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썼던 브금 재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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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썼던게 너무 길어져서 이제 링크는 모음집으로 대체하겠슴 담당자상 존나게 감사하는데스









오텔 드 랑부예, 프랑수아 데봉














바실리는 식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 안에서 앉아서 대화를 나눌만한 곳이 식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전실, 함교 등 시설들이 있기는 했지만 군사용도도 아니고 개인적인 용무에 쓰기에는 영 미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 식사당번이라고 했던 그리폰은 안에서 식기를 설거지하고 있었고 홀에는 바실리밖에 없었다.


바실리는 바닥을 쓸고 닦고 탁자를 옮기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지?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스보보다가 나아가야 할 방향?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이바노비치의 자아? 위대한 영웅 '사령관'에 관해 말해야 할까? 지금 바실리와 함께하고있는 저 여인들의 마음을 먼저 물어야 하나?


바실리는 식탁을 식당 중앙에 모아놓고 의자를 하나 끌어와 털썩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그의 마음 속에는 처음 전투 속에 던져졌던 그 순간부터 함깨해오던 공포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과 이 세계에 대한 정보부족도 심각했다. 물어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바실리는 식탁 앞까지 의자를 끌고가 탁자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싸매쥐었다.


예전 수중전함에서 하르페이아, 그리고 닥터와 공부하던 시절에는 이 세계에 대한 정보만 얻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념에 가득 차있었고, 데카브리스트적 이념을 지킬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머리 속의 지식은 얼마나 무가치한가? 어려서부터 외운 성경 구절과 사관학교에서 배운 19세기식 전술은 이 미래세계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실리는 머리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모았다. 어린시절 그의 어머니는 바실리에게 난관에 봉착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바실리는 지금 어마어마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차르의 감옥에 갇힌 그 순간부터 단 한번도 안식에 든 적이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신은 어째서 그에게 이런 고난을 내리는가? 왜 하필 바실리여야 했는가? 그분은 이 나약한 장교에게 도데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바실리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기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이런 정신상태로 냉철하게 앞날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에 파묻혀 신을 향해 기도만 계속 드릴 따름이었다. 그는 기억나는 모든 기도문을 외고 기억나는대로 성경 구절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설거지를 옛저녁에 끝낸 그리폰은 바실리의 뒤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 인간은 도데체 어째서 저렇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부짖고 있는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던 그리폰은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등을 토닥여줄 수도 있겠지만 성격상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리리스가 식당에 들어왔고 둘을 보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리리스는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의자에 사뿐히 앉아 아직도 정교회 기도문을 외고 있는 바실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뭔가 눈빛이라도 느낀듯 바실리가 고개를 들어 리리스를 마주봤다. 리리스는 피식 웃었고, 바실리는 쑥스러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쇠로 만든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다과가 없으니 냉수로라도 땡 치려는 모양이었다.


바실리가 물을 따르던 와중에 하나둘씩 식당으로 들어왔다. 바실리는 모두 의자 하나씩 안내해 주고는 물을 한컵씩 쥐어주었다. 하나 둘 셋... 전원이 모여준 모양이다. 자리로 돌아간 바실리는 의자 앞에 선 채로 목을 가다듬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실리를 바라봤다. 바실리는 천천히 입을 열며 말을 시작했다.


"우선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오. 누추한 장소에 변변치 않은 대접이지만 다들 이해해주리라 믿겠소. 우선 시작하기 전에, 음료가 물밖에 없다고 해도 건배라도 한번 하고 시작하는게 좋겠소."


혁명을 논의할때 그의 동지들은 항상 대화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보드카 내지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함께 들이키는 어떤 의식과도 같은 건배. 저 여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바실리에게는 지금 이 자리가 혁명을 이야기하던 회담 만큼이나 중요했다. 바실리가 잔을 들자 여인들도 하나둘 잔을 들어올렸다. 린트블룸이 살짝 웃으며 옆에 앉은 그리폰의 컵에 자신의 컵을 부딪혔다. 짱 하는 소리가 났다. 기분이라도 좋은지 닥터는 식탁을 손으로 살짝 두드렸다. 바실리가 물을 들이키자 여인들도 함께 컵에 담긴 물을 한번에 마셔냈다. 바실리는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말을 시작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지금 이 자리에 왜 모였는지 아는 이들도 있을거고, 모르는 자도 있을거요. 모르는 이들을 위해 지금 이 모임의 목적을 말해주겠소. 지금 당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는 바요. 그 이유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믿겠소. 그러니 지금, 이 지극히 개인적인 혼란과 의식의 무질서를 끝내기 위해 그대들로부터 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를 얻어내려 하오. 혹여나 불만이 있다면 말리지 않을테니 여기서 나가주길 바라겠소."


여인들은 모두 가만히 있었다. 바실리는 모두를 한번 돌아봤다. 저들이 '혼란에 빠진 남자가 품은 의문을 풀어주려는 인도적인 의도' 에 의해 자리에 앉아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만들어졌을 때부터 심어진 세뇌된 의식'에 의해 인간에게 복종하려는 목적으로 자리에 앉아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실리가 얻게될 정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뇌된 자가 건네주는 정보만큼 무의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바실리는 그저 저들이 그런 노예상태에 놓여있지 않다고 믿고 싶었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바실리는 그대로 서서 잠깐 기다렸지만, 아무도 식당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그의 질문을 듣기 싫은 자는 없는게 분명했다. 바실리는 손에 들고 있던 쇠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가장 첫번째 문제. 당신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소.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인간이 바로 당신들이라고 들었소. 그리고 그 인간에게 봉사 -말이 봉사지 사실상 노예제와 가깝다고 생각하오- 하는 존재라고.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답은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오. 진심으로 당신들은 누구며,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소?"


적막이 흘렀다. 사실 자신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때 자신 있게 재빨리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평소에 자신과 관련된 사고는 하지 않는다. 바실리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였고, 바실리의 앞에 둥글게 앉아있는 여인들도 그랬다. 바실리는 입을 닫고 가만히 기다렸다. 모두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슬레이프니르가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그 질문 좀 이상한것 같은데. 그렇게 묻고 싶다면 한명한명 따로 붙잡고 물어보는게 낫지 않겠어? 질문 자체에 '당신들'이 들어간 시점에서 솔직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거같은데."


리리스가 슬레이프니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주인님은 개인적인 사항을 질문하지 않았어요. '바이오로이드 일반'에 관한 내용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야 아니야. 바이오로이드 일반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다면 아까 전에 그렇게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던 상투적인 대답 외에는 돌아갈수 없다고. 그렇지 않아?"


바실리가 대답했다.


"동의할 수 없소. 지금 내가 던진 질문은 당신들 만들어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물은 것이 아니오. 인간은 무엇인가? 와 비슷한 질문이었소. 당신들은 어떤 존재요? 강화된 인간, 만들어진 인간인 당신들은 어떤 존재요? 당신들은 인간과 같은 존재요, 아니면 인간과는 또 다른 새로운 범주에 넣어야 하오?"


브라우니가 컵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당연한거 아님까! 저희들도 똑같은 사람임다.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고, 똑같이 웃고, 똑같이 우는 같은 사람 아니겠슴까?"


"브라우니 제발 조용히좀 해요!"


레프리콘이 소리쳤다. 그러자 바실리가 그녀를 제지했다. 바실리가 듣고싶은건 저런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리고 그가 정확히 원하던 답변 중 하나를 브라우니가 뱉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닥터가 말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어. 지금 여기에 인간의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거야? 명령을 받았다고 더 이상 사고 없이 시위대를 유혈진압하는 경찰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의해 항복한 포로를 모조리 살해하는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봤으면 우리들이 완전히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유의지가 없거나, 아니면 지극히 약하니까."


아니다, 아니다. 바실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브라우니가 닥터의 말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건 인간도 똑같슴다. 전장에 나가서 총을 쏴대는 인간을 보신적 있으심까? 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자매기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슴다. 그 모습에 자유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슴다. 레프리콘 상뱀? 상뱀도 동의하지 않으심까?"


레프리콘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가 내뱉는 소리는 어떤 언어라고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아, 이런. 크게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바실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대충 저들은 인간과 거의 유사한 육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세뇌된 정신상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정신상태를 인간이 소유할수 있다면 저들도 인간으로 볼수 있지 않겠는가?


"그만. 너무 대화가 길어지고 있소. 이 질문은 여기서 끝내고 차후에 다시 토론해보는 것으로 하겠소. 이제 두번째 질문.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나,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이바노비치의 자아에 관한 질문이 시작하겠소. 그럼, 당신들의 그 '사령관' 이라는 대영웅은 어떤 자요?"


방금까지 심각한 대화를 나누던 모두가 깜짝 놀란 눈으로 바실리를 돌아봤다. 바실리는 당황했다. 그리고는 린트블룸이 제일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뒤이어 닥터가, 슬레이프니르가, 그리폰이, 대부분이 웃음을 터트렸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그리고 바실리를 제외하고 모두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렬한 웃음 속에서 스보보다는 달빛을 받으며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가고 있었다.












이번편 TMI는 내가 평소에 하고싶던 말로 대체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쓰고싶던 부분이었음. 19세기적 사상을 가진 사람과 바이오로이드 사이의 사상적 차이를 표현하고 싶었음.

찍쌀생각 없음. 느릿느릿 계속 쓰는중. 다만 너무 느려서 라오가 먼저 섭종할지도 모르기에 불안함.

좋아하는 브금은 엄청 많은데 글 내용이랑 안어울려서 못쓰는게 많음. 아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