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붕괴많음

-----

어두컴컴한 새벽의 빛을 보이던 하늘이 어느덧 바다처럼 파랗게 변하는가 했더니 지금은 황혼의 물결이 꿈틀거리고 있을 때. 시간감각, 방향감각 모두를 상실하고 그저 나무를 보며 걷기만 하던 남자가 주저앉은 건 그때 즈음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숲을 헤매며 자신을 피안의 저편으로 인도해 줄 사자를 기다렸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위협다운 위협도 마주하지 못했다.


분명 철충들은 인간의 뇌파를 읽을 수 있으며 발할라를 구하기 위해 뛰어나갔을 때에도 금방 자신을 찾아왔건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남자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떨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권총이라도 쏴주며 최대한 저항하다가 죽으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쳐갈 때에는 얌전히 목을 내밀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주저앉자 드는 생각은 도망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오만해져서, 인간성을 상실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자 한낱 짐승으로 전락한 자들은 잠에 빠져 사그라들거나, 철충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인간의 멸종이 정해졌다. 비행을 포기한 새가 지상에서 멸종하게 된 것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은 그렇게 사라졌어야 했던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맞다. 그것이 순리인데, 자신은 왜 이렇게도 떨고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바이오로이드도. 철충도. 인간도 없다.


새삼 그것을 깨닫자 남자의 입에서 자연스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서워."


의도적으로 말한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새어나온 본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방아쇠가 된 것은 분명했다.


"살고싶어. 모두에게 사과하고 돌아가서, 이제라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시간은 잔혹했다. 성벽처럼 단단했던 남자의 각오가 풍화되고, 무너지는데 오래걸리지 않았다.


"쉬고 싶어. 사령관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것들도, 철충과의 싸움도 싫어."


왜 자신은 지금 살아있는가. 다른 인간처럼 멸망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더라면 이런 두려움도, 부담도 없었을텐데. 남자는 그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어. 맞지도 않는 연기를 하는 것도, 나를 믿어줬던 바이오로이드를 버리고 죽는 것도……."


콘스탄챠, 라비아타, 아르망, 그 외에 얼마 없지만 자신에 대해 알아줬던 바이오로이드들. 그들의 기억이 떠오르고 이내 재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남자는 두려웠다. 자신의 실패로, 누군가가 크게 다쳐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 그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남자는 싫었다.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는 삶이. 바이오로이드에게 존경받는 자신이.


아무런 기억도 없이, 마치 기계가 입력된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떠오른 전술로 철충과 싸우는 자신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남자가 처음 오르카 호에 왔을 때 상태는 심각했다.


오르카 호 내부의 알력다툼도 그랬지만 남자 자신의 상태도 분명히 심각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어떤 이유로 살아있는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녀들이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였던 남자에게 있어서 그 자리는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위정자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안 남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카 호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찾아본 오래된 서적들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인간의 만행에 분노하고,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는 사실에 혐오감이 느껴졌다.


"……."


변명은 그만두자, 하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런게 아니다.


아직까지도 인간의 부흥과 생존을 위해 싸우며 고통받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불쌍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외롭고 괴로운 길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결과는 얻고 싶지만, 그 과정과 평생 따라올 의무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런 이상한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패도를 걷는 마지막 인간을 보고 바이오로이드가 자신들을 위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의도가 어쨌든 자신도 나쁜 짓을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그렇게 자신의 자살을 정당화해서 어떤 의무도 지지 않고 조용히 떠나가기를 택했다.


하지만 최후에 결국, 발목을 잡혔다.


그것은 남자의 이기심.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 죽고 싶지 않다는 갈망.


결국 남자가 택한 것은 타의에 의한 살해였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은 두려웠다. 그러니 남자의 의지가 어쨌든 확실하게 죽여주는 자들을 제 발로 찾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충을 만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 못하자 남자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욕망에 다시금 눈을 돌리게 되었다.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권총을 바라보았다. 당장 죽음을 택할거라면 이걸로 머리를 쏘면 되는 일. 그것만으로도 그토록 바라던 죽음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형용할 수 없는 진흙탕에 빠져버린 느낌에 남자는 고개를 위로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강렬하게 타오르던 주홍빛은 이미 흐려졌다.


쉬고싶다.


그 생각에 문득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것을 꺼냈다. 작은 라벨에는 닥터의 아기자기한 글씨로 '수면제'라고 써 있었다.


바이오로이드에게도 통하는 강력한 수면제. 이것을 이용해서 남자는 지금껏 많은 바이오로이드를 조금이나마 쉬게 해 주고 있었다.


남자의 몸도 바이오로이드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어느 정도는 먹어도 버텨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의 몸이 무적인 것도 아니었다.


많이 복용하면 죽는다. 잠에 드는 것처럼 편하게. 고통 없이.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남자는 자신의 손에 수많은 알약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


밤이 깊어졌음에도 수풀을 탐색하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계속되어 온 사람 찾기는 날이 밝을 때와는 달리 대원들의 열성과 간절함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옷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손이 긁히고 뿌리에 걸려 흙바닥을 굴러도 곧바로 일어선다.


후각이 좋은 자들은 연신 코를 씰룩거렸고 기계에 능한 자는 드론으로 주변을 살폈으며 힘에 자신있는 자는 시야를 가리는 것들을 전부 베어냈다.


페어리 시리즈, 럽버제인과 힘을 합쳐 나뭇가지들을 쳐내고 시야를 밝히던 라비아타가 땀을 닦았다. 퍼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강렬한 빛이 내리쬐었다.


"조명탄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수색한다! 대열을 갖춰라!"


레드후드의 목소리가 울리자 풀을 밟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숲이라는 특성상 높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조명탄을 쏘아도 그다지 시야가 밝지 않았다. 엘븐과 다크엘븐은 못마땅해했지만 사령관을 찾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하자 벌목하는 것을 허락했다. 엘븐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장비로 나무를 뽑기까지 하고 있었다.


라비아타가 다시 대검을 치켜들며 금발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물었다.


"다른 부대는 어떤가요?"


"지금 문제 없이 포위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좁혀오면서 만나게 되겠지요. 철충과 마주쳤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녀들이 사령관을 찾으려고 선택한 방법에 유일한 걸림돌이 너무나도 조용한 탓에 아르망은 조금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수색을 지휘했다.


바닥이 고르지 않고 풀이 걸려 체력을 빼앗기는 숲에서 인간은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속도를 유지하며 걸을 수 없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령관이 오르카 호에서 떠난 시간과 평균적인 걷는 속도, 흐른 시간을 대입해서 원형의 커다란 범위를 만들고 몇 개의 부대로 나누어 하나는 안쪽에서 퍼져나가듯, 나머지는 넓게 둘러싸 바깥에서 좁혀오듯 숲을 뒤지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주변에만 있으면 뇌파를 감지해서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면밀한 수색보다는 모든 장소를 전부 가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다만 부대를 나누는 만큼 철충과 마주친다면 각개격파 당할 가능성도 있어서 각 부대마다 지휘관 개체들을 배치하고 사령탑으로서 아르망이 전체적인 지휘를 내리고 있는 형태였다.


인간이 바깥에 있다면 그것을 눈치챈 철충이 분명 움직일 거라고 판단한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장을 갖추고 수색에 임하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철충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의 가호인걸까, 아니면 이미 살아있는 인간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걸까.


"윽!"


고개를 세차게 털어 불안한 생각을 날려버리고 아르망은 다시 단말기에 집중했다.


현재 아르망과 라비아타가 향하는 방향은 라비아타가 마지막으로 사령관을 만나 향한 방향이었다.


숲이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걷기만 한다면 방향을 상실하겠지만 그러다가 실수로 돌아올 것을 대비해 사령관이 한 방향으로만 걸었을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각 부대들의 움직임이 단말기에 찍혀 보인다. 아군을 나타내는 초록빛 점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면서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인간에 대한 걱정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대검으로 나무를 베며 나아가던 라비아타 역시도 초조함이 엿보인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사령관을 찾아내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걸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아르망 추기경."


지휘 패널을 보던 아르망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대검을 휘두르는 것에 집중하는 듯 아르망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라비아타가 말했다.


"만약 주인님께서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르망이 입을 다물었다. 그 암담한 예측에 화가 나서도, 태평하게 들릴 수 있는 말에 짜증이 난 것도 아니다.


그녀의 말에 담겨있는 공포를, 아르망 자신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폐하가 죽었다면,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르망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말렸다면,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면, 하다못해 마지막 여로를 함께 해 줬다면. 그런 후회가 밀려온다.


폐하라고 부르며 섬기려 했음에도 마지막에 도망친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샘솟는다.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이미 주인님께서 저희들을 사랑해주셨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오르카 호는 분명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좋게도, 나쁘게도 그녀들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극단적으로 말해 자칫하면 철충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관하는 인원마저 생길수도 있다.


"……만약, 만약 폐하께서 이미 서거하셨다면."


눈물이 흐르지 않게 참는 것이 최선이어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는 없었다.


"저는 무너지겠지요. 그 정도는 제가 아니더라도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으로 아르망은 말을 끝맺었다. 냉철한 이성을 자랑하는 아르망일지라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에 대항할 수 없으리라 단언한 것이다.


묵묵히 들으며 라비아타는 잡념을 날리듯 대검을 휘둘렀다. 그럼에도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고 만다. 주인의 시체를 끌어안고 망연하게 주저앉은 자신을 떠올린다.


욱씬, 가슴에 통증이 달렸다.


멸망 전부터 존재했던 라비아타이기에 인간의 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을 겪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분명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고 떠나보내며 슬펐던 것도 확실했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마음이 죄이는 듯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처음으로 섬긴 주인이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더 깊고 애절한 감정이 마음을 찌르는 것이었다.


왜 자신은 그때 사령관을 그냥 떠나보냈을까. 그의 말이 되지 않은 호소를 알아주지 못하고 배웅한 것일까.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대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순간 둘의 대화가 끊기고, 희미한 어둠처럼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금발과 은발의 바이오로이드가 동시에 반응했다.


"앗!"


"폐핫!"


느껴졌다. 지금처럼 인간의 뇌파를 느낄 수 있는 자신의 몸에 감사한 적이 없었다.


아르망이 눈을 빛낸 것과 동시에 라비아타가 아르망을 끌어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민첩하게 나무를 피하고, 뿌리를 박차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겨 운반되던 아르망은 단말기를 통해 급히 상황을 알리며 좌표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폐하의 뇌파를 감지했습니다! 각자 단말기를 확인해 주세요! 서둘러주세요! 다프네는 최대한 빨리 의료도구를!"


그저 그것 뿐인데도 주변이 빛으로 물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사령관의 존재에 라비아타 또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부디, 무사히 있어주세요……!"


그렇게 라비아타와 아르망 앞에 나온 것은 엄청난 굵기와 크기를 가진 나무였다. 그 한가운데에 인형처럼 걸터앉은 한 명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있었다.


"주, 주인님!"


"폐하!"


아르망이 버둥거렸다. 라비아타가 한달음에 뛰어가 그 앞에 앉았다.


"주인님. 주무시는 건가요? 주인님. 눈 좀 떠 보세요. 주인님의 라비아타가 왔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사령관에게 상처는 없는지 살피던 라비아타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행여나 상처입힐세라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아!"


옆에서 아르망이 경악한 듯 소리를 높였다. 사령관의 늘어진 손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수면제 라벨을 발견한 탓이었다.


"수, 수면제…… 폐하!"


아르망의 머리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사고가 이어진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했을 때 죽을 확률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대개는 두통과 속쓰림을 느끼거나 갑작스러운 기절을 하는 정도.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기술력은 인간의 신체를 새로 만들어내는 정도다. 후유증은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부교감 신경 마취로 인한 호흡부전. 산소가 돌지 않아서 죽거나 뇌사상태에 빠져버린다면 그대로 끝.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된다.


"산소통을 준비해주세요! 최대한 빨리!"


아르망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단말기에 대고 외쳤다.


"주인님…… 제발 일어나세요……."


완벽한 바이오로이드인 라비아타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정확한 지식이 없었다. 간단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은 할 수 있지만 그걸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확실하지 않은 의료행위는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수도 있음을 알기에 라비아타는 그저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라비아타는 사령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밤바람에 서늘해진 것인지, 아니면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손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죠……? 인간이 오만해져서, 인간성을 잃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인간의 멸종은 그때 정해진 거라고 하셨죠? 하지만 아니에요……."


울면서 라비아타가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기 위해 사령관을 끌어안았다. 상상 그대로, 주저앉아 시체를 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이 다시 한 번 욱씬거렸다.


"보세요. 주인님은 이렇게, 살아계세요. 주인님은, 주인님은 아직 인간으로 존재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제발……."


라비아타의 오열이 섞인 말들이 밤하늘로 흩어져 사라져갔다.


*


꿈울 꿨다.


소완이 오르카 호에 왔다. 이상한 약을 쓰는 것을 막아보려고 오르카 요리 대회를 개최했다. 시작은 이상했지만 마지막에는 모두가 웃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계산도 하지 않은 채 급식개혁을 선언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창피했지만 지휘관 개체들 모두가 내 성장을 응원해 주었다.


흔들렸다.


모두에게 여름 휴가라도 줄 겸 보물 찾기에 나섰다. 이번 기회에 늘 자신을 몰아붙히던 세이렌이 조금 둥글게 변한 것 같았다. 좋은 경향이다.


나를 매몰차게 대하던 메이가 불꽃놀이를 준비해 줬다. 태도가 조금 사나울 뿐이지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왠지 너무 기뻤다.


옮겨졌다.


모모가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극장판 이야기를 해 줬다. 그러던 중 모모의 친구인 백토와 숙적 뽀끄루 대마왕을 만나게 되었다. 조금 극단적이던 백토가 마지막에는 모두와 사이좋게 송편을 먹는 걸 보니 뿌듯했다.


조금 겉도는 것 같은 팬텀이 걱정이지만 유능한 바이오로이드니까 분명 잘 해나갈 것이다.


각하. 누군가가 불렀다.


마녀로부터 할로윈 초대장을 받았다. 초대장을 가져온 펜리르에게 안내받아 아이들과 함께 테마 파크에 가게 되었다. 즐겁고 희망이 가득한 장소의 이면에서 행해진 끔찍한 일들을 알고 전부 부숴버렸다.


하지만 굴레에 묶여있던 키르케를 구할 수 있었다. 샬럿과 엘리스의 육탄공세는 사실 조금 기뻤다.


사령관. 누군가가 불렀다.


갑자기 어른이 된 닥터의 도움을 받아 바이오로이드 모두를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지쳐서 쓰러지기도 했지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역 서프라이즈에는 너무 감동받았다.


오르카 호에 있던 의문의 선생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너무 야한 것만 한다면 플라잉 소라넷이라고 불러보는 것도 재미있겠지.


폐하. 누군가가 불렀다.


발렌타인을 맞이하여 바이오로이드들이 내게 초콜릿을 주려고 노력했다. 혹독한 환경에서 지내온 티아멧이 마음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 성장이 기특하면서도 사랑스러워서 행복했다.


처음으로 만난 캐노니어의 로열 아스널은 청순한 이미지와는 달리 굶주린 야수같았다. 조심하자.


이것은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실현되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


주인님!


부르고 있다. 꿈에서 듣던 즐겁고 행복한 목소리가 아니라 슬프고 슬퍼서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찬 목소리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부르고 있어서 남자는 그에 답하고 싶었다.


무섭고, 두렵고, 외면하고 싶더라도.


사령관이니까.


최후의 인간은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라스트 오리진이 눈을 떴다.


──完


----

미안하다 시험 보느라 늦었다. 끝이 이상한 거 같긴 한데 양해 부탁해!


이 뒤로는 후기니까 안 읽어도 됨.

초창기 카리스마 있고 간지났던 바이오로이드들을 써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그런 거 없었던거 같음. 그래도 부족한 글 재밌다고 해줘서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읽어준 사람들 다 고맙고 뽀삐 먹길 바랄게. 나중에 시간나면 리리스 외전 한편 써서 온다 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