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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진 유일한 포티아의 사진

 



 

 

포티아에겐 소중한 남편이 있었어요.

포티아의 손을 잡아주고

포티아의 이름을 불러주고

일개 바이오로이드에 불과한 포티아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죠.

비록 직업 군인이었던터라

집안을 비울 때가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포티아는 괜찮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남편을 볼 수 만 있다면

그녀에겐 더 바랄것도 없었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왔어요.

갈수록 심해져가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느라

부대를 벗어날 수 없을거라고요.

그 소식을 듣고 포티아는 펑펑 눈물을 흘렸지만

남편의 따한 인사를 받으며 떠나보내고 난 후,

그녀는 다짐했어요.

반드시 우는 얼굴이 아닌 웃는 얼굴과 함께

남편을 반길 날을 맞이 할 것이라고.

 


그를 떠나보낸 후 그녀의 하루 하루는 슬픔과 함께 했어요.

남편이 없는 집 안에서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저녁을 먹고

밤마다 느꼈던 남편의 온기도 없이 잠을 청하고

뚝 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마루를 닦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기 그지 없었거든요.

하루에 한 번씩 왔었던 남편의 연락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한 번씩

간격이 서서히 멀어지더니

이제와서는 아예 연락도 오질 않았거든요.

포티아의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어요.

왜 소식이 없는걸까.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혹시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건 아닐까.

끝도 없는 의문이 그녀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그렇게 불안에 두려움에 빠진채 어느덧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어요.

편지 한 통이 집에 도착하자

수신자가 남편임을 확인한 포티아는

기쁜 마음에 서둘러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어요.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신의 얼굴을 보러 갈 수 있을것 같아'

 


짧은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포티아는 행복에 잠겼어요.

드디어 남편을 볼 날이 다가왔으니!

오랫만에 웃는 얼굴로 온 집안을 깨끗히 청소하고

이 옷 저 옷을 입으며 바쁘게 단장하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그 이후론 무엇을 할 까

행복한 고민에 잠긴 채 길거리를 나서는 그녀.

TV가 전시된 매장을 지나가다가

매장에서 흘러나온 긴급 속보를 엿듣게 되었어요.

 



12월 23일.

북한의 도발이 연이어지는 가운데

고성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날아온 미상의 포탄이

고성의 한 부대에 떨어진 것입니다.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포티아는

들고 있었던 장바구니도 내팽개친 채

서둘러 가까운 공중전화로 뛰어가

남편의 부대에 전화를 걸었어요.

허나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그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송신음 뿐.

포티아는 어쩔줄을 몰라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러나 포티아는 곧 마음을 다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갔어요.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그이는 분명 괜찮을거야.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눌러가며

포티아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어요.

그저 남편을 믿고 기다리는수 밖에.


하루가 지나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어

포티아의 불안은 최고조가 되었어요.

시계바늘은 12시를 향해있고

탁자위의 식사는 어느덧 식어버렸는데도

남편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거든요.

 


째깍 째깍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가는데

초조한 포티아는 앉아 있을 수 조차 없는데

그이는 왜이리 늦는걸까

왜...

 


쿵 쿵 쿵!

 


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그 사람일까?

 

포티아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서둘러 현관을 향해 뛰어갔어요.

이윽고 문을 열자,

지친 얼굴을 한 남편의 모습이 눈 앞으로 들어났어요.

만감이 교차한 포티아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향해 안겼어요.

 

여보!

 

포티아가 울먹이며 소리쳤어요.

 

보고싶었어요! 정말, 정말 보고싶었어요!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보고싶었어요, 여보...

 

남편의 품에서 포티아의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어요.

남편이 그런 포티아를 쓰다듬어주며 말했어요.

 

미안해 포티아. 진작에 당신을 보러 왔어야 했는데.

 

덜덜 떨리는 남편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며

포티아가 말했어요.

 

괜찮아요. 그저 당신을 볼 수만 있다면,

제 곁에 당신만 있는다면

전 그걸로도 족해요. 사랑해요, 여보.

 

포티아는 남편과 입을 맞췄어요.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그들의 시간.

고통스러운 일년이 이 한 순간으로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서서히 떨어지며 포티아가 말했어요.

 

들어와요 여보. 저녁이 식긴 했지만

다시 데우면 돼요. 자, 어서...

 

허나 남편은 움직이지 않았어요.

 

미안해, 포티아. 그럴수 없어.

 

한순간 포티아의 얼굴에 두려움이 보였어요.

 

포티아, 미안해. 이번 외출도 겨우 겨우 나온거야. 이제...

 

포티아가 눈물을 흘렸어요.

 

안돼요 여보. 그러지 말아요.

 

남편이 포티아의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전시상황에 이렇게 나온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어.

시간이 없어. 복귀시간 맞추려면 지금 돌아가야해.

 

포티아는 절망에 빠진 채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붙잡았어요.

 

제발, 절 떠나지 말아요. 당신 곁에 있게 해줘요.

더 이상 당신의 사진을 보며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당신과 헤어지는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한 시간이라도 좋아요.

한 순간만이라도 좋아요.

제발 제 곁에 있어주세요.

제발...

 

남편은 망설였어요.

전시상황에서 복귀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중죄를 피하진 못할텐데.

하지만 그는 떠나질 못해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는

애절한 표정으로 방울 방울 눈물을 흘리는

포티아의 얼굴을 보며 그는 크게 망설였어요.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남편은 선택했어요.

포티아의 곁에 있기로.

슬퍼하는 그녀의 곁에 있어주기로.

포티아의 눈물이 미소가 되어

그녀가 이끄는 손길에

남편은 집 안으로 들어와

일 년만에 느끼는 따뜻한 온기와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

 


새벽 3시

알람이 울리고 남편이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일어났어요.

 

가봐야 해.

 

서둘러 의복을 입으면서 포티아에게 말했어요.

 

이번엔 정말로 가야 해.

 

황급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본 포티아는 순간 두려움에 빠졌어요.

혹시라도 지금이 마지막 만남이 되는것은 아닐까?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는것은 아닐까?

아내가 불안함에 남편의 손을 붙잡자

그는 포티아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약속했어요.

 

꼭 다시 돌아올게.

반드시 돌아와서

당신을 품에 안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줄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줘.

 

남편의 그런 다짐에 포티아는 어쩔수 없이

그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어요.

남편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불안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괜찮았어요.

남편은 약속을 어겼던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리라고.

반드시 그럴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몇 일 뒤...

그녀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졌어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고

천천히 읽어 내리는 중

그녀는 큰 충격에 빠졌어요.

남편이 부대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북한에서 다수의 무장공비가 내려와

많은 사람을 죽고 다쳤다고 적혀있었어요.

그리고 포티아의 남편은

쳐들어오는 적들에 맞서 부대를 지키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적혀있었어요.

불쌍한 포티아.

그녀는 벅차오르는 슬픔에 못이겨

털썩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 손.

떠나가는 그 이의 손을 놓질 말았어야 했는데.

멀어져가는 그 이를 다시 불러세웠어야 했는데.

다시는 떠나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후,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절망에 빠진 포티아는 

다시는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고 해요.

따뜻했던 그날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홀연히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가고 말았답니다.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