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이 내게 노래를 들려주던 그 아이의 목소리가 선명하구나. 나는 세이렌이 걸터앉고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언제나 좋아했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노을이 노릇노릇 져가는 갑판에서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듣는 건 이 멸망한 세상에서 흔치 않게 찾을 수 있는...잔잔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었단다.


그렇기에 그 아이가 날 위해 본보기로 깊은 바닷속 존재와 계약한다고 했을때 처음엔 말리려고 하였다. 하여나 세이렌의 겉 모습만이 소녀일뿐, 그녀가 이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함포와 적을 찢어발기는 기관포를 다룬다는걸 기억했을때 내 생각이 바뀌더구나. 난 그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존재들이 세이렌을 얼마나 더 막강하게 만들 수 있을 지 궁금하였다.


계약은 성공적이었지. 세이렌은 겨우 함포와 대공포 따위로 노는 수준에서 벗어났어. 그녀는 자신의 적을 찢어발기는 바다의 폭풍이요, 모든 뱃사람의 공포라 불릴 진정한 괴물로 거듭났다. 그 댓가는 오직 노래만 할 수 있는 목소리와 커다란 생선 꼬리와 맞바꾼 두 다리, 그리고...약간의 이성. 예전같았다면 갈기갈기 찢어지고 남은 철충이나 이물들을 무기에 걸어놓고 헤실거리지 않겠다만은. 그래도 노래를 들어주던 내가 곁에 있으니 세이렌은 행복해보이더구나.


그 잃어버린 이성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갈증이 되어 돌아왔을때,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홀로 그 자리에서 얼마나 버티고 있었을까? 다가온 기척이 나인줄 알고 기대에 차서 고개를 돌리던 횟수는 몇 번이나 될까? 더 이상 노래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세이렌이 얼마나 미쳐있을지 두렵기까지 하구나...


너를 보고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하여 방심하지 말거라. 네가 내가 아닌 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넌 다시는 바다를 예전과 같이 볼 순 없을테니.



채색은 못하겠다.


다리를 유지할까 꼬리로 바꿀까 하다가 고대의 이물과 계약하고 괴물이 되었다는걸 강조하기 위해 꼬리로 결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