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거대한 철문이 열리며 어두컴컴했던 성당 안에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문 밖 머나먼 곳에선 비명소리와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총 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치며, 시뻘건 불길이 번뜩였다.

문이 닫히자 그 모든게 거짓말처럼 뚝 끊기며 고요함만 감돌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자젤은 희미한 빛이 나는 제단 앞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날개가 천천히 상반신을 덮었다.

"온 세상이 아버지 이름을 받들고."

세상이 시끄러웠다.

철충이라 이름붙인 알수없는 생명체들이 기계들을 덮쳐 인간들을 죽이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아까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늘에서 떨어진 철충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대응하는 AGS들을 무력화 시키며 야금야금 전진해왔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앞에서 인간들을 지키던 든든한 철의 병사들은 철충에게 당할때마다 그들의 총구를 반대로 돌렸다.

그러리라곤 예상도 못한 인간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최강의 병기에 자기들이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에 맞서 허울뿐인 정부와 기업들은 AGS대신 바이오로이드를 투입하여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철충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철충 무리에 의해 구석으로 점점 몰리는 인간들은 통합하기는 커녕 서로에게 잘잘못을 따지기 바빴고, 심지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이를 용서하듯이."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몇몇 국가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핵 미사일을 자기들의 땅에 내리 꽂았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철충들은 잠시 주춤할뿐, 가차없이 그들의 목을 찢고 갈랐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제 남은 인간은 얼마 없었다.

철충들이 이 근처까지 온 이상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아자젤이 기도하고 있는 성당 깊은 지하엔 아랫마을에 있던 인간들이 전부 숨어 웅크리고 있었다.

사시나무떨듯 손에 묵주를 쥐로 쉬지않고 기도하는 사람.

숨죽여 울며 엄마를 찾는 아이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반대쪽 숲으로 도망쳐 다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몇몇 있었고,

자식과 부인을 위해 책상과 의자로 몸을 지킬 방패를 만들고 무기를 깎아내며 가족을 안심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를 마친 아자젤은 한참동안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맑은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 기도이리라.

미동도 않는 아자젤을 바라보던 베로니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자젤님."

그제서야 아자젤은 날개를 접고 일어섰다.

그녀는 한없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인간님들의 도주를 맡은 인원들을 제외하고, 전원 집합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자젤은 성당 문을 열고 나서며 날개를 살짝 퍼덕였다.

발 끝이 살짝 떠오르며 빨간 카펫에 긴 그림자를 그렸다.

"...두려우신가요?"

아자젤의 물음에 베로니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베로니카를 보며 아자젤은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 다행이군요... 전 조금 무섭네요."

"아자젤님. 아자젤님이 흔들리시면 모든게 끝입니다."

자기 몸만한 총을 꽉 껴안으며 베로니카가 아자젤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그게 우리의 사명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는 됐습니다."

성당 앞에는 얼추 마흔정도의 베로니카들이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불타는 숲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매들이여!"

아자젤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마당에 서있는 베로니카 한명 한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의 목표는 승리가 아닙니다. 우린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눈을 감은 베로니카들은 각자 묵주를 손에 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단 한명의 생존자 없이 우린 끝까지 싸울껍니다."

아자젤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합시다. 부디 인간님들이 안전하기를."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만 가득할 뿐, 그곳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않았다.

비명소리가 희미해질 즈음, 아자젤은 눈을 뜨며 나직히 말했다.

".......출발합시다."

먼저 앞서가는 아자젤을 선두로, 베로니카들이 질서정연하게 뒤를 따랐다.

검은 무리를 향해 진군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