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푸르고 차가운 달빛이 절벽을 비춘다.

그리고 그 절벽에서 키르케는 달빛을 얼음삼아 차가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몰래 마시기 위해 그녀가 직접 만든 증류주는 맛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취하기에는 딱 좋았기에,

키르케는 자신을 힐난하듯이 날카롭게 내리쬐는 달빛과 함께 술을 즐겼다.


"키르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뒤로 돌아보자, 사령관이 오드리에게 요청해서 준비해준 귀여운 잠옷을 입은 더치 걸이 눈을 비비며 서있었다.


"어머, 더치 걸 님. 주무시고 계셨던게?"

"깼는데 키르케가 안보여서 나와봤어. 또 술 마시는 거야?"


더치 걸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자 키르케는 그 작은 소녀의 옷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빗자루를 움직였다.

빗자루에 앉아 키르케에 어깨에 머리를 기댄 더치 걸은, 하늘에 떠있는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달을 보니까 테마파크가 생각나."

"더치 걸 님이 저를 용서해준 곳이지요."

"응, 하지만 키르케는 여전히 날 꺼려하지."

"아하하."


키르케는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더치 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느끼며 키르케를 살짝 껴안고 있던 더치 걸은 키르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키르케, 나한테 키르케가 겪었던 일을 얘기해줄 수 있어?"


주황빛을 띄는 갈색 머리를 쓰다듬던 키르케의 손길이 멈췄다.

그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하게 변했고, 빗자루에 놓여있던 손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치 걸의 반대편을 보는 그녀의 시선은 쉼없이 흔들렸다.


"그, 그렇게 조조좋은 이야기는..."

"응, 알아. 하지만 난 키르케가 나를 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그래서 키르케에게 듣고 싶어. 키르케가 무서워하는, 나에게 얘기하기 싫어하던 이야기를."


키르케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더치 걸이 키르케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고,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키르케는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 술을 입으로 흘려보냈다.


"푸하... 정말 듣고 싶으신 거죠."

"응."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키르케는 그렇게 말하고 더치 걸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 하나. 그것도 짧게 들려드릴 거에요. 이게 조건이에요."


더치 걸은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키르케의 몸이, 정말 두려운 듯이 떨고 있었던 것이다.

키르케는 더치 걸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술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달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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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조금 불쾌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막장 대회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지만, 그래도 경고는 달아두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숙지하신 분만 상상력을 억제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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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호황인 테마파크의 밤.

B구역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돌아가는 키르케를 한 손님이 불렀다.


"이봐, 거기 마녀."

"네~! 무슨 일이신가요오~."


마음 속으로는 올 것이 왔나라는 생각을 하며 뚱뚱한 남성들 앞으로 갔다.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는 검은 천으로 가려져있는 술병과 술이 따라져있는 술잔이 있었다.

불쾌할 정도로 콧김을 흘리는 한 남성이 자신의 옆을 툭툭 쳤고, 키르케는 그곳에 앉았다.


"별건 아니고 반주나 좀 해달라는거지. 남자들 사이에 여자 하나 있으면 좋잖아?"

"이 새끼, 자긴 로봇새끼 안박는다더니 수작부리냐?"

"너라면 박겠냐 시발로마! 그냥 니들 면상보단 나아서 부른거다!"


껄껄거리면서 술을 마시던 그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키르케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술잔이 하나 놓이면서 그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자자, 되게 귀한 술이라고. 주인장들한테 허락은 맡았으니까 마셔마셔!"

"어우, 저같은게 마셔도 될까요?"

"미녀가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좋은데! 마셔라마셔라, 마셔라!"


약간 붉은 빛을 띄는 술이 담긴 술잔을, 키르케는 시원하게 넘겼다.

약간 쇠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달짝지근한 느낌이 드는 맛있는 술이었다.


"이거 정말 좋은 술이네요. 무슨 술인가요?"


사내들이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게 불안했지만, 어떤 술인지 정말 궁금했기에 키르케는 그들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를 불렀던 남자가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파하하하, 우리가 부르는 은어로 땃쥐라는 걸로 만든 담금주지!"

"땃쥐.. 담금주요?"

"그래. 걔네가 못먹은 땃쥐처럼 빨리 죽어서 땃쥐라고 부르거든! 발음도 비슷하고."

"캬, 요즘엔 걔네한테 일부러 단맛 나게 만든다는 얘기도 있더라니 진짜였다니까."

"재료도 갓구한 신선한 거야. 자자, 누님도 마셔마셔."


키르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따라주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렇게 그녀가 반병 정도를 마셨을까, 주변 사내들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었던 키르케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자, 그러면 땃쥐 담금주의 재료를 한 번 구경해보자고!"

"좋지!"


살짝 몽롱한 키르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은 술병을 가리고 있던 천을 치웠다.

아무 생각없이 술을 마신 키르케는 그 술병들을 보고 술기운이 가다못해 이게 현실인가라고 생각했다.

투명한 병 안에는 투명한 술과 붉은 술이 담겨있었고, 그들이 말한 담금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어이쿠, 명령이야. 토하지마. 술병에서 시선 돌리지 말고. 그리고 너가 마신 게 뭔지 알아보라고!"


욕지기가 올라오려던 키르케는 그것을 강제로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그 사내들을 노려보고 싶었다.

미쳤냐고, 제정신이냐고, 인간이 할짓이냐고.

하지만 명령은 그녀의 의지를 빼앗고, 그 술병에 든 것을 응시하게 만들었다.


투명한 유리병, 그 속에 담겨있는 술.

붉은 술과 투명한 술.

붉은 술에서는 붉은 뭔가를 흘려보내는... 손가락.

투명한 술에는...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


은어로 땃쥐, 담금주, 단맛이 나게 '만들어진', 갓 구한 재료.

키르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봐! 이 누님 울고 있다고! 울면 술이 새잖아~!"

"저, 저기 이건.. 이건..!"

"거부권은 없어! 마셔라마셔라마셔라~!"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술병으로 손을 뻗는 모습을 보며 사내들은 열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을 술잔에 담아 마시기도 했다.

마음 속으로 절규하며, 강제로 마셔야하고, 토하지도 못하는 키르케는 그렇게 정신을 잃을때까지, 그 술을 마셨다.




"저는 그 이후로 담금주 종류는 단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어요."

"...."


울음을 참으려는 키르케의 모습을 보며 더치 걸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다가 키르케의 손에 쥐어진 술병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키르케, 그 술병 좀 줄래?"

"어머, 더치 걸 님은 술을 못마시는 걸요?"

"더치 걸 모델은 술에 취하지 않아. 술마시고 사고치면 모두 죽거든. 그러니까 좀 줄래?"


키르케는 고개를 갸웃하며 술병을 건냈다.

그 술병을 받고 안에 술이 남은 것을 확인한 더치 걸은 그 술병을 기울여 입구에 술이 보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그곳에 넣었다.


"가, 갑자기 뭐하시는 거에요?!"


키르케가 허겁지겁 술병을 빼앗자 더치 걸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머리가 좋은 건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키르케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거랑 이거랑은..."

"그러니까 키르케가 비교해줘. 더치 걸을 담근 술과, [땃쥐 담금주]의 맛이 같은가."


더치 걸의 말에 키르케가 움찔했다.

그리고 술병과 자신을 바라보는 더치 걸의 진지한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술병에 든 술을 마셨다.

천천히 키르케의 목을 타고 술이 넘어가고, 곧 그 술병이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키르케가 그 술병을 바닥에 놓고, 눈물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혀 다른 맛이에요..!"

"응."


더치 걸은 키르케의 눈물을 못본 것으로 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 껴안다가 "난 자러 갈게. 빨리 돌아와줘."라고 말하고 오르카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더치 걸을 보며 키르케는 빈 술병을 달빛에 비춰보았다.


더 이상 달빛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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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순한 맛인가 싶어서 걱정되긴 하고, 막장 내용이 짧긴 한데 괜찮았나 모르겠네.

근데 어차피 챈이 더 막장이니까 상관없을거야.


노잼글 봐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