왈가닥 성격과 합쳐져서  주변에 폭풍을 불러오고는 했다


‘후후!그래도 그만큼 순수한 면이 있어서 귀여운 부분이 있죠.

특히 이성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구요?'


거기에 간혹 귀엽다는 얼굴로 크리스에 대해 얘기하는 나암의 모습도 떠올랐다.


‘확실히…’


레딘은 지금 크리스의 태도를 보며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보는 이 마저 당황스럽게 말을 버벅이는 모습은 혼나는 입장임에도 미소를 짓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까지 버벅이며 못볼 걸 봤다는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긴 했다.

약간의 진정이 필요해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 왕자님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시죠!!

하기사, 지금 왕자님 스스로의 양심에 질문을 던져 봐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시겠지만요.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 어떻게 부하와 그런 짓을!!"


" 음...미안하게 됐구나.어쨋거나 볼일이 있는 게 아니면 나는 이만 가도 될까? 어제 못다한 나암과의 회의가.."


“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거기다가  '나암과의 회의' 라고 하셨나요?! 왜 하필 지금이죠?! "


“ 아니, 그건 저번 전투의 내용때문에..그것보다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구나. 이러는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어? "


레딘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간혹 있던 착각이라기엔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도 풀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투 후의 회의가 대체 어디에 지적 할 요소가 있단 말인가


“ 이,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다니... 그래요. 제가 어울려드리죠! 레딘 왕자님, 나암씨는 당신의 부하이자 전술 스승이시죠. 제가 틀렸나요? "


“뭐, 그렇지…? 그런데 나암 얘기는 갑자기 왜? "


크리스의 얼굴이 마치 토마토마냥 달아오르면서 입꼬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레딘은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런데 와,왕자님은 당신의 스승이자 부하가 되는 자와 몸을 섞었군요 ”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했다


“푸흡! 아,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릴-!!!”


“시치미를 때시려고 당황하시는 척 하셔도 소용 없어요!

왕자님 몸에서 나암씨의 내,냄새가 진동하니까!! ”


어제 회의중에 나암이 건낸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술에 취한 나암이 덮친 걸 알지 못하는 레딘은 황당함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주도권을 잡았다 생각은 크리스가 이때다 싶어서 그를 몰아세웠다.


“욕정을 못 이겨 군법과 도덕을 저버리다니. 그야말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네요 정말!! ”


마침내 선을 넘어버린- 어쩌면 처음부터 선을 지킬 생각조차 없었던 크리스의 어조에 마침내 레딘도 발끈해 버렸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아, 그래. 크리스 '수녀'. 그쪽 말이 맞다 치지. 그런데, 만약 맞다 해도 그럼 수녀에 불과한 그대가 왕자에게 이렇게 대하는 건 군법과 도덕을 지키는 행위인가?무엇보다도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한들, 그건 나와 나암, 둘의 개인적 사정이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크리스가 무슨 권리로 끼어드려는 거지? 응? 도덕이 모자란 나는 잘 모르겠네만 ”


레딘이 이를  문 채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나암과의 관계는 어릴적 무렵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소중한 신하 관계이자, 친구 관계 더 나아가선 남매같은 느낌도 있는 사이 였다.


철 없던 어릴적 무렵엔 생리통을 앓던 나암한테 가서

'피의 축제가 시작 됐다'

'출혈 도트뎀을 받고 있구나'

'뱀파이어가 성에 침입하지 않게 구석에 가서 자거라'

따위의 말을 하다가 신하의 고통은 왕의 고통이라며 자신을 매달더니 자기가 생리통이 올때마다 배를 후려치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역으로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난 사이인 만큼 신하와 친구, 가족의 정이 아니라 남녀의 정으로 생각이 드는게 불가능할 지경 이리라——

...라고 적어도 레딘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레딘이 머리 속을 정리해 나갈때 앞에 있는 크리스도 심란한건 마찬가지였다.


크리스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나암과 레딘의 관계를, 나암을 향한 레딘의 신뢰를 질투하던 크리스 였다.


크리스를 대하는 태도가 친한 동료 정도라면, 나암을 대하는 태도는 총애하는 부하 혹은 그 이상이었다.


때문에 ‘나와 나암 둘의 개인적 사정’이라는 레딘의 말에 이번엔 크리스가 발끈해 버렸다.


크리스는 솟구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말을 돌리시는 건가요? 그런다고 레딘님이 도덕을 저버리고 부하이자 스승과 수..숭한짓을 했다는 사실은! 야한 짓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무,무엇보다 나암씨 냄새가 풀풀 나는걸! 나암씨랑은 옆방 이여서 체향은 기억한단 말이에요!!"


“그런거 안했대도!? 그리고, 뭐 옆방이라고 체향을 기억한다고? 대체 어떻게 그런 쓸대없는 걸 기억한단 말이냐?! 설마 내 냄새도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 맞지?! 아, 아니 그것보단 지금 중요한건..!"


"..기억해요"


크리스의 얼굴은 다른 사람이 봤다면 '저러다가 폭발하는게 아닌가' 싶을 만큼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가 역시 부끄러움을 참는듯 눈물이 차올라 있었으나 그녀는 대화가 시작한 이후 한번도 레딘에게서 눈을 돌린 적이 없었기에, 그녀의 에메랄드 빛으로 일렁이는 눈동자는 마찬가지로 빨갛게 달아오른 레딘만을 투영하고 있었다


"...뭐? 잠,잠깐ㅁ"


레딘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진정시켰던 머리가 다시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까의 열은 크리스의 무례에 대한 분노의 열이였다면 지금은 당황과 부끄러움과 곧 나올 크리스의 발언에 대한 대비, 그리고 약간의 두근거림을 담은 열이였다


"기억 한단 말이에요! 지금 그..나암님이 섞인 은은한 술냄새가 나는 냄새부터! 평소에 갑옷을 입고 다니시던 때의 냄새랑! 훈련 하시느라 흙이랑 땀에 더러워지셨을 때랑.. 전장에서 절 감싸주셨을때의 냄새랑...또..또! "


"알았다 크리스 내가 잘못했다 나암과 회의하러 가지 않으마!

나암의 냄새가 나한테서 나는건 나암이 취한 나를 옮겨줘서 그럴거야! 분명 그래야먄 한다! 만약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물어보마! 그러니 제발 그만해다오! 잘못했다!"


크리스의 이어지는 충격 발언은 아무리 레딘이어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암의 체향을 기억한다는 거 까지는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되었다. 같은 여성에다가 옆 방을 쓰니 같이 목욕이라도 갔다가 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도 가능했다.


'근데 대체 내 냄새는 왜 기억한다는 말이냐!

 내 냄새가 그렇게 심하던가? 아니 그것보다 어찌 저렇게 상황별로 상세히 기억을 하는 거지? 흙과 땀에 더럽혀진 냄새를 기억한다고? 어째서?! 그딴 냄새 좋지 않을게 분명 하거늘..!'


훈련이나 특히 전투는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레딘 자신도 병사들과 서스럼없이 지내는 만큼 흙과 땀의 냄새는 잘 안다.


 빈말로도 좋게 평해줄수가 없으며 훈련이나 전투의 막바지에는 모두가 그 냄새로 뒤덮여서 코가 적응(물리)를 하여 익숙해진 것 뿐.

 레딘이 왕자로서의 책무 때문에 내성에 있다가 업무가 끝나고 훈련장에 갔을 때 마중왔던 나암의 뭐라 형용 할 수 없는 냄새에 '생리중이면 쉬는게 좋다'는 개드립을 참지 못하고 했다가 이번엔 다른 여성 부사관들과 합세해서 또 나무에 매달린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자신이 훈련한 뒤 나는 냄새도 이와 다를 바 없을진데 이걸 기억한다고? 레딘은 순수한 수녀인 크리스가 다른 누군가한테 '레딘 왕자님의 땀 냄새' 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만약 이 모든게 보젤이나 다르시스 제국이 레딘을 수치사 시키려는 계획이라면 성공을 목전에 둔 책략이리라.


"내 무릎이라도 꿇을테니 제발 그런 기억은 좀 잊거라 좋은 것만 기억해도 다 떠올리지 못하는게 인간인데. 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걸 기억.."


레딘이 얼굴을 크리스 못지않게 물들인채 진짜로 무릎을 꿇을 기세로 비는 와중이었다.


”쓸데없지 않아요!"


"..뭐?"


"쓸데없지 않다구요 왜냐면 전..저는 레딘님을 좋아하는..!"


그때 갑자기 퇴근을 하려던 보젤이 나타나서 각성기를 박고 레딘과 크리스는 발이 짤린 3칸 뚜벅이라 불타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