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살을 내밀면 그대로 썰어갈것 처럼 바람이 부는 겨울.

치우다 치우다 결국 포기한듯 초록색 눈삽이 박혀있는 어느 초소에 뿌연 김이 폴폴 흘러나왔다.

"애미 씹... 야, 레후야."

"상병 레프리콘."

가운데에 전투식량의 취사끈을 당겨 모아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덜덜 떨고있는 두 명의 병사가 있었다.

"일기예보 한번 틀어봐라. 좆같은 쓰레기 언제까지 내리나."

이프리트의 말에 레프리콘은 손에 들고있던 라디오의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나오는건 지지직거리는 잡음 뿐이었다.

가볍게 옆을 탁탁 쳐보기도 하고, 창문을 살짝 열어 라디오 안테나를 밖에 꺼내 봐도 라디오는 묵묵부답이었다.

"얼마전에 혜지인지 유미인지 뭐 민간업체에서 통신선 만지고 가지 않았냐?"

이프리트는 두 손을 싹싹 비비고 볼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지금 아무래도 밖에 바람이 장난아니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이뱀."

"옘병 이놈의 군대는 시발 세기가 바껴도 변하는게 없어. 에구구구."

이프리트가 한창 투덜거리는 그때, 초소 문을 힘껏 박차고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콰당창!

"엄메 씨벌!"

벽에 기대 스키파카를 둘러쓰고 눈을 감으려던 이프리트는 펄쩍뛰며 바닥을 굴렀다.

"이뱀! 레후 상병님! 계단에 눈 다 치웠습니다! 하하!"

"와 저년 저거 존나 해맑게 웃는거 봐라."

웃는 얼굴에는 침 못뱉는다고 하던가?

누가 한말인지는 몰라도 이프리트에겐 통하지 않았다.

레프리콘은 이러다 후임 하나 없어질까 싶어 얼른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브라우니를 쳐다보는 이프리트의 양 볼에 전투식량은 가져다 댔다.

"하으흥~?"

뜨끈한게 얼굴에 닿자 바로 녹아내리며 자연스럽게 전투식량을 품에 안고 둥글게 말려들어가는 이프리트.

한쪽 구석에서 노곤해지는 이프리트에게 스키파카를 덮어준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의 머리를 한대 내리쳤다.

"새끼야 기도비닉은 어따 팔아먹었어."

"아흐~ 죄송함다."

브라우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기 몫의 전투식량을 뜯었다.

"레후 상병님, 저희 2,3,4직 연속으로 말뚝 맞지 말임다?"

파운드 케이크 위에 초코볼을 올리고 취사팩에 가져다 대며 브라우니는 레프리콘을 쳐다봤다.

"어. 아직까지 교대 안오는거 보면 정찰 나간 애들 안들어왔나본데."

"삐삐 함 쳐보겠슴다."

브라우니는 수화기를 들고 전술전화기의 호출버튼을 몇번에 걸쳐 꾸욱 눌렀다.

"지통실. 지통실. 필승 일병 브라우니 956번 임다."

연결이 됐는지 브라우니는 관등성명을 댔다.

유선으로 작동하는 삐삐는 다행히 정상이었다.

"예 임펫 반장님.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정찰나간 애들 있잖슴까? 걔네 복귀 했습니까?"

며칠전부터 인근 마을에서 특이한 형태의 AGS들이 목격된다는 제보가 속출하자, 제 8연대 레드후드 104번 연대장은 5대기조에게 근방을 둘러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연대장은 휘하 2개 대대와 후방 대기 대대인 이프리트네에서 병력 절반을 차출했다.

사실상 부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긴 체 전력을 투입한 것 이다.

덕분에 남은 병력은 끝이 없는 경계근무를 서게 됐지만, 이 날씨에 눈덮인 설산을 어기적거리는 것보단 좋지않은가?

라고 생각하며 생활관 침대에서 만세를 부르던게 저기서 흐물텅거리는 이프리트였지만, 마음이라는게 참 간사해서 갈때 올때 다른건 어쩔 수 없나보다.

"에엥? 아직도 안왔답니까? 추워 죽겠슴다 반장님. 힝."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의 고글을 톡톡 두들기고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필승. 상병 레프리콘 875번 입니다."

[어~ 레후야. 애들이 아직 안왔어.]

"알겠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시정보고 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어. 잠깐만. 어 됐다, 불러봐.]

"시정 현재 25m. 눈보라가 심해 아예 앞이 안보입니다."

[2...5...m... 눈보라가... 심하다... 오케이. 아 맞다 레후야.]

"네 반장님."

[연대장님 지시사항인데, 상황이 쎄 하니까 경계 철저히 서라고 하시더라. 뭔 일 있으면 바로 삐삐 치고. 알겠지?]

"알겠습니다."

[오냐 수고~]

"예. 필승."

수화기를 내린걸 확인한 레프리콘은 창밖을 바라봤다.

눈발이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