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으로 쓴 야설임






"야야야 슛! 슛!"

"으아아악! 야! 제껴! 제끼라고!"


함내 풋살장에서 들려오는 스틸라인 용사들의 힘찬 목소리에 나는 잠시 발을 멈췄다.


"막아막아막아! 노움! 막아!"

"흐읍!"

"골! 골!"


하카에 오락 시설을 충원하면서 같이 함내에 조촐하게나마 꾸며 놓은 다용도 풋살장은, 입안 당시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수해 온 인조 잔디는 무용지물이 되는 일 없이 힘차게 축구화 스파이크에 밟히며 본분을 다하고 있었고, 골대와 공은 서로 머리를 맞부딪히며 투박한 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원들의 목구멍에서 울려퍼지는 저 우렁찬 소리. 정박할 때가 아니면 이런 간단한 구기 종목도 즐기기 힘든 처지였기에, 그것이 해소되었을 때의 만족도도 각별한 듯했다.


나는 그 생기 넘치는 현장에 이끌리며 슬쩍 문을 열었다. 내부 순환으로 환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을 텐데도, 더운 공기와 싱그러운 땀냄새가 훅 끼쳐왔다. 톡, 토그르르... 마치 마중 나온 것처럼 내 발앞으로 공 하나가 굴러왔고, 나는 무심코 발끝을 대어 멈춰세웠다.


"방금 그거 오프사이드 아닌가요? 이프리트 하사님 수비수 라인도 제치고 완전 깊숙이 들어오셨는데요!"

"야이, 누가 깊었다고 그래? 그게 오프사이드면... 어, 사, 사령관?"

"스, 승리!"


레프리콘과 가볍게 판정 시비를 벌이던 이프리트가 날 보고 멈춰섰다. 나는 손을 들어 경례를 붙이려는 스틸라인 분대원들을 제지하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 말했다.


"됐어, 금방 갈 거니까 하던 거 마저 해. 그냥 구경 온 것 뿐이야. 재밌게 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괜히 더 있어봤자 분위기만 어색하게 만들 뿐이겠지. 더 보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 이프리트마저도 저렇게 온몸이 땀투성이가 될 정도로 정력적으로 뛰는 걸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를 지경이었다. 헐떡이면서도 발갛게 상기된 대원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런 종류의 스포츠에 굶주렸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발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브라우니의 말이 들려왔다.


"사령관님~ 같이 한 판 어떠심까?"

"브, 브라우니!"

"하하, 권유는 고마운데... 인원 안 맞지 않을까?"

"괜찮슴다~ 어차피 저희도 인원 안 맞아서 한 명이 심판 보고 있었슴다. 사령관님이 껴 주시면 오히려 다 같이 뛸 수 있어서 이득임다!"

"..."


그 말대로, 홀로 검은 색 조끼를 입고 휘슬을 물고 있던 레프리콘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브라우니의 돌출행동에 당황한 모양이었지만, 내 생각만큼 그렇게 꺼려하는 기색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브라우니가 총대를 매 준 것에 대한 안도감까지도 엿보였다. 뭐, 호드 애들이랑 카드 치는 것보다 훨씬 건전한 활동이니까 콘스탄챠나 알파도 뭐라 하진 않겠지. 마침 몸도 근질거렸겠다.


"그럼... 그럴까?"

"예이!!! 좋슴다, 좋슴다! 자, 이거 입으십쇼!"


나는 가볍게 몸을 풀며 브라우니가 건네 주는 파란색 조끼를 걸쳤다. 맞은편 라인으로 가는 브라우니의 빨간색 조끼가 돋보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에서 선수로 전향한 레프리콘은 조금 걱정스런 기색으로 내가 가볍게 찬 공을 센터 스팟에 두며 킥오프를 준비했다. 심판이 없으니 패스하는 소리가 곧 경기 재개 시그널이었다. 


퉁!


레프리콘이 뒤편의 브라우니에게 공을 패스하며 시작을 알렸다. 브라우니는 공을 받자마자 호기롭게 웃으며 몰고 달려왔다. 나는 브라우니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브라우니라고 해도 이 거리에서 달려오는 기세를 죽이고 페이크를 넣을 순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나와 어깨싸움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흡...!"


당연하게도, 브라우니는 스루 패스를 하기 위해 내 세 걸음 앞에서 왼발을 디디며 오른발로 걷어찼다. 목표는 당연히...


"엇...!?"


아까 오프사이드로 주의를 받을 정도로 깊게 파고들던 이프리트. 킥오프를 시작하자마자 눈썹이 휘날려라 뛰는 것을 봐두었다. 남은 건 완벽하게 예측한 공의 경로를 내 몸으로 가로막는 것 뿐이었다. 읽혔을 거라 예상도 하지 못했는지 브라우니의 눈에 이채가 어렸고,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공을 받아냈다.


쿵!


...내 사타구니로.


"...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잠시 몸이 가늠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나...? 싶을 즈음에....


"꺼헉...!"


순식간에 하늘이 샛노래지며 내 몸이 절로 앞으로 굽었다.


"헉... 끄어억...!"

"사, 사령관님! 괜찮으심까? 사령관님!"


일석이조라고 하였던가? 아마 당구로 비교하면 쓰리쿠션이겠지. 발등을 큣대 삼아 공과 내 불알로 훌륭한 쓰리쿠션을 성공해 낸 브라우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대로 두 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허벅지를 오므리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주인님! 주인님!"


처음부터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어느새 리리스가 풋살장의 문짝을 발로 차 날리며 폭풍처럼 날아왔다. 날아오는 도중에 눈대중으로 무슨 일인지 완벽히 파악하고는, 극심한 고환통증의 기전이 되는 부분을 해소하는 완벽한 조치를 행했다.


툭, 툭, 툭...


고통에 웅크린 내 꼬리뼈를 더없이 진지하게 두드려주고 있었다. 모양새로는 더없이 거시기하지만, 경호 인력으로서 지녀야 할 의학 지식을 완벽히 체득하고 그것을 남김없이 펼쳐내는 더없이 프로페셔널한 면모였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나는 리리스에게 다시 한 번 반했다. 다행히도 리리스의 응급처치는 효과를 보아서, 통증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신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에서 신음은 나올 정도로 격감했다는 뜻이다.


"각하! 이 무슨...!"


정확히 리리스보다 10초 정도 늦게 달려온 마리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단말기를 들었다.


"진도개 하나 발령, 진도개 하나 발령."


함내에 경보가 울리며 비상 방송이 들려왔다. 마리는 어느새 무시무시한 얼굴로 누군가를 호출하고 있었다.


"용 중장, 들리십니까? 나 마리 소장입니다. 각하께서 위협에 빠지셨으니 속히 함대를 복귀시키세요."

"뭐? 이 무슨... 지금 전방 병력을 빼란 소리요?"

"오늘은 여기가 최전방이란 말입니다! 잔말 말고 빨리 복귀나 해!"

"마리, 당신 미쳤어? 이 병력이 누구 상대로 봉쇄 작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철충 놈들 오늘 때려죽여도 안 내려옵니다! 미적거리다가 인류 망하는 꼴 보고 싶어?!"

"됐고, 집어치우고 빨리 각하나 바꿔! 이게 뭣들 하는 거야!"

"바꿔주세요."


리리스가 반강제적으로 마리의 손에서 단말기를 넘겨받았다.


"용 참모님, "넌 또 뭐야!" 저 경호실장 리리스입니다. 주인님께서 지금 지휘를 하실 수 없는 상황이니 빨리 병력을 이끌고 복귀하세요. 당신도 주인님이 걱정되신다면..."

"야 이 뇌가 썩어 빠진 년들아. 니들이 지금 서방님 모시고 무슨 작당질을 벌이고 있는 건진 모르겠는데... 니들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전함 몰고 밀고 들어가서 니들 대가리를 뭉개 버릴 테니까."


설명이 부족한 채로 떠는 리리스와 마리의 호들갑이 용을 단단히 오해하게 만들었고, 간간히 들리는 소리로만 봐도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오르카가 붕괴될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고작 내가 풋살 하다가 거시기에 공 맞은 걸로! 이제야 저항군이 제대로 세력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런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멸망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채찍질해 간신히 소리를 쥐어 짜냈다.


"...아."

"주, 주인님?!"

"각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목이 막히고 가래가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댐에 작은 구멍을 내듯, 간신히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니 다음부터는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낼 수 있었다. 여과할 여유도 없이 나는 마구 말을 쏟아냈다.


"...야야야야! 그만, 그만들 해...! 빨리 경보 취소해, 이 또라이들아! 명령이야! 명령이라고!"


...파프니르를 상대로도 하지 않았던 명령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



내가 축구하다가 부랄에 공을 맞은 걸로부터 시작된 광기는, 사건 발생 후 20분이 경과하고 나서야 간신히 일단락됐다. 다행히 스카이나이츠와 둠브링어는 기수를 돌리자마자 다시 재전파해서 본인들 위치로 복귀시킬 수 있었고, 발할라는 지휘부의 혼란이 정리될 때까지 대기를 고수하여서 수습하기 한결 나았다. 호라이즌과 스틸라인 사이에 생길 뻔한 갈등도 잘 설명해서 해결했다. 나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인류 최후의 사령관 쯤 되면 꼬추에 공 맞은 것도 5분 안에 전군에 전파가 되는구나...


나는 그 원인일 것이 분명한 닥터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응, 오빠의 바이탈 사인은 항상 체크하고 있거든."


닥터로서는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겠지만, 지금은 더없이 얄미웠다. 그래도 닥터 덕분에 상황이 더 크게 번지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경미한 충격이라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에, 080 기관에서 즉시 움직여 발동되면 더 골치 아플 프로토콜들을 미리 차단해두었기 때문이다.


"...너무 지나치지 않아?"


그래도 이 말쯤은 하고 싶었다. 마리는 아직도 고집을 부리며 진도개를 둘로 유지하고 있었다. 내 신변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받으면 그 때 해제하겠댄다. 그럼, 나중에 진도개 해제한 거 전군에 전파할 때는 "각하께서 축구하다가 서혜부에 공을 맞으셔서 고환에 충격이 갔는데, 의사 소견으로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하여 진도개를 해제하기로 했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건가? 상상만 해도 쪽팔림에 소름이 돋았다.


닥터는 손가락을 들며 가볍게 답했다.


"전혀 지나치지 않아. 뭐... 이번에는 신체적으로 영구적인 손상이 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고통 때문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서 불능이 되는 사례도 과거엔 있었어. 그리고 이 난리가 터진 김에 나도 말하는 건데, 오빠는 평소에도 너무 안전불감증이야. 오빠의 몸은 오빠만의 것이 아니잖아. 잘 알고 있으면서..."

"아, 알았다고! 다프네한테 소견서 받아오면 진도개 푸는 거지?"


나는 닥터의 서글프면서도 담담한 설교를 뒤로 하며 보건실로 향했다. 동네방네 소문 다 났으니까 다프네도 알고 있겠지.



**



"주인님... 바지부터 벗어 주시겠어요?"

"...너무 지나치지 않아?"


그렇게, 나는 멍청하게 아까 닥터 앞에서 했던 말을 다프네 앞에서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