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공포묘사 있음




[똑...똑…]


늦은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에 에밀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단잠을 방해받은 에밀리는 우웅..하고 뒤척이며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물방울 소리는 전혀 잦아들지 않았다.


[똑...똑…]


필요하다면 달리는 제녹스 위에서도 잠들 수 있는 에밀리였지만,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 소리는 미묘하게 에밀리의 신경을 긁었다.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에 결국 에밀리는 완전히 잠에서 깨 버렸다.


"시끄러워..."


에밀리는 중얼거리며 귀를 막은 자세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늦은 시각, 동료들은 모두 잠들어 있어 숙소는 놀랍도록 어둡고 조용했다.  

동료들, 그리고 자신의 단잠을 위해 거슬리는 물소리를 없애 버리기로 결심한 에밀리는 느린 걸음으로 터벅 터벅 숙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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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오르카호는 꽤나 을씨년스럽다.

기본적으로 오르카호는 심해 깊은 곳에 있는 잠수함이기 때문에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쓰이지 않는 구역이 절반이 넘는다. 그렇기에 가끔 순찰을 도는 브라우니들을 제외하고는 오르카호의 복도를 돌아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똑..똑…]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규칙적인 소리는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물이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였지만, 그 소리는 기묘하게도 에밀리의 마음을 잔뜩 어지럽혔다. 


“..이상해.”


에밀리는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깨닫고 두 손을 모아쥐었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이 에밀리의 마음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에 에밀리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소리가 들려오는 어두운 복도를 응시했다.


“어디 있는거야..?”


돌아올리가 없는 대답을 던지고 에밀리는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어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몇개의 골목, 몇개의 철문을 지나 어제의 전투로 인한 피로가 몰려왔다.

제녹스를 타고 가면 금방일텐데.. 하고 생각하던 에밀리의 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복도 끝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검은 그림자가 가까워짐에 따라 물방울 소리도 가까워져만 갔다. 순찰을 돌던 브라우니일까? 아니면 빈 침대를 보고 자신을 찾아온 헌터인 것일까? 

어느 쪽이던 오르카호에 승선한 이들 중 에밀리에게 적대심을 가지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에밀리는 이유 모를 공포심을 느꼈다. 


"누구야..?


에밀리는 멍한 목소리로 물으며 검은 그림자에 다가섰다. 무서우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헌터 언니야?"


그림자가 다가옴에 따라 똑똑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어둠에 익은 에밀리의 눈이 마침내 그림자의 정체를 밝혀냈다.


"사..령관?"


어째서 아까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눈앞의 상대가 사령관이라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머릿속으로 사령관의 뇌파가 사납게 쏟아져 들어왔다.


 "조금..아파..."


신경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사령관의 뇌파에 에밀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령관은 에밀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똑,똑 소리는 더욱더, 가까워진다.


"..사령관이야?"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에밀리는 달려가 안기는 것 대신 가만히 멈추어서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아아, 에밀리구나, 잠이 오지 않았나 보네?”


낮고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걱정스러운 말투와 손에 감긴 붕대,


“사령관이 맞구나.."


에밀리는 캐노니어의 자매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사령관 역시 에밀리의 불안감을 눈치챈 듯 부드럽게 에밀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사령관...괜찮은 거야?" 


어두운 복도 가운데, 사령관의 품에 안긴 에밀리는 그 손에 감긴 붕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입힌 것은 에밀리 그 자신이였지만 고의가 아니였기에 에밀리의 걱정은 정당했다. 


"하하,괜찮고 말고, 그냥 살짝 베인것일 뿐인데 뭐" 


에밀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큰 소리로 말한 사령관은 에밀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똑...똑…]


이 기묘한 물방울 소리는 사라지지않고 있다. 에밀리는 천천히, 예민한 바이오로이드의 청각으로 물방울의 근원지를 찾았다. 오래지 않아 에밀리의 시선이 사령관의 오른손에 닿았다. 그리고 드물게도 에밀리가 짧은 헛숨을 들이켰다. 


“앗..상처가..”


사령관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생긴 피웅덩이에 사령관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예의 똑..똑 소리가 들려왔다. 

에밀리는 솟아오르는 죄악감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령관..정말...괜찮은 거야...?" 


"하하,괜찮아, 그냥 살짝 베인것일 뿐인데 뭐." 


기묘할 정도로 아까와 똑같은 대답에 위화감을 느낀 에밀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하하,괜찮아, 그냥 살짝 베인것일 뿐인데 뭐."


"사령관..역시 아직 아픈거지? 어서 치료 해야해..."


에밀리는 사령관을 수복실로 이끌기 위해 꼬물거리며 사령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에밀리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했다지만 지나치게 강력한 그 힘에 당황한 에밀리는 몸을 비틀었다.


 "놔줘..사령관..아파..."


 "하하,괜찮아, 그냥 살짝 베인것일 뿐인데 뭐"


고장난 AGS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령관을 보고 에밀리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사령관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는 어느세 바닥에 커다란 웅덩이로 변해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에밀리는 힘차게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바이스로 조이는 것 처럼, 사령관은 더욱 강한 힘으로 에밀리를 안고 놓지 않았다.

에밀리의 팔이 사령관의 힘에 의해 천천히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앗..!!아퍼..아퍼! 사령관!!아아악!!”


전투에 자주 나간다지만 항상 후열에서 제녹스만을 발포하는 에밀리에게 뼈가 생으로 뭉개지는 고통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였다. 생생한 격통에 에밀리는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으로 떨리는 눈꼬리 끝에 눈물에 맺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미안해..사령관..미안...”


역시 사령관을 아프게 해서 사령관이 화가 난 것일까?

에밀리는 고통을 삼키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무표정한 사령관의 눈빛을 마주한 에밀리는 순간 실험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한기를 느끼고 몸을 옅게 떨었다. 


손에서 피를 흘리며, 텅빈 눈을 한 사령관의 얼굴이 다가온다, 미안, 미안해 사령관,..에밀리는 어쩔줄 몰라하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동시에 사령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


에밀리는 사령관을 돌아보았다. 사령관의 오른손을 기점으로, 사령관의 몸은 천천히 갈라지고 있었다.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은 순식간에 퍼졌다. 사령관의 몸이 균열을 따라 토막나는 것은 순간이었다. 팔,가슴 그리고 머리.. 


"하..하..괜..찮..."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에밀리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조각나 바닥에 흩뿌려진 사령관이 속삭인다.


"나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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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 표정은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꿈..인거야?”


모든것이 꿈인것을 알아챈 에밀리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의 오르카 호는 굉장히 조용해서, 에밀리는 비스트 헌터의 고른 숨소리와 똑딱거리는 시계초침소리 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사령관..." 


에밀리는 눈을 감고 그날 사령관의 표정을 떠올렸다. 자신이 사령관을 다치게 한 그날, 분명 그는 괜찮다고 말하며, 웃는 얼굴로 자신을 달래 주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손이 베이는 순간, 주변에서 크게 숨을 삼키는 소리, 등뒤에서 느껴지던 불안한 공기와 포장지 위에 선명하게 떨어지는 사령관의 붉은 피는 에밀리에게 지울 수 없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실수던 고의던,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을 다치게 하는 것은 역린과도 같았다. ‘그’ 라비아타 조차도 칼을 겨누었다는 이유 만으로 괴로워 하지 않았는가.

감정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뿐, 감정 모듈이 불완전한 에밀리도 크게 다를것은 없었다. 


“이상…해...”


선명하게 떨어지는 피를 떠올리자 숨이 막히며 시야가 좁아졌다. 에밀리는 비틀거리며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순간 이명이 울리며 꿈에서 보았던 사령관의 환영이 떠올랐다. 


온몸에 구멍이난 사령관들이 피를 흘리며 에밀리에게 다가온다. 


‘왜,왜? 나를 찌른 거야 에밀리? 아파,너무 아파.’


"미안..미안해.."


에밀리는 귀를 막았다. 하지만 환청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에밀리의 귀 끝을 맴돌았다.

너무나 괴로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밀리는 지금 사령관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언제던 찾아오렴."


문득 사령관이 해준 말이 떠오른 에밀리는 벽에 걸린 자신의 코트를 꿰어입고 숙소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복도가 상당히 어둡기는 했지만.. 에밀리는 사령관을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방 구석에 놓여있던 제녹스가 부드럽게 떠올라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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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잃어버렸어.." 


에밀리는 어두컴컴한 복도 가운데에 서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사령관을 보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캐노니어 숙소 밖까지 나온 것은 좋았다. 사령관의 방에 찾아간 것 역시도 좋았다. 하지만 사령관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든 사령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무작정 나와 오르카호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드넓은 오르카호에서 사령관을 찾는 것은 짱박혀 있는 이프리트를 찾는 것 보다 더욱 어려웠다.


포기하고 가서 잘까, 하고 생각하던 에밀리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브라우니들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 떠들며 다가오던 브라우니들은 에밀리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저기..”


"어...에밀리님..아닙니까? 길을 잃은 겁니까?"


 에밀리가 보호자 없이 다닌다는 것은 길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그것은 브라우니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였기에 브라우니들은 에밀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렇게 물어보았다.

에밀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사령관에게 가려고 하는데...사령관은 지금 어디에 있어?"


“아! 사령관님은 지금 어..”


호쾌하게 대답하려던 브라우니들은 순간 오늘 동침표에 쓰여 있는 '아스널' 이라는 글자를 떠올리고는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그’ 아스널이라지만 동침할때 부대원을 부른다고? 그것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도 아닌 에밀리라니..

브라우니들이 우물쭈물 거리자 에밀리가 시무룩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안 되는거야?" 사령관이 언제든 와서 자도 된다고 말했는데.." 


오해의 소지가 담뿍 담긴 말이였지만 에밀리는 그 사실을 자각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던? 자러? 브라우니들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끈적한 망상을 지우고 오른쪽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사령관님이라면 지금 비밀의 방에 계심다.” 


“응..고마워…”


“그..그런데 정말 사령관님..”


“맞다잖아, 좋은 시간 보내십쇼!”


에밀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둘러 사라지는 브라우니들을 배웅했다. 다행히 브라우니들이 알려준 방은 멀지 않아 에밀리는 금세 비밀의 방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밀리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비틀어 열었다.





에밀리라 이것저것 넣고 싶어서 썻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눠 쓸게 ㅠ 

에밀리 칼찌밈있는거 보고 써옴 

에밀리가 미안하데...애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